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아가

너를 만난 지 4주 차

by 맘고래

아가야,

납작한 배를 쓰다듬으며 너를 가만히 불러봐. 정말 이 안에 누군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 아직 스스로를 엄마라 부르는 게 너무 어색하지만, 그래도 한번 해 볼게.


엄마는 너를 기다려 왔단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으니까 두 손 모아 너라는 선물을 받는 행운을 얻을 수 있기를 소원해 왔어.


‘’혹시나 우리 몸에 문제가 있어서 그 선물을 받을 수 없는 걸까?”


기다림이 길어지자, 엄마와 아빠는 난임병원을 찾아가서 검사를 받기로 했어. 병원에는 엄마처럼 아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친절한 분들이 있었어.


모든 검사는 긴장되고 낯설고, 때로는 큰 숨을 들이쉬어도 아플 때도 있었어. 그럴 때는 말이야.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엄마는 가만히 아가를 속으로 불렀단다. 언젠가 아빠와 드라이브를 하면서 함께 지었던 아가 이름을 부르면서 말이야.


마지막 날, 결과를 받았는데 감사하게도 엄마와 아빠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었어. 마음속에 있던 돌덩이가 사라지고 꽃을 틔울 준비가 된 화분 하나가 자리 잡은 기분이었다고 할까. 이번 겨울 동안 몸을 따뜻하게 잘 만들어서 다가올 봄에는 고대하던 선물을 받게 되길 바랐지.


그때 엄마는 가구제작교육을 마치고 건축디자인 일을 다시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자주 추웠고 노곤함을 느꼈어. 이제껏 엄마 인생에 없던 낮잠을 잔 적도 있었어. 그동안 너무 열심히 달려서 체력이 떨어진 건가 싶었지.


그날은 2024년을 이틀 남긴 날이었어. 새로운 곳에서 일을 하기 위해 면접을 봤어. 날카로운 인상의 소장님은 으레 건축사사무소라면 그렇듯 피할 수 없는 야근과 업무의 강도에 대해 선심 쓰듯이 미리 경고해 주었어.


메마른 대화의 끝에 사무소를 나오며 미래에 엄마가 꿈꾸는 사무소와는 그림이 많이 다르구나 생각했어. 그렇지만 얼어있는 취업시장 속에 경력을 이어가려면 여기가 맞지 않나 고민이 되기도 했지.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골목에 접어드는데, 약국이 보였어.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매 달 찾아오는 생리가 평소처럼 며칠 늦어지긴 했는데, 그곳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확실히 확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노란색 박스에 두껍고 검은 영어가 세련되게 적혀있는 테스트기 두 개를 사서 집으로 왔어. 정확한 테스트는 아침 첫 화장실에서 해야 하지만 기다리지 못하고 바로 테스트를 했어. 사실 결과가 어떻길 원했는지는 엄마도 잘 모르겠어. 그곳이 아닌 것 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다시 일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도 않았거든.


붉은 선의 기운을 가진 채로 적셔지는 테스트기의 시약지를 평소처럼 눈으로 따라갔어. 늘 앞선 줄이 붉게 떠오르길 기대하며 보다가 두 번째 줄이 혼자 떠오르는 걸 보고 실망하곤 했었지. 오늘은 조금 복잡한 마음으로 시약지를 들여다보는데, 앞선 줄이 뿅 하고 나타나는 거였어.


놀라서 내려놓고 옷을 추켜 입고 손을 씻으며 더욱 선명한 결과를 위해 시간을 충분히 끌었어. 손을 닦고, 호흡을 한번 내쉬고 다시 들여다보니 처음 보는 선명한 두 줄이 있었어.


아가야, 엄마가 처음 내뱉은 말은 뭐였을 것 같아?

엄마의 첫마디는 이거였어.

“어떡하지?”

웃음이 터졌는데, 거울 속 엄마 미소가 스스로 보기에도 참 미묘하고 복잡했어.


하루를 숨기고 있다가 올해의 마지막 날,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기 전에, 아빠한테 테스트기를 보여줬어.

아가야, 아빠가 처음 내뱉은 말은 뭐였을 것 같아?

아빠의 첫마디도 이거였어.

“어떡하지?”

그 말에 둘 다 웃음이 터졌는데, 엄마가 바라본 아빠 미소는 티끌 없이 단순하고 맑아서 엄마마저 따라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어.


아가야, 너는 그렇게 2024년의 대미를 장식하며, 감사하게도 갑작스레 세상 복잡한 엄마와 세상 단순한 아빠를 찾아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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