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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화장 문화의 역설, 미의 추구는 인간의 본능

by 무체 Mar 27. 2025

 종교가 일상을 지배하던 중세시대. 흔히 '암흑기'라 불리는 이 시기에 미와 화장은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 

로마 제국의 세련된 미용 문화가 무너진 자리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의 기준은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변화해 갔다. 중세 초기, 기독교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육체적 아름다움보다는 영적 순결함을 중히 여겼다. 그래서 여성의 화장과 외모 치장은 '허영심'의 표현으로 간주되어 죄악시되었다. 테르툴리아누스와 같은 초기 기독교 사상가들은 화장을 "신이 창조한 몸을 왜곡하는 행위"로 비난하는 등, 당시 여성들은 수녀와 다름없는 제약된 생활을 오랫동안 지속해야 했다.


성행하던 로마의 공중목욕탕 문화는 쇠퇴하고, 화장은 제한적인 형태로만 허용되었다. 여성들은 생선 기름과 숯을 혼합해 눈썹과 아이라이너를 그리거나, 맥주 거품으로 세수하고 식초를 첨가한 점토로 얼굴을 하얗게 하는 소박한 방법을 사용했다. 이는 오늘날의 화려한 메이크업 문화와는 거리가 먼 실용에 초점을 맞춘 접근이었다.


그러나 11세기부터 시작된 십자군 전쟁은 서유럽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전쟁터로 떠난 남성들 대신, 여성들은 중요한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마담'으로서 자녀 교육과 손님 접대를 담당하면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와 자율성이 확대되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외모와 화장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십자군 전쟁이 가져온 동서 문화 교류였다. 십자군들은 동방의 발전된 화장품과 향수, 직물 등을 유럽으로 가져왔다. 중세 초기 서유럽이 상대적 암흑기를 겪는 동안, 비잔틴 제국과 이슬람 세계는 생활 수준과 문화적 측면에서 훨씬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장미수, 에센셜 오일, 다양한 향료들이 유럽에 소개되면서, 서유럽의 미용 문화는 풍부해지기 시작했다.


14~15세기 중세 후기로 접어들면서, 미용 문화는 더욱 체계화되었다. 이 시기의 전형적인 미인상은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창백하고 투명한 피부, 눈썹이 없는 얼굴, 그리고 이마 헤어라인을 상당히 높게 밀어 올린 스타일이 특징이었다. 이런 미적 기준은 당시 귀족 계층의 '일하지 않는 삶'을 상징하는 창백함과 함께, 얼굴의 이목구비를 강조하는 미적 취향을 반영했다.

넓은 이마를 드러내는 한편, 앞가슴이 노출되는 의상을 통해 육체미를 부각했고, 창백한 피부에 뺨과 입술만 가볍게 색조화장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당시 몸에난 모든 털은 비위생적인 것으로 여겨져 제거되었으며, 이는 깨끗한 피부와 얼굴의 이목구비를 강조하려는 미적 지향점과도 일치했다.


화장품의 용도 역시 변화했다. 단순한 미용 목적을 넘어 치유와 과학적 접근이 시도되었다. 물론 당시에는 납, 수은 등의 유해 물질이 화장품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이는 이들 물질의 독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지역에 따라 미용 문화의 차이도 뚜렷했다. 특히 이탈리아는 중세 말기부터 패션과 미용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베니스와 플로렌스의 여성들은 화장에 적극적이었으며, 이탈리아 여성들에게 화장품은 필수품이었다. 금발 머리, 눈꼬리가 올라간 날카로운 눈매, 아치형 눈썹, 붉은 입술, 하얀 치아를 갖기 위한 노력은 현대 사회와 견줄 만큼 적극적이었다. 반면 북유럽에서는 상대적으로 절제된 화장이 선호되어, 지역적 미적 취향의 다양성을 보여주었다.


15세기말에서 16세기 초에 걸쳐 르네상스 시대로 접어들면서, 인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문화적 흐름이 미용 문화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히포크라테스 이후 의학의 일부로 여겨졌던 화장품학이 독립된 학문 분야로 발전하는 성과도 있었다.  화장품 제조법과 미용 기법을 담은 서적들이 출판되었으며, 이는 화장 문화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특히 이탈리아의 영향력은 15세기부터 더욱 강화되었다. 카테리나 데 메디치가 프랑스 왕실에 시집가면서 이탈리아의 세련된 화장 문화가 프랑스로 전파되었고, 이는 이후 유럽 전역의 미용 트렌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중세의 금욕주의적 미적 기준에서 벗어나, 인체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방향으로 미적 기준이 변화했으며, 이는 당시 회화와 조각에서도 뚜렷이 나타난 현상 중 하나다.


 이처럼 중세시대의 미용과 화장 문화는 단순히 '암흑기'라는 일반적 인식과 달리, 종교적 제약 속에서도 꾸준히 변화하고 발전해 왔다. 이는 단순한 외적 치장을 넘어, 당시의 사회적, 종교적, 문화적 변화를 반영하는 중요한 문화적 지표였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하는 많은 화장품과 미용 개념은 이러한 중세의 변화와 발전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으며, 미의 기준이 시대와 문화에 따라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역사적 단면이다.


또한, 화장품과 미용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어떤 시대적 제약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신앙과 아름다움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했던 중세인들의 노력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미적 가치와 사회적 기준 사이의 갈등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며 미의 추구는 인간의 본능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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