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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늘 Mar 28. 2021

내 평생의 가장 큰 공포

2021년 03월 14일

나는 16세부터 지금의 집에 계속 살고 있다. 엄마의 혜안으로 우리 집은 20여 년의 존버 끝에 부동산 유튜브에서 사야 된다고 난리 치는 재건축 노른자 아파트가 되었다. 나는 딱히 결혼 생각도, 독립 생각도 없기 때문에 이 혼란의 시기에 값이 쭉쭉 오르는 부모님 집에서 가사노동에 해방된 채 사는 것이 즐거웠다. 회사 일에 에너지를 몰빵 하는 버릇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기 때문에 그 외에는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나의 생존 방식이다. 부모님 집은 그런 점에 있어서 최적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 이직하고 자리 잡으면 너부터 자취시켜야겠어.”


그런데 엄마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가게 주변에 일이 있었단다. 매일 일터에 칠순 넘은 노모를 모시고 함께 다니던 여성 분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너무 괴로워하더라는 것이다.


"나 좋자고 너를 끼고 사는 것보다, 좀 떨어져 살면 나중에 내가 없어도 네가 덜 슬플 것 같아."


엄마가 펼친 논리에 ‘뭐래’하고 코웃음을 치고 말았지만, 며칠 뒤에 나는 진지하게 자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습게 들릴 수 있으나 내 평생의 가장 큰 공포는 가족과의 이별이다. 근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평범한 수준은 아닌 것 같다. 이 공포는 내 인생 가치관 전반을 지배해왔다. 해서 나는 항상 행복하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아빠, 엄마, 동생을 잃어본 적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가족들이 모두 건강하게 곁에 있는 내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는다. 여기서 더 좋은 삶을 바라면 벌을 받을지 모른다는 기이한 압박감이 있다. 이런 나를 줄곧 지켜본 지인들은 인간은 원래 더 욕심내도 된다고 말하지만 쉽지 않다. 상담 선생님 역시 우리 집은 나를 포함해 심리적인 독립을 이룬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지적하면서도,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계속 그렇게 살 거죠?"라 단정했다. 하지만 선생님 내가 나만 잘 살자고 독립하는 순간 후회하는 일이 생길 것 같아요. 기껏 복을 줬더니 고마운 줄 모른다고요.


불교에는 키사 고타미의 우화라는 것이 있다. 옛날에 키사 고타미라는 여성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아직 어린 나이에 죽고 만다. 슬픔에 빠진 키사 고타미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거리를 헤매다 붓다를 만나게 되는데 '지금까지 죽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집에 가서 겨자씨를 받아오면 아들을 살려주겠다'는 그의 말에 기뻐한다. 하지만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던 키사 고타미는 곧 알게 되었다. 죽음을 경험해본 적 없는 집은 한 군데도 없었다. 어떤 집은 할아버지를 잃고, 어떤 집은 손자를 잃고, 어떤 집은 고모를 잃었다. 그제야 키사 고타미는 자신의 고통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겪게 되는 아픔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신은 이길 수 있는 고통만 준다더니, 신이 보기에도 영 안 되겠는지 나는 아직 인간이라면 한 번쯤 겪는다는 키사 고타미의 고통을 겪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스무 살에 외할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셨다. 나는 여태 엄마가 삼시 세 끼를 챙겨주는데 엄마는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 스무 살부터 혼자 살았다. 엄마는 어떻게 그 시간을 버틴 걸까? 반면 나는 이런 큰 복을 누려놓고 더 바라면 보이지 않는 큰 손의 신이 노할 거란 생각이 떨쳐지질 않는다.


그간 임시방편으로 내 공포를 달래온 것은 감사하게도 특별한 지병이 없는 친가와 외가의 장수 유전자였다. 그러나 올해가 마지노선이었는지 내가 나이를 먹은 만큼 부모님 나이가 더해지자 나는 극도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끙끙대던 나는 종국에는 파괴적인 결론에 이르렀다.


‘나도 죽으면 되지. 언젠가 혼자가 되면 나도 죽을 거니까 두려워하지 말자.'


이전에는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해본 적 없다. 나는 무엇보다도 사는 걸 좋아하고 생에 대한 의지와 미련이 철철 넘치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최근 너무 쉽게 습관적으로 죽을 생각을 하고 있다. 이건 문제가 있다. 게다가 집에서 제일 골골대면서 가는 데 순서 없다는데 혹여라도 내가 먼저 가면 우리 아빠, 엄마, 동생도 살아야지. 엄마 말대로 우리는 좀 떨어져 살 필요가 있겠다.


 이직할 곳이 정해지지 않았고, 새 직장에 들어가고 나서도 수습 기간이라든가 집을 구하는 기간 동안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다. 그래도 처음으로 결심했다. 아빠도 엄마도 동생도 나도 아직 미숙한 우리들이지만 더 잘 살기 위해서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시간인 것 같다. 자취를 시작으로 이제는 나의 이 심리적 독립 문제에 대해 회피하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 보려 한다. 역사적인 일주일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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