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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늘 Feb 17. 2019

"신경 안정제를 왜 주셨지?" 나의 두 번째 공황장애

사실은 괜찮지 않았어 #3

밤새 드라마를 볼 참이었는데 젠장. 풀 빌라의 ㅍ도 즐기지 못한 채 나는 내내 앓았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통이다. 땀은 뻘뻘 흘리는데 몸은 춥다고 덜덜 떨리는 기이한 밤이었다. 아침이 되면 좀 나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택시를 잡아탄 나에게 아저씨는 자꾸 말을 시켰다. 몇 시 비행기야? 어이구, 그럼 지금 가면 한참 기다려야 될 텐데? 어디 아파? 약국에 들렀다 갈까?


아니요. 그냥 가주세요. 골골대는 와중에도 삐져나온 효심 때문에 나는 면세점에서 미리 엄마 화장품이나 살 요량이었다. 하지만 귀찮기만 했던 아저씨의 말은 진짜였다. 너무 일찍 도착한 나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다 쓰러져 가는 얼굴로 공항 약국에 찾아가 증상을 말하자 선생님이 약을 이것저것 챙겨주셨다.


“보통 사람보다 몸이 약하신 것 같으니 두 알 드시지 말고 한 알만 드세요.”


결국 나는 그 한 알조차 제대로 먹지 못했다. 대충 가방 속에 넣고 보건실에 누워서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 뒤로 어떻게 서울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내 방 침대 위에 몸을 뉘자 나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엄마는 내가 내팽개친 가방 속에서 약을 살펴보더갸우뚱했다.


신경 안정제? 너한테 이걸 왜 줬대?


그러게. 그런 건 또 언제 줬대. 나도 몰라. 중얼대며 스르르 잠이 든 나는 다음 날 저녁에야 깼다. 내리 푹 자니 살 것 같았다. 엉엉 나 살았다. 살아서 집에 왔어.


좀 살만해지자 다시 부산스러워진 나는 제주도에서 찍어 온 영상을 편집하겠다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제주도와 무슨 원수라도 졌는지 그 찬란한 풍경을 보자마자 다시 미친 듯이 심장두근거렸다. 뭐야 이거? 또 왜 이래? 인생이 마냥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은 지난 삼십여 년간 충분히 배웠다. 하지만 160㎝도 안되는 몸뚱이조차 벌써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은 너무 하잖아.


그러다 문득 공항 약국에서 신경 안정제를 줬다는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나는 손을 덜덜 떨며 피아노 위에 올려져 있던 신경 안정제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펄떡대던 내 심장은 곧 커다란 어부의 손에 쥐어진 것처럼 얌전해졌다. 네가 무슨 땅으로 올라온 물고기도 아니고 심장님아 왜 이러시죠.



“엄마, 나 또 심장이 두근거려서 이거 마셨더니 괜찮아졌어.”


어머머 진짜? 왜 그러지? 진짜 신경 안정제 먹으니까 안 두근거려? 그런 느낌이 들었어? 엄마는 계속 물었다.


나 별일 아니겠지?


이미 해는 넘어가 1월 1일이었다. 어느덧 나는 한 해를 얼마나 잘 살았는지 자랑하려던 계획 따위는 잊었다. 페이스북을 켜고 내게 두 차례나 찾아온 심장 두근거림에 관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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