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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동 Jan 20. 2019

평범함 속에 배타적인

단편 소설 완작


시발...



하얀색 페인트가 쩍쩍 갈라진 아파트가 보인다. 꼭대기 집이 8층이니 그리 높은 아파트는 아니었다. 이어, 1층 화단에 줄지어 늘어선 빨간 고무통의 화분. 그리고 갈라진 시멘트 속에서 삐져나온 잡초가 보였다. 당장이라도 재개발해도 어색하지 않을 아파트였다.


아파트 내부로 시선을 옮겨봤다. 편지함엔 덕지덕지 광고 스티커가 붙어있었고, 몇몇 편지함엔 지로용지 등으로 가득 차 빼내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런 아파트에 한 남자가 들어섰다.


한 손엔 라이터를 들고 있었는데, 괜스레 부싯돌을 긁어대고 있었다. 초조한 것일까. 아니면, 그냥?


회색 후드티, 옅은 청바지 그리고 짙은 남색 캔버스를 신은 남자. 그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현관문을 채 붙잡지도 않고 말이다. 방문이 닫힌 뒤에나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실에는 거뭇거뭇 수염 정리를 하지 않은 남자의 아버지가 있었다. 남자의 아버지 뒷머리는 까치집이 지어져 있었고, 오래돼 변색된 소파에 앉지 않고 딱딱한 거실 바닥에 앉아있었다.


남자는 남자의 아버지가 보는 TV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남자는 방문을 열고 나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남자의 아버지가 남자에게 먼저 인사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어 보였다.


이윽고, 남자의 아버지는 아주 얇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의 옆엔 침과 담배꽁초로 지저분해진 종이컵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종이컵에선 꽁초로부터 담배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불편하고 긴장된 공기가 무겁게 깔렸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젠 제법 익숙한 풍경인 듯 보였다.


불 꺼진 남자의 방. 남자는 책상에 팔꿈치를 올리고 앉았다.


남자는 생각했다. 누군가가 나를 바라본다면 '평범하게 잘 산다'고 생각하겠지. 남자는 괴로워 보였다. 자신이 처한 환경이 참으로 처량하다고 되뇌었다.


하지만 집 밖에서의 남자는 그렇지 않았다. 친구와 맥주를 간단히 한잔하며 수다를 떠는 그는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곧잘 시시콜콜한 농담도 던질 줄 알았다. 물론, 완벽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수다를 떨고 웃어젖히는 시간을 가진다. 누가 그를 보고 불행하다고 하겠나, 싶다.


그리고 남자는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편입한 대학교에서 교수님들에게. 그리고 선후배들에게 말이다. 남자는 항상 무엇인가 일을 했다. 학교 공부, 대외활동, 영어공부 등 걷지 않고 뛰어다녔다. 그런 모습에 주변에선 참 부지런하기도 하다고 부러움과 칭찬을 보냈다.


하지만 남자는 바쁘게 살아야 했다. 아니, 살아야만 했다. 숨이 차올라 중간에 쉬고 싶었음에도. 잊고 싶었겠지. 그랬을 거다. 항상 바쁘게 살아 맨 정신을 둘 곳 없게끔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책상에 앉아있던 남자는 뜨겁고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커다란 돌덩이 하나를 가슴팍 위에 올려놓은 듯했다.




고통



남자의 나이 이제 20대 후반이었다. 군대를 다녀온 후, 이젠 완전한 성인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가진 것이라곤 쥐뿔도 없었다. 그래서 그 괴리감은 매우 컸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억세게 짓눌렸을 것이다.


특히, 취업은 어려웠다. 사회구조 탓으로 치부하고 싶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취업 성공에 더 초라해질 뿐이었다.  


막연하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누구나 생각하는 따뜻한 '집'이라는 공간이 없다고 생각되는 자신. 아르바이트로 밀린 학비와 용돈을 충당하는 현재. 이 모든 게 남자의 어깨를 억세게 누르고 있었다.


방문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중요한 건 아니었고 인기척 같은 소리였다. 남자의 아버지가 부엌에서 컵을 꺼내고 있었다. 그리고 발소리. 가정집에선 지극히 정상적인 소리였지만 남자에겐 아니었다. 남자의 신경은 곤두세워졌다. 남자의 미간은 깊이 파였다.


남자의 아버지는 필히 소주를 따라 마실 컵을 찾고 있었을 것이었다.


'또... 술...'


남자는 주먹을 꽉 쥔 채 자신의 책상을 내리쳤다. 분노가 치밀어올라 숨이 헐떡거려지고 주체할 수 없는 괴로움이 요동쳤다. 책상의 유리는 쩍 하고 갈라졌고, 남자의 손날에선 피가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남자는 고통을 느끼고 있어 보이진 않았다.


극심한 분노와 짜증에 남자는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저 미웠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서 ''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남자의 손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무엇이 남자를 이렇게 분노케 하는 것인가.


남자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다. 음.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남자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였을 것이다. 하던 사업이 잘 풀리지 않으면서 남자의 아버지는 술을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부터였는가 집에 눌러앉아 술만 퍼마셨다.


그리고 남자의 집에서 기르던 8살짜리 개 한 마리. 하얀 말티즈였다. 남자가 잘 때마다 같이 누워자던 녀석이었다. 새벽에 목이 말라 부엌으로 가곤 하면, 부스스한 눈으로 터덜터덜 따라나서던 녀석이었다. 그래서 남자는 그 개를 아꼈다.


그런데 어느 날. 남자의 아버지는 술에 찌든 상태가 돼, 그 개를 6층 베란다 밖으로 집어던져버렸다. 남자가 현관문 여는 소리에 짖던 게 시끄러웠다고.


한 손으로 머리만 잡혀 베란다로 끌려간 개. 네 발로 사정없이 발버둥 치던 그 모습을 남자는 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말릴 틈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남자가 현관에서 베란다로 도착했을 땐, 이미 그 개는 아파트 화단 나무 사이로 이리저리 몸이 부딪히고 있었다.


남자의 아버지는 술에 잡아 먹힌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가세는 점점 기울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의 아버지가 술의 의지하게 된 것. 그 모든 게 남자의 아버지만이 책임 있다고 하기엔 어려웠다. 남자의 아버지는 자동차 회사에 부품을 납품하는 작은 공장에 사장이었다. 남자가 어릴 땐, 크리스마스가 되면 트리를 만들기도 했고 설날엔 가족여행을 가곤 했다.


하지만 자동차 회사가 외국으로 떠나면서 남자의 아버지 공장은 동력을 잃었다. 그렇게 남자의 아버지는 자신의 공장과 함께 몰락하기 시작한 거다. 자식에게 한없이 부끄러웠고, 마침내 자신을 내려놓아버렸다. 그 누가 실패하고 싶었겠나. 그도 현실의 냉담한 굴래에 그저 짓밟힌 피해자인 거다.


돈을 벌이지 못하는 가장의 책임감이 너무나 무거웠던 것일 수도.




슬픔



그때, 남자의 어머니가 남자의 방문을 두드렸다. 남자는 방문을 잠그고 있었기에 남자의 어머니는 방에 들어갈 수 없었다. 남자는 방문 고리를 잡고 열려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남자는 괜스레 더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남자의 어머니는 남자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이어, 남자의 어머니가 말했다. "엄마랑 얘기 좀 하자... 응?" 남자의 어머니 목소리는 짙은 슬픔이 묻어있었다. 부탁이라고 하기보단 애원이었다.


"엄마랑 한 번만 얘기해..." 돌아오지 않는 대답 속에서도 남자의 어머니는 계속 애걸했다. 이윽고. 남자는 방문을 열었다.


남자의 어머니는 방문에 기대어 쪼그려 앉아있었다. 처량했다. 남자의 어머니는 하얗게 된 입술로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몰골이었다. 남자의 마음은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엄마...'


남자의 어머니는 다치지 않은 남자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왜 그래... 응? 괜찮아?" 남자는 그런 어머니가 불쌍하고 딱했다. 하지만 남자는 어머니의 손을 거세게 뿌리쳤다. 그리고 TV 앞에서 술을 마시던 아버지에게 소리쳤다.


"당신이 아버지야? 당신 같은 사람이 아버지냐고!"


이러면 안 되는 것인 줄 알지만 매서운 칼날과 같은 말을 쏘았다. 그리고 남자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거 놔!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남자는 어머니에게만은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안됐다. 무엇인가 불가역적이라 느껴진 모양이다. 남자에겐 깊은 또 하나의 상처가 있어서일까.


남자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남자의 아버지가 술에 쩌들면 어머니를 향해 손찌검을 했었다. 술을 먹지 말라던 어머니와 술을 내놓으라는 아버지.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 같은 싸움을 했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 그리고 어머니의 비명은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어느 날, 남자가 거실로 나가 그 싸움을 중단하고자 했다. 그때, 남자는 아버지의 손에 들린 부엌칼을 목격했다. 남자의 어머니가 말했었다. "그래. 차라리 죽여라. 그냥 죽여!"


"이 씨발년이... 진짜 뒤지고 싶냐?" 남자의 아버지는 소름 끼치도록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시, 고2였던 남자는 무서웠다. 그래서 남자의 어머니 앞으로 달려가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공포감을 느끼고 머뭇거린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평범함



남자는 아버지에게 '당신이 아버지냐'고 소리쳤지만 남자의 아버지는 별말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술잔을 들이켰다. 남자는 현관문을 '쾅'하고 열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1층에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의 속도는 느렸다. 적어도 남자가 느끼기엔 말이다.


남자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10년 넘게 여전히 술에 취해 있는 아버지의 모습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날 선 부엌칼을 마주한 어머니의 모습, 발버둥 치던 자신의  그리고 깊게 잠겨버린 자신의 처지가 복합적으로 밀려 올라온 것이다.


남자의 어머니가 따라 나왔다. 그리고 남자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말했다. "어디 가려고...? 응?"


"엄마가... 엄마가 미안해..."


남자는 자신의 어머니를 쳐다보지 않고 바닥만 바라봤다. 남자의 어머니 발이 보였다.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 남자를 붙잡기 위해 신발도 채 신지 못하고 따라나선 것이었다. 추운 겨울날 '얼마나 발이 시릴까'하는 걱정이 순간 스쳤다.


남자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남자의 어머니는 그런 남자의 옷깃을 바로 잡아주며 눈물을 흘렸다. 절규가 아닌 그냥 주르륵하고 나오는 눈물이었다.


남자는 '왜 어머니가 미안해야하나'고 생각하니 더 큰 답답함과 울화가 치밀어 오른 듯했다.


남자는 그저 우리 집이 평범한 집처럼 되고 싶어 했다. 그저 평범함. 모든 가족이 같이 귤을 까먹으면서 TV를 보고 주말에 늦잠 자면 잔소리해주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었다. 모두가 그렇게 사는 것처럼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말이지.


남자는 그 모든 걸 남자의 아버지가 깨부수었다고 단정 지을 수밖에 없어 보였다.


'땡'


엘리베이터가 6층에 멈추고 문이 열렸다. 남자는 곧장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남자의 어머니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어찌나 서럽게 울기 시작하는지. 참으로 딱했다. 차가운 바닥에서 울고 있는 남자의 어머니 모습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배타적



남자는 1층으로 내려왔다. 담배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의 손이 다쳤음을 알아차렸다. 조금씩 아려왔다.


남자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담배 맛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금세 담배 하나를 다 폈고, 남자는 다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목구멍이 칼칼했다. 여전히 담배 맛은 없었다. 그렇게 담배를 총 3개비를 피워버렸다.


남자는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대학교 동창이었다. 그는 전화를 받았다.


"어! 여보세요 ㅎㅎ. 무슨 일이고? ㅋㅋ"


남자는 방금까지 아무런 일도 없었다듯이 친구에게 말했다. 밖에서 인정받던 남자의 모습이었다. 항상 쾌활하고 적극적인 그런 남자로 말이다. 조금 전의 파멸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동창은 남자가 집 앞에서 서성인다는 말에 '추운데 빨리 집에 들어가. 병신아'하고 말했다.


남자는 3초 정도 멈칫하다 답했다. "엉ㅋㅋ 들어가려고!"


남자는 아파트 출입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배타적인 자아가 있음에 제 자신이 소름 끼치고 역겨웠다. 하나의 연극을 하는 가짜 자신에게 괴로웠다. 다리 길이가 제각각인 탁자가 된 자아였다.


출입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갈기갈기 찢고 싶었다. 그리고 남자는 다시금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하지만 불을 붙이진 않았다.


이 연극을 끝내고 싶다, 고 남자는 반복적으로 속삭일 뿐이었다.




불길



남자는 허름한 모텔로 갔다. 맥주 2캔 그리고 소주 1병을 집어 들고.


남자는 그렇게 3일 내내 모텔 밖을 나오지 않았다. 밖에서 비추는 가로등 빛조차 거부하고자 창문의 블라인드를 모두 내린 채로.


휴대폰을 일부로 끄진 않았지만 이틀째가 되던 날, 자연스럽게 방전이 돼 꺼져버렸다. 그리고 남자는 첫날을 제외하곤 숙면을 취했다. 집 밖을 벗어나서야 그렇게 깊은 잠을 들 수 있었던 것이리라.


삼일째가 되던 날. 남자는 그제야 모텔방을 둘러봤다. 불을 켜보니, 양말과 외투가 바닥에 내팽겨진 상태로 있었다. 그리고 탁자엔 비어있는 소주 1병과 맥주 2캔, 벌어져 있는 담배 1갑이 놓여있었다.


돌이켜보면, 남자의 상황은 그리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있다. '가정'은 '평범'해야 한다는 자신의 확고한 틀에 맞추면서 이런 사달이 난 게 아닐까, 하고 남자가 자책하는 게 느껴졌다. 남자는 남겨진 어머니가 생각났다. 맨발로 흐느끼고 있던 어머니 말이다. 그리고 건강했던 아버지의 자상함도 그리워졌을지도.


남자는 타는듯한 갈증을 느꼈다. 침을 삼킬 수도 없을 만큼 입이 말랐다. 남자는 냉장고 속 생수를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입 주변으로 물이 흘러나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남자는 금세 생수 하나를 비웠다. 이윽고, 휴대폰을 충전했다.


10초 남짓 기다리니, 휴대폰 로고가 뜨고 곧 휴대폰이 켜졌다.


휴대폰을 보니, 모르는 번호로 된 전화가 16통이 들어와 있었다. 보아하니 모텔에서 지낸 이틀째되던 날이었다. 웬만하면, 모르는 번호는 다시 걸지 않는 남자였다. 하지만 16통의 부재중 전화는 가볍게 무시할 순 없었다.


남자는 전화를 걸었다. 길지 않은 수화음에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참일병원입니다" 병원이었다.


남자가 말했다. "전화가 많이 들어와 있어서요..."


수화음 넘어, 병원에서는 남자의 이름을 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남자의 이모가 전화를 넘겨받았다.


이모는 남자의 이름을 3번 불렀다. 그리고 남자는 이모의 말을 듣고 손에 쥔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_엄마가 죽었다.


남자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슬픔도 밀려오지 않았고 분노가 생기지도 않았다. 남자는 그냥 멍하니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남자의 어머니는 남자가 집을 나간 이틀째. 화장실에서 목을 맸다. 남자의 아버지가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겨졌을 땐, 이미 차가운 냉기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남자의 어머니는 죽음이 끝났고 어둠 속에 삼켜져 버린 것이다.


남자는 얼이 빠져 있었다. 다만, 창문 밖에서는 네온사인이 번쩍 거렸고 사람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는 슬픔의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세상은 평온했다.


"씨..발..."


한참을 앉아있던 남자가 처음으로 입 밖으로 꺼낸 건 욕이었다. 탁자 위 담뱃갑엔 담배는 없었고 그저 필요 없어진 라이터가 비어져 있는 술병 사이에 놓여있었다.




절망



모텔에서 나온 남자는 병원으로 가지 않았다.


남자가 택시에서 내린 곳은 인천항이었다. 남자는 제주도 편도행 배편을 샀다. 바다가 보고 싶었다. 끝없이 펼쳐져 울렁이는 파도가 보고 싶었다. 그게 다였다.


남자는 신발을 구겨 신었고, 한쪽 팔엔 붕대를 감고 있었다. 수염이 자라 얼굴은 거뭇거뭇했다. 눈에 띌 법 하지만 제주도 여행으로 들뜬 관광객 눈에는 그가 보이지 않았다.


커다란 배는 뱃고동 소리를 3번 정도 울리더니, 인천항을 떠나기 시작했다. 남자는 선실로 들어가 퍼질러 누웠다. 눈을 감았더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남자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다른 사람이 보일까. 벽 쪽으로 돌아 누워 눈물을 흘렸다. 남자는 코가 찡해졌는지 코를 연신 훔쳤다. 이윽고 잠시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까만 밤이 돼 있었다. 남자는 선실에 나와 배 뒤편으로 갔다. 배의 엔진에 바다의 물결은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마치 남자의 심정과 같았다. 울렁이는 파도 탓인지는 몰라도 남자의 속은 울렁거렸다.


_남자는 바다로 뛰어내렸다.


남자는 죽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세상의 인연을 뒤로하고 말이다.


아주 깊은 바다였다. 단숨에 남자의 턱밑으로 짠 바닷물이 출렁거렸다. 그럴 때마다 바닷물이 입안으로 들어왔다. 메슥거리는 듯 헛구역질을 했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서고 싶어 했다. 하지만 발은 닿지 않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아주 새까만 바다 한가운데 남자는 던져진 것이다. 그게 자발적이든 타의든.


남자는 검은색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가 타고 온 배는 폭죽을 터트리며 멀어져 갔다. 폭죽이 터질 때마다 사람들의 환호가 들려왔다. 다만, 그 소리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던 그때가 생각났다.


저 멀리 보니 밤의 어둠과 바다의 색은 일치했다. 경계를 알 수 없었다. 이윽고, 그도 그의 어머니와 같이 어둠 속으로 삼켜졌다.









-미스터동의 단편소설 '평범함 속에 배타적인' 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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