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이란 생존신호

너를 만난 지 5주 차

by 맘고래

아가야,

너라는 존재가 나라는 존재 속에 피어났다는 걸 두 줄로 확인을 했지만, 그 외에는 눈에 띄게 너의 존재를 인식할 수가 없었어. 예약한 진료일은 더디게 찾아오고 괜히 거울 앞에서 윗옷을 들추어 아직 납작한 배를 호기심에 만져보곤 했지.


진료일을 이틀 앞둔 어느 날, 밥솥 뚜껑을 열고 밥을 푸는데 주걱 움직임에 따라 일어난, 미지근하고 눅진한 밥 냄새가 얼굴에 닿자마자 멀미가 시작되었어. 정말 드라마 속 너무 뻔한 장면처럼 '우욱'하는 소리를 내고 화장실로 달려갔지.


그때부터 멀미가 계속되었어. 어질어질해서 누워있을 수밖에 없고 식욕을 잃었어. 조금이라도 넘어가는 건 오렌지주스였지. 아가 걱정이 되어서 잘 먹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매 끼 식사는 마치, 계속 차멀미를 하다가 휴게소에 들러 마주한 식사 같았어. 몇 숟갈을 겨우 뜨고 오렌지주스를 마시고 좀 있으면 어느 순간 큰 파도 같은 멀미 기운이 몰려와 화장실로 가서 오렌지주스까지 다 토해내고야 말았지.


열 달 동안 이 멀미가 계속되면 어떡하나. 어지러움과 울렁거림에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만 있던 며칠이 이미 속상했는데, 앞으로도 계속 누워만 있어야 하는 건 아닌가 겁이 나기도 했어. 그리고 입맛이 너무 없으니 아가가 뱃속에서 잘 자랄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고 말이야.


제대로 세수도 못하고 울렁거리는 속을 레몬사탕으로 잠시라도 잡아보며 첫 진료를 보러 병원에 갔어. 접수를 하고, 키와 몸무게, 혈압을 재고, 대기실에서 이름이 불릴 때까지 기다렸어. 떨리는 마음으로 초음파검사로 아가를 처음 만났지. 다행히 자궁 안에 잘 자리 잡은 아가는 아직 심장소리를 확인하기엔 너무 작다고 하셨어. 산모수첩을 받기도 아직 이르다고 말이야.


아직 이르다고 하지만 입덧은 이미 너무도 확실하게 엄마에게 아가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던 터라, 의사 선생님은 입덧 약을 처방해 주셨어. 안전하니, 맘 놓고 정해진 복용량을 지키며 먹으면 된다고 하셨어.


약국에서 처방된 약을 받으며, 슬쩍 여쭈었지.

“이 약은 그래도 최대한 안 먹는 게 낫죠? “

-”오, 아니요. 이 약 먹고, 밥 잘 먹는 게 아기한테 훨씬 좋아요. “

이렇게 말씀하시는 약사 선생님 등 뒤에서 엄마는 정말 후광을 봤단다.


볼록한 배 속의 하트가 그려진 하얀 알약은 하루 최대 복용량이 4알이고, 이 약의 가장 큰 부작용은 졸린 거라고 하셨어. 약은 복용하고 효과가 나타나는데 다섯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보통 밤에 두 알 복용을 하고 잠이 들면 입덧증세가 가장 심한 아침에 효과가 있다고 하셨어. 입덧 증세가 하루 종일 있다면 아침 먹고 한 알, 점심 먹고 한 알까지, 그렇게 하루 최대 4알까지가 권장량이었어.


밤에 약을 두 알을 먹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겠더라고. 아빠 도시락도 싸 줄 수 있었어. 감사하게도 약의 효과를 볼 수 있었던 거지. 서서히 배고픔도 느끼게 되었고 여전히 오렌지주스와 레몬사탕이 필요하지만 멀미가 잦아드는 기분이었어.


그래도 약을 조금이라도 덜 먹어보자 싶어서, 낮에 약을 먹는 것은 참았어. 하루에 딱 두 알씩만 먹어도 낮에 앉아서 다른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단다. 대신, 아침에 아빠를 출근시키고 나면 잠이 그렇게 쏟아질 수가 없었어. 오전에는 꼭 한 시간 정도는 낮잠을 잤지. 다른 많은 걱정들을 뒤로하고 정말 팔자가 좋다는 혼잣말을 하면서 말이야.


오랜만에 딸이 걱정되어 찾아온 할머니가 옛날이야기를 해주셨어. 할머니가 엄마를 가졌을 때는 이런 약도 없었고, 궁금한 걸 찾으면 알려주는 그런 커뮤니티도 없어서, 그저 입맛이 없으니 아무것도 드시지 않으셨대. 어지럼증과 입덧은 더 심해지고 계속 구역질이 나오고 결국에는 살이 너무 많이 빠져서 병원에서 수액을 맞으셨지. 그 당시에 건강이 위험해질 정도가 되자, 아기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는 지점까지 이르렀대. 할머니도 할머니의 엄마에겐 소중한 딸이었으니, 엄마는 딸의 상태를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었던 거지. 그렇게 그때 검진을 다시 받는데, 뱃속 아기가 너무도 잘 헤엄치며 있더래. 그 모습을 보니 아기를 절대 포기할 수가 없어서 그 힘든 입덧을 열 달 내내 하며 버티셨단다. 아가야. 엄마는 그렇게 세상에 나올 수 있었어.


할머니가 그러셨어. 입덧은 아기가 잘 있다는 생존 신호라고. 아가야, 너는 아직 심장소리도 안 들릴만큼 작은 존재지만, 엄마는 이 울렁거림과 어지러움이 아가가 잘 있다고 엄마에게 보내는 인사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그렇게 생각하니 뱃속에 있는 아직은 미지의 존재인 너와 연결되어 있는 기분이 들어.


뱃속에 자리 잡은 콩알보다 작은 너를 본 이후로, 엄마는 세상 모든 것에 무한하게 긍정적 이어졌단다. 입덧을 경험하면서는 없던 인류애가 생겨나고 말이야. 아무리 밉고 모자란 사람이 있다 해도 그 사람도 누군가의 뱃속에 자리 잡고 약하거나 강하거나 생존신호를 보내며 자라다가 힘겹게 세상에 나왔을 거라고 생각하니, 소중하게 느껴지는구나.


아가야, 이 세상에 어느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단다. 사람은 동화 속에 황새가 물어주거나 양배추 밭에서 캐 오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야. 아가 덕분에 엄마는 당연한 것도 위대하게 느껴지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 정말 고맙게 생각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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