2021년 03월 28일
인간은 죽는 것이 꽤 어렵고 제 마음대로 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웬만하면 선택권이 없기 때문에 사는 이유를 깊이 고찰할 필요 없이 그냥 살면 되기 때문이다. 만약에 인간에게 아무런 고통 없이 버튼 하나로 간단하게 본인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설정값이 있었다면 우리는 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찾으려 했을 것이다. 내가 왜 사는가. 죽지 않고 살만큼 내 생은 가치가 있는가. 나는 내 삶을 좋아하는가.
이렇게 개소리를 하는 것은 역시 내가 요새 집에만 있어서 심심하고, 커리어 사춘기에 도달하여 나를 지나치게 돌아보다가 생각이 많아져서이다. 월요일에 문득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나를 응원하고, 내가 행복하고 건강하고 잘 되기만을 바라지만, 정작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아이러니를 깨닫자 뭔가 난감해졌다. 왜 안 좋아하지? 그럼 나를 좋아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답이 없는 문제를 너무 파고드는 것은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고 어디선가 본 거 같아서 그날은 그냥 잠들었다. 별수 있나.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사는 거지 뭐. 그러다 이튿날쯤 기억이 났다.
나는 20대 때까지 나를 아주 좋아했다. 나의 어떤 점을 좋아했냐면 아무리 힘들어도 좌절하지 않고 금방 일어나는 오뚝이 같은 점이 좋았다. 그때의 나는 철도 없고 잘 울어서 괴짜 같았지만 주어진 환경이나 어려움 따위는 하나도 개의치 않았고 어떤 바닥을 쳐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나는 꿈이 있었다. 꿈을 이룰 수 있다면 다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결국 꿈을 이루지 못했을 때도 나는 남은 이십 대를 계속 열심히 살았다.
그러다 서른 살 2월에 수술을 하게 되었고, 서른두 살이 되던 날에는 공황장애가 왔다. 그럼에도 당시 나는 수술이 딱히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공황장애도 문제없다고 당당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나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런데 작년 즈음부터 나의 오뚝이 신화는 스러졌다. 나는 내가 약해졌다는 것을 느낀다. 예전이라면 하지 않을 나약한 생각들을 한다.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불평 없이 어릴 때부터 이 한 몸만 믿고 열심히 살았는데 결국 내게 남은 것은 약해진 몸과 마음이라니. 사회 구성원으로 무난하게 밥벌이하면서 보편적인 정서로 살고 싶었다. 오뚝이가 일만 번 일어나면 나도 그 정도는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깨진 오뚝이가 된 기분이었다. 이미 깨진 오뚝이를 테이프로 붙여봤자 작은 충격에도 다시 깨질 뿐이다. 더는 내가 좋지 않아 진 이유다.
글로 옮기고 나니 실로 파괴적인 생각들이다. 뭘 이렇게까지 생각을 하나 싶고. 내 심신이 조금 약해진 것은 맞으나 큰 병은 아니다.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고, 팔다리 멀쩡하고, 앞도 잘 보이고, 귀도 잘 들리고, 머리도 잘 돌아간다. 이만하면 오뚝이처럼 빠르게 일어나지 않아도 적당히 생을 즐길 수 있다. 원치 않던 회사의 면접 때문에 방황하는 이번 주의 나에게 엄마는 '꼴리는 대로 살아야 한다' 고 말했다.
"내가 알아. 너는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
사람은 모두 자신이 태어난 시대에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산다. 인생의 8할은 시대가 이미 결정해놓았을 것이다. 그래서 선택할 게 별로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아주 먼 옛날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시절부터 이승을 사는 인간은 그냥 그렇게 설계되어 있는 거면 어쩌지? 어디 보자. 내 생은 87년 6월 민주화 항쟁으로 최루탄이 날리던 부산 어느 산부인과에서 시작되었다. 자유로워진 땅에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과도기를 겪으며 길을 찾아왔다.
그래, '찾아왔다.' 디지털의 도래는 내가 어찌한 것이 아니지만, 시대의 흐름 속에서 수많은 선택을 하며 지금의 우주에 온 것은 그 누구도 아니고 나야. 나는 아직 성장기(?)라 또다시 덧없는 상념이 덮쳐올 수도 있겠으나, 그냥 앞을 보고 걷겠다. 꼴리는 대로 선택을 하고, 그 어떤 선택을 해도 나를 믿으면서. 미래의 내가 이 글을 본다면 또 너무 열심히라고 안쓰러워하지 않아도 돼. 소소한 행복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