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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늘 Mar 03. 2019

“공황장애가 맞네요.” 저요? 이렇게 마냥 주접인데요?

사실은 괜찮지 않았어 #5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토요일 오전 밖에 시간이 되질 않았다. 다행히 간호사 선생님은 전화로도, 실제로도 아주 친절하셔서 움츠렸던 마음이 조금씩 펴졌다. 병원을 둘러보니 중년 여성이할머니들이 많았다. 나이를 먹어도 힘든 건 사라지지 않는구나. 삶의 팍팍함은 세월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인가.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내 차례가 왔다.


공황 발작 증세가 오셨던 게 맞네요.


의사 선생님이 첫 마디를 뗄 때까지도 나설마하니 공황장애와 관련 있겠나 싶었다. 비록 병원 문턱은 넘었지만 내심 ‘별일도 아니네요. 그냥 살다 보면 있는 증상입니다.’ ‘아, 역시 제가 엄살이 심했죠?’ 따위의 대화를 하게 될 거라 예상한 것이다. 땅땅. 공황 장애입니다. 의사 선생님의 선고에 나는 놀랐던가, 안도했던가.


“그런데 증상이 전형적이진 않아요. 보통 고통이 극심하게 30분 정도 오고 마는데 다음날까지 계속 아프셨으니까.”


인터넷에서 공황 발작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하나같이 그 순간은 정말 죽것처럼 고통스럽다고들 했다. 나는 잘 모르겠다. 살면서 죽을 것같이 아프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나? 종종 크게 아팠던 적은 있었지만 나로서는 사람이 죽을 때 어느 정도로 아픈지 모르니까. ‘죽을 것 같이 아프다’는 언제 써도 되는 건지 감이 없었다. 몇 년 전 수술을 하기 전에도 ‘이 정도 진행되었으면 그동안 통증이 심했을 텐데 어떻게 참으셨어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아프긴 했는데 원래 이만큼은 다들 아픈 건 줄 알았는데요.


“숨을 잘 못 쉬거나 할 때는 있나요?”
“숨이 차올라서 이러다 숨쉬기 힘들겠다 싶을 때가 가끔 있어요.”
“그럴 때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서 절망스럽고 그러신가요?”
“아뇨. 그냥 별생각 없었어요.”


의사 선생님은 부드러운 눈으로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차트에 메모하셨다. 내가 찾은 병원은 두 분의 원장 선생님이 토요일마다 격주 근무를 하는 스케줄이었다. 토요일밖에 올 수 없는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음 예약이 2주나 지나야 가능했다.



만약에 단순히 공황 증상만 있는 거면 아주 심플해요. 꾸준히 약만 먹으면 나을 수 있어요. 그런데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힘든 일이 있어서 신체에 공황이란 반응이 온 거면 좀 더 문제 해결이 복잡해져요.



선생님은 그걸 알아보기 위해 심장 검사와 다양한 심리 진단 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 감당할 수 없는 힘든 일이라. 후자인 것이 안 봐도 뻔했지만 전자일 수도 있으니까. 아니 제발 전자여라. 심플하게 가자.


“그사이에 혹시 공황 발작이 올 수 있으니까 약을 드릴게요.”
“저는 평소에도 심장 두근거림이 좀 심한 편이라서요. 어느 정도로 심장이 두근거리고 아플 때 약을 먹어야 하나요?”
“제주도에서 괴로웠던 그 느낌 기억하죠? 그 정도로 아프면 드세요.”


심장 검사는 간단했다. 손목과 발목에 집게 같은 것을 끼우고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끝난다. 짧은 듯 긴 그 시간 동안 눈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방황하다 보면 간호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집에서 풀어와야 할 문답지 양을 보니 2주 뒤에 예약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험 처리하시는 거죠?


보험? 의료 보험? 혹시 불이익이 있으려나. 있어도 뭐 어쩔 거야. 이왕 월급에서 성실히 떼여 왔으니 누리겠다는 각오로 보험 처리를 했다.


그렇게 나온 금액 6만 원. 예상보다 훨씬 적은 금액이었다. 그간 예쁜 쓰레기들을 사 모으는 데는 그렇게 정성이었으면서 왜 내 마음을 위해서는 이 정도 돈도 아까워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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