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찰나

너를 만난 지 4주 차

by 맘고래

아가야,

너와 함께 셋이서 맞이하는 첫 새해를 엄마와 아빠는 꼭 보고 싶었단다. 서둘러 끓인 어묵탕을 보온통에 담고, 새벽길을 달려 경주로 향했어.


어제 소식을 들은 이후로, 아빠는 엄마가 유리인형이 된 것처럼 어디 부딪힐까 조심하고 있어. 텅 빈 도로에서도 과속하지 않고 안전 운전을 했단다.


바다 근처에 다다르자, 도로가 차로 가득했어. 감포 바다에서 떠오르는 새해를 보려고 사람들은 갓길에 차를 세우고 바다를 향해 달렸지. 엄마와 아빠도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렸어.


엄마와 아빠는 우리가 좋아하는 오래된 절터로 갔어. 도로에서 올려다보이는 높고 너른 언덕에 탑 두 개만이 남아 나란히 서 있는 절터는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아버지를 그리며 아들이 세운 절이 있었다고 전해져. 그래서 그 절터에 남은 기단에는 용왕이 다닐 수 있는 길이 만들어져 있단다. 새해가 떠오르면 그 햇빛을 받아 빛나는 두 탑의 모습을 보고 싶었어. 용의 기운도 받고 싶었고 말이야.


곧 해가 뜨려고 하는지 바닷가 쪽 하늘부터 밝아오기 시작했어. 탑을 비추려면 해가 좀 더 떠오르길 기다려야 했어. 추웠지만 아빠와 탑 앞에 서서 기다렸어. 생각한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우리의 새해 첫 계획을 꼭 이루자는 마음으로 그 시간들을 보냈어.


드디어 새해가 탑 위로 빛을 드리우고, 우리는 꼭 보고 싶었던 그 장면을 마침내 마주하게 되었어. 기다리는 시간에 비하면 순간으로 느껴지는 완벽한 찰나였어. 기도할 생각도 않고 그저 그 아름다움을 보았지. 그리고 감사함을 느꼈어. 가끔 느껴지는 아랫배의 뭉침이 새해에 우리에게 올 존재를 깨닫게 했지.


공기는 차갑지만 내복과 두꺼운 외투를 껴입어 춥지 않았어. 충분히 강했고 충분히 보호받고 있는 기분이었어. 모든 게 잘 될 것 같은, 걱정과 불안이 단 1%도 없는 그런 마음이었어. 내 평생 그렇게 순수한 긍정을 한 적이 있었을까. 마음이 강해진다는 건 그런 건가 봐. 갑자기 모든 걸 다 해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어, 잘해보자 싶었어.


세찬 바람을 피하기 위해 뒤에서 엄마를 안아준 아빠가 나직이 소원을 빌었어. 아빠의 마음도 엄마와 같았단다. 손을 모으고 아가와 건강하게 만날 날을 기원했어. 그리고 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했어.


그 찰나가 지나고, 엄마와 아빠는 파도처럼 몰려왔다가 쓸려 떠난 듯 이미 비어있는 갓길주차장의 차 안에서 어묵국물을 나눠 먹었어. 언 몸을 녹이고 용왕이 되어 나라를 지킬 테니 바다에 묻어달라고 했던 왕의 무덤이 있는 바닷가로 갔어.


그 바다는 파도가 늘 힘차게 치곤 해. 그래서 파도가 만드는 포말이 다른 곳보다 훨씬 넓고 큰 것 같은 바다야. 동해의 깊고 푸른 바다와 흰 포말의 대비는 그 바다를 늘 신비롭게 보이게 만드는 것 같아. 그런 기운 덕분일까. 참 많은 사람들이 이곳 바다를 보며 소원을 빌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의 중간에 떠 있는 새해는 겨울 바다를 짧은 그림자를 만들며 비추고 있었어. 힘차게 파도치는 바다를, 눈이 시리게 반짝이는 바다를 눈에 담으며 마음속으로 또 기도를 했단다.


언젠가 이 바닷가에 건강하게 태어난 아가와 함께 오는 날을 상상해 봤어. 그날에는 우리도 작은 새우깡을 한 봉지 사서 갈매기에게 간식도 주고, 달려오는 파도를 기다렸다가 피하는 놀이도 하고 꼭 그러자꾸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