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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늘 Apr 25. 2021

잘못된 선택은 없다.

2021년 4월 25일

부산 출신이었던 엄마는 성인이 되자 큰오빠와 함께 서울에서 살면서 직장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큰오빠가 결혼을 하게 되자 자연스레 눈칫밥이 시작되었다. 엄마는 밥상에 생선이 나오면 가시 부분만 씹었고, 갓 태어난 조카를 최대한 예뻐했지만 결국 큰 오빠네 집에서 나오게 됐다. 엄마는 그 길로 개포동에 집을 하나 샀다고 한다.


“근데 그때 여자 혼자서 살면 안 될 거 같은 거야.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몰라.”


 그거야, 1991년 미국의 델마와 루이스도 어려웠던 생각을 7080 대한민국에 살던 여성이 쉽게 할 리 없었겠지. 사회초년생이었던 엄마에겐 믿을 구석이 없었다. 연고는 부산인 데다 외할머니가 연탄 사고로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힘들어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사귄 친구들과 강남 바닥을 누비며 놀러 다녔지만 그렇게 즐겁지 않았다고 한다.


“다 잘 사는 집 딸인데 나는 딱 직장 다닌다는 것밖에 내세울 게 없는 거야. 같이 놀아도 내가 을이었지.”


 외로운 엄마는 혼자 사는 대신 개포동 집에 세를 주고 큰 언니네 집에 들어갔다. 처음 엄마 집에 들어온 세입자는 술집 아가씨였다고 했다. 앞집 아저씨와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앞집 아주머니의 부탁으로 세입자를 바꿔야 했다. 그때 하필 새로 들인 세입자가 깡패 놈이었다. 2년째 세를 내지 않고 애먹이는 깡패와 법정을 오가다 질린 엄마는 끝내 헐값에 집을 넘겨 버렸다.


“또 그런 놈이 세 들까 봐 무섭고 지긋지긋해서 팔았지. 지금 엄청나게 올랐지만.”


 여전히 혼자 살 수 없었던 엄마는 도망치듯이 결혼을 했다. 그대로 잘난 직장을 그만두고 애 둘을 낳아 키웠다. 개포동 집을 판 돈은 여즉 엄마를 위해 쓰이지 못했다. 엄마가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더라면, 외할머니가 살아계셔서 서울살이 하는 막내딸의 서러움을 받아 줬더라면, 세 들어 살던 사람이 평범했다면, 엄마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어떤 선택을 할 때 과거의 경험 때문에 할 수 없다고 한계를 규정짓거나, 편견과 두려움 때문에 내 진짜 마음을 속이게 되면 말이야.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것 같아.”


 감히 내 침대에 늘어져서 나가지 않던 동생이 엄마의 젊은 날에 기인한 나의 개똥철학에 일갈했다.


“누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세상에 잘못된 선택은 없어. 선택은 그냥 선택이지.”


 물론 동생 역시 뒤늦게 개포동 집값을 검색하고 배 아파했지만, 잘못된 선택이란 건 없다는 녀석의 말이 맞다. 선택은 그냥 선택이지. 다만 온전히 내 소리에 집중할 줄 알아야, 앞에 열리는 세계를 기꺼이 사랑할 수 있다.


 나는 그 마음으로 어떤 선택을 했다. 훗날의 내가 어떻게 평할지 몰라도, 낙장불입이다. 이 패로 열심히 해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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