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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늘 Mar 24. 2019

"왜 자꾸 참으려고 해요?" 내가 불행을 숨겼던 이유

사실은 괜찮지 않았어 #8

“애나 님은 자꾸 참으려고 하네요. 참을 생각부터 하는 것 같아요.”


처음 나간 직장인 모임에서 한 시간가량 나와 이야기 하던 사람들이 말했다. 제가 참고 있나요? 더 참아야 하는 건 줄 알았는데요?


해서 K 지수가 높다는 병원 결과를 들었을 때 들었을 때 나는 인증 마크를 받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참으신 게 맞습니다.’


나는 의외로 조용한 걸 좋아하고, 수줍음 많고, 논리적인 내향적 인간이다. 다만 돈을 벌 때는 좀 더 대중적인 탈을 쓴다. 남들이 보는 나는 아마 즉흥적이고, 유치하고, 솔직한 사람일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시끄럽고 발랄한 여고생. 그래서 누구나 다가가기 쉬운 외향적 인간. 나는 줄곧 그 이미지가 싫지 않았다. 쾌활한 여고생이라고 해서 일할 때도 가볍거나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 할수록 그런 취급을 당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회생활을 잘 하기 위해 밝은 척 애쓴 나의 모습이 오히려 족쇄가 되고 있어? 이건 나의 자격지심일까? 콤플렉스야? 아니면 진실?



15년 전 이화여대 진덕규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고 한다.


“앞으로 사회에 나갈 때, 그래서 너희가 어떤 자리에 올랐을 때, 또 애인을 만날 때, 항상 이걸 명심하고 살아라. 스스로를 검열하지 말아라. 너 자신을 검열하려 들지 않아도 너희는 지나치게 착한 아이다. 그럼에도 너희는 자꾸 스스로 얼마나 깨끗한지 더러운 건 아닌지 되돌아보려 한다. 그게 너희를 약자로 만든다.”


애석하게도 15년 전 그 자리에 없었던 나는 사회에 나가 자기 검열을 반복했다. 스스로 약자로 가는 급행열차에 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첫 회사에 출근하던 날, 내 면전에다 대고 “왜 여자애를 데려왔어? 남자애 데려와. 여자애랑은 할 말 없어!”라고 소리치던 아빠뻘의 직원을 잊지 못한다. 그는 나만한 딸도 있었다. 그 후로 유리 천장에 부딪힐 때마다 내가 내린 결론은 ‘남자들보다 몇 배로 더 참아야 한다.’였다. 웬만큼 참으면 티도 안 날 거라고, 한 번이라도 화내면 역시 여자랑 일하기 힘들다고, 여자라서 예민하고 감정적이라 말할 거라고. 나는 매일같이 내가 잘 참았는지 검열했다.


굳이 여자라서가 아니더라도 나의 참는 습관은 천성인지 환경인지 그 시작을 분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되었다. 나는 늘 잘 살고 싶어서 참았다.


큰 이모나 넷째 삼촌은 틈만 나면 내게 초년 운이 나쁘다고 혀를 찼다. 내 가정환경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것이 내 잘못은 아니지만 팔자의 억울함을 호소하다 보면 모두가 질려 떠나갈 것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10대의 나는 밝고 씩씩한 연기를 하며 참았다. 나의 우울한 현실은 숨기고 친구들의 사사로운 고민을 들어주었다. 때로 외로운 기분이 들었지만 친구들과 온종일 함께 하는 그 시절이 좋았다.


직접 돈을 벌기 시작한 스무 살이 되고 나서부터는 좀 더 나아졌다. 학교에 가기 전에 오전 알바를 하고, 끝나고서는 저녁 알바에, 방학과 주말에도 알바를 하고 있었지만 괜찮았다. 졸업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친구들과 맛있는 밥을 먹을 때 돈이 없다고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되었고, 학점도 좋아서 조별 과제가 있을 때면 나와 같은 조가 되고 싶어 하는 학과생들이 많았다. 칠흑 같았던 언론고시생 시절에도 나는 벌어둔 돈이 다 떨어져 갈 때쯤 꼭 일을 구했기 때문에 영어 학원 갈 돈은 없어도, 친구의 결혼 식에는 배낭을 메고서라도 갔다. 나는 PD가 될 사람이니까 괜찮아. 얼마 안 되는 축의금을 마련하려고 중고 나라에 신화 CD를 팔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굴곡 넘치는 내 초년운에도 사람들이 나를 ‘아직 철없여고생’쯤으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라면 서른 개도 넘게 했는데 고생 한 번 안 한 공주님으로 봐주는 건 좋은 거 아닌가? 얄팍한 생각에 그들의 기대에 맞게 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결국 더 많이 참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나를 만들었다.


스타트업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그간 내가 다니던 회사들과 직원들 성향도, 당연하다고 여기는 직장 매너도, 암묵적인 룰도 모두 달랐다. 때때로 그건 옳지 않아 보였고, 나와는 맞지 않았지만 나는 그저 회사가 너무 좋아서 닮고 싶었다. 나는 사랑하는 회사를 위해 또 참았다. 결국 지쳐서 회사를 떠나게 되었을 때 남겨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이것저것 챙겨 주려는 내게 팀원들은 말했다.


애나가 너무 운이 없었던 거니까
우리 걱정은 하지 마. 고생했어.
다음 회사에서는
좋은 사람들 만나서
꽃길 걸어요.


그런 거야? 내가 더 참지 못해서가 아니라,

정말 내가 운이 없었던 걸까?


흔히들 불행을 타고난 사람들은 너무 불행이 익숙한 나머지 불행하지 않은 상태를 견딜 수 없어서 스스로 더 불행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경우의 수가 있고 다양한 사연이 있는데 이보다 오만한 결론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불행이 연속되는 걸 들키면 사람들은 당사자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늘 운이 나쁘기보다는 성격이 나쁜 쪽을 선택한다. 더 참아야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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