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럽집 Oct 22. 2021

마음으로 걷는 길

오스트리아 할슈타트-오버트라운 : 자연 풍경, 여행 에세이

할슈타트-오버트라운 풍경


마음은 방향을 따라 걸어서 갑니다


살아있으면서 살고 있다고, 존재하고 있다고 자각할 수 있는 있는 순간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머릿속이 다 정리되고 청소된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세상의 모든 잡념을 잊고 그냥 걷고 싶어서... 그래서 할슈타트에서 오버트라운 까지 걷기로 했다. 여행 가기전에 여기저기 찾아보니까 누가 가는 길에 곰이 나올 수도 있다고, 그래서 혹시나 하고 걱정했는데 하얗게 눈 덮인 알프스 산맥 경치를 마치 내 것 인양 신나게 감상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내 생애 다시 이렇게 광활하게 넓은, 눈 덮인 모습을 또 볼 수 있을까? 알프스 산맥이라고 하면 스위스나 프랑스 몽블랑 같은 곳이 유명하지만 사실 알프스 산맥이 가장 많이 있는 곳은 여기 오스트리아 이기에 '하얀 세상'을 실컷 구경했다. 그래 이러려고 걸었지, 이렇게 마음으로 걷고 싶어서, 천천히 걸어가려고. 


물을 떠다가 동이로 며칠을 날라도 호수를 만들 수 없고, 흙을 날라다 쌓아둔다고 산이 될 수 없다. 인간이 하얀 눈이 보고 싶다고 해서 넓은 땅 위에 고루 하얗게 쌓을수도 없으니 이런 풍경을 걸어보는 것은 정말 감동적인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됐다. 생애 한 번 이런 곳을 걸어보는 건 행운이 아닐까 싶다. 이것저것 불만이 가득한 일상을 떠나 온 도피여행이었는데 걷는 내내 보이는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된 나 자신이 놀라울 정도다. 할슈타트-오버트라운을 걷는 2시간 남짓은 내내, 내 원래의 마음, 내 마음 안으로 걷는 것 같았다. 




이런 곳에서 살고싶다..


내가 걸어온 길이 아름다워 보일 때까지 난 돌아오지 않을 거야


모든 잡념이 잊히는 순간 멋진 풍경이 보이기도 하고, 그림 같은 풍경을 보다가 모든 게 잊히기도 한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관광도시 할슈타트와 소도시 오버트라운 사이에는 배를 타고 다녀야 하는 큰 호수가 하나 있는데 물 건너 저 멀리 작은 동네가 하나 있는 게 예쁘길래 사진을 찍었더니 종이 위에 물감을 찍어다 반을 접고 펴낸 것처럼 데칼코마니 같은 모습에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껴보기도 했다. 마치 음악들을 때 소리가 달라질 때마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이퀄라이저 같이 그야말로 그림 같았다. 거대한 산, 넓은 호수, 작은 집들, 눈 쌓인 세상에 난 그저 한 없이 작은 인간일 뿐이라는 생각밖에 안 드는 그런 곳.


그런 곳에서 살고 싶다, 한적하고 조용한 곳. 내가 원하는 웬만한 것은 모두 갖춰져 있는 곳. 여행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니까 누구는 여기를 두고 유럽여행은 여름에 가야 한다고, 눈 오니까 강원도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하길래 처음에는 "여기도 좋아요 왜 그래요.."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이병률 시인의 '끌림'이라는 책에서 읽었던 한 구절이 생각났다. "내가 걸어온 길이 아름다워 보일 때까지 난 돌아오지 않을 거야"라고 했던. 생각해보니까 여기처럼 조용하고 평화롭고 한적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내 방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조용하게 음악을 틀고 사진을 보면 될 일이니까. 정리되고 정돈되고 잡념을 덜어내고 싶다면, 내 책상과 내 방을 정리해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 나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도 괜찮을 것 같다.




오버트라운 동네마트 가는 길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오버트라운 여행기


할슈타트는 고대어로 '소금 광산'을 뜻하는데 유럽 사람들이 여행 가고 싶은 도시 1위에 뽑힌 적도 있는 만큼 자연경관이 아름다워서 관광객이 많은 도시이다. 때문에 숙소를 잡기가 어려워서 호수 둘레길 따라 차로 한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오버트라운 이라는 작은 동네에 머물기로 한 건데 막상 가보니까 할슈타트도 물론 멋진 곳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사람이 별로 없고, 더 광활한 자연을 볼 수 있던 오버트라운이 더 좋았다고 기억된다. 오버트라운을 따로 가고 싶을 정도로 그곳에서 난 '인생여행'을 했었다. 초등학교 때 슬기로운 생활, 탐구생활처럼 자연에서 배우는 게 많고, 치유되는 게 많다는 사실을 처음 느꼈던 아주 소중한 여행지. 그리고 그곳을 거닐었던 행복한 추억에 나는 오늘도 살아있다는데 감사함을 느낀다.


ps. 

오스트리아 구석진 동네의

하나밖에 없는 마트에 가는 길을

몇 년째 못 잊는 나는 이상한 사람.

이전 01화 낯선 도시에서 낯선 음식이 주는 행복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