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센티미터 젤리곰의 심장소리

너를 만난 지 8주 차

by 맘고래

아가야,

오늘은 병원 진료를 가기 전, 아침부터 긴장이 되었단다. 오늘은 아가의 심장소리를 처음 듣게 될 날이었거든.


5주 차에 처음으로 병원에 갔을 때는 아가가 자궁 안에 잘 자리 잡았는지 확인할 수 있었지만, 아주 작은 아가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어. 초음파 사진 속에 찍혀 있는 하얀 점을 보며, 엄마는 아득히 멀리 존재한다는 사실만 아는 별의 뿌연 사진을 보는 기분이 들었어. 심장소리를 듣기 전에는 산모수첩을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대기실에 앉아 있는 엄마들이 다 들고 있는 분홍색 수첩도 받지 못한 채 뿌연 사진 몇 장만 고이 손에 쥐고 왔었지.


8주 차에 접어든 거울 속 엄마의 배는 다소 묵직해진 것 같고 입덧은 약 덕분에 조금 잦아들었지만, 12주 전까지는 아무 이유 없이 아가가 훌쩍 떠나버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엄마는 자주 배를 쓸었단다. 네가 무탈하게 잘 있길 간절히 바랐어. 어느 날 밤에는 그곳의 네가 너무 궁금해서 가만히 배에 손을 가져다 대었지. 엄마의 맥박보다 빠르게 두근거리는 것이 있음을 느꼈다면 엄마의 간절한 착각인 걸까.


떨리는 마음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는데 어둠 속에서 젤리곰이 뿅 하고 나왔어. 하얀 젤리곰은 까만 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그 부분이 뇌라고 하셨어. 그리고 몸통의 중간 부분을 포착하더니 심장소리를 들려주셨지.


콩딱콩딱콩딱콩딱…


약해지지 않고 규칙적으로 힘차게 들리는 아가의 심장소리였어. 어느 밤에 느꼈던 그 두근거림이 맞았던 것 같아. 그렇다고 엄마는 믿을래.


이제 아가는 2센티미터 정도인데 그 속에 멈추지 않고 부지런히 빠르게 심장이 뛰고 있구나. 엄마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는데 실로 엄청 대단한 일을 해 내고 있는 기분이 들어. 이렇게 의도치 않게 위대한 일을 해낼 수도 있는 걸까. 부지런히 잘 커 주고 있는 아가가 엄마한테 정말 위대한 존재야. 엄마는 방해되지 않게 좋은 텃밭이 되어줄게. 건강한 너와 건강한 내가 아무 일 없이 만날 수 있기를 오늘도 기원한단다.


드디어 분홍색의 테두리가 둘러진 산모수첩을 받았단다. 예정일이 적힌 임신확인서도 받았어. 예정일대로라면 올 가을, 단풍보다 빠르게 우리는 만나게 되겠구나. 아직 아득하게 느껴지는 그 날짜를 몇 번이고 되뇌며 마음에 새겼어.


임신확인서를 들고, 엄마와 아빠는 보건소에 가서 임산부 등록을 했단다. 이제 엄마는 국가에서 공인하는 임산부가 되었고, 몇 가지 지원혜택을 받게 되었단다. 분홍 테두리가 그려진 동그란 배지도 받게 되었고, 철분제, 엽산을 선물 받았어. 이제 기차를 탈 때 할인도 받을 수 있고, 병원비로 사용할 수 있는 바우처도 지원받았단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라 아가 덕에 받는 선물들이 감사하고 기뻤어.


보건소가 집에서 멀어서 한 번에 일을 다 처리하려고 서류 출력도 하고 이곳저곳을 아빠를 따라다니다 보니 금세 지쳐버렸단다. 집에 와서 이제는 익숙하게 낮잠을 잤어. 엄마가 자는 동안 아가가 큰다고 생각하면 죄책감이 조금은 줄어들어. 활동량이 점점 줄고 있어서 걱정이 되지만, 안정기에 이르게 되면 엄마는 다시 힘을 내보려고 해.


집에 돌아와 산모수첩을 다시 펼쳐보니 태명을 적는 칸이 있었어. 이제껏 아가라고 부르던 너를 마침내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게 되었어. 아가야, 이름에는 참 신기한 힘이 있단다. 누군가를 이름으로 부르면 그 존재가 더 특별하고 깊숙이 마음속에 새겨지게 돼. 이미 엄마와 아빠에게 커다란 의미인 아가를 이름으로 부르고 나면, 아마 우리의 세상은 온통 너로 가득 차게 되겠지.


사실 아가에겐 이미 태명이 있단다. 재작년에 엄마와 아빠가 여행을 떠났을 때, 할머니는 농담인 듯 진담처럼 손주를 만들어 오라고 하셨었지. 엄마와 아빠가 처음 방문하는 도시의 이름을 따서 태명까지 직접 만드시면서 말이야.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여행 중간에도 조심히 잘 다니라는 말 뒤에, 당신이 만드신 태명을 담아 기원의 말씀을 하셨었지. 엄마와 아빠도 어느새 익숙해져서 여행 중에 자주 농담처럼 그 이름과 기원을 이야기하곤 했단다.


하지만 그 당시엔 우리의 인연이 아직 멀리 있어 닿을 수가 없었던지 그 이후로도 1년 넘게 엄마와 아빠는 태명만 마음 속에 간직한 채로 아가를 기다렸지. 불러도 늘 허공에 닿았던 그 이름이 이제야 닿을 곳이 생겼구나.


막상 부르려고 하니 목소리가 살짝 떨렸단다. 잠긴 목소리를 잔기침으로 풀고 조심스레 너에게 제대로 된 인사를 건네 봐.


“로마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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