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18세에 미스 롯데 1위로 당선되어 배우의 길에 들어선 원미경은 1979년 영화 주연으로 데뷔해 곧바로 상을 수상하며 지속적인 활약으로 80년대를 대표하는 '갑 중의 갑' 스타가 되었다. 영화배우로 더 명성을 날린 원미경은 당시에는 성우가 더빙을 해 그녀의 괄괄한 목소리를 접할 기회가 드물었다. 이는 오히려 그녀의 출중한 미모를 더 돋보이게 했다. 목소리 더빙이 사라진 후에는 이미지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으나, 그와 무관하게 원미경은 정윤희에게도 뒤지지 않을 당대 최고의 미녀 배우였음은 틀림없다.
같은 해 같은 대회에서 인기상을 수상한 이미숙 역시 8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 배우로 인기를 누렸다. 원미경과는 사뭇 다른 세련되고 섹시한 매력이 넘치는 배우였다. 그러나 원미경이 정상에 있는 동안 이인자에 머무르다 그녀가 은퇴한 후에야 비로소 '물 만난 고기'처럼 승승장구했다고 한다. 두 배우 사이에 모종의 라이벌 관계가 있었음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1979년 MBC 공채 탤런트로 출발한 이보희는 초기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1983년 이장호 감독의 눈에 띄어 조연 배우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그러다 '어우동'으로 성인들의 우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상당히 농염한 매력이 있는 배우였다. 비슷한 시기에는 에로 배우 전성시대였던 만큼, 1979년 데뷔한 안소영도 엄청난 매력으로 인기를 누린 배우였다. '애마 부인'이나 '산딸기' 같은 성인 영화 주역으로, 직접 찾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배우였음에도 그녀의 존재감과 인기는 상당했다. 성인 영화 트렌드가 사라지면서 안소영도 그 세계에 갇혀 잊힌 배우가 되었다.
1981년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특채 탤런트로 데뷔한 하희라는 일찍부터 남다른 미모와 재능으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 10년간은 하희라의 전성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학생들의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미모도 빼어났지만 연기와 노래 모든 면에서 출중했기 때문이다. 다만 성인이 된 후 다소 변화가 있었고, 90년대 최고 배우이자 남편 최수종의 그늘에 가려진 측면도 있다.
같은 해 데뷔한 조용원은 하희라보다 몇 살 많았으며, 중학교 3학년 때 미스 롯데 선발대회에 나가려다 방송국 직원의 권유로 갑작스럽게 KBS 8기 탤런트로 선발되었다. 이후 단역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인지도를 쌓았다. 그러나 80년대 초반 대종상과 신인상을 받으며 대한민국 최고 배우로 입지를 다지려는 찰나, 1985년 교통사고로 얼굴에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 상처는 치유되었으나 복귀가 쉽지 않아 그녀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고, 이후에는 제작자나 사업가로 활동하며 자연스럽게 은퇴했다. 그녀의 활동 기간은 길지 않았으나 남다른 매력과 안타까운 사고로 대중은 오래 기억했고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다.
1981년 미스 MBC 선발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고 곧바로 MBC 공채 탤런트로 연기자의 길에 들어선 김청은 배우 활동은 물론 당대 최고 스타 이덕화와 함께한 MC로 활약했다. 서글서글한 이목구비와 낭랑한 목소리로 세련되고 우아한 모습이 상당히 기품 있어 보이는 배우였다. 다소 동안과는 거리가 있어 주로 성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1983년 고등학생 시절 길거리 캐스팅되었다는 강문영은 CF 모델로 데뷔했다. 많은 활동이나 꾸준한 활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매력과 분위기는 압도적이었다.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성형 미인에 서구적인 체형으로 이승연 이전에 상당히 세련된 매력을 보여주었다. 서구적 관점으로 황신혜보다 강문영을 더 예쁘다고 추앙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같은 해 데뷔한 황신혜는 하이틴 스타 출신도, 미인 대회 출신도 아닌, 인하공전을 졸업한 스튜어디스 지망생이었다. 그녀는 MBC 공채 탤런트 출신으로 데뷔하자마자 연기력과 무관하게 주연 배우와 각종 광고 모델을 독차지하면서 정윤희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채웠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 미인으로 황신혜를 꼽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1983년 데뷔한 또 다른 초특급 스타는 연기와 미모 모두를 겸비한 배우 김희애다. 다른 또래 스타들이 하이틴 스타로 출발한 것과 달리 김희애는 지면 모델로 시작했다. 영화배우로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 연기력 논란 없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배우다.
1984년 데뷔한 채시라는 학생 시절 잡지 표지 모델로 시작해 광고 모델로 얼굴을 알렸고, 드라마에 출연해 하이틴 스타로 등극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침체기 없이 엄청난 인기를 누린 스타 중 하나다. 같은 해 중학교 1학년에 드라마 연기자로 데뷔한 이상아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대체 불가한 최고 미모의 하이틴 스타였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완벽한 미모로 영원히 승승장구할 것 같았으나, 그녀의 인기는 예상보다 일찍 사그라들었다.
1985년에는 우아한 매력의 배우 전인화가 데뷔했다. 그녀는 1984년 빙그레 팥빙수 CF로 먼저 이름을 알린 후 자연스럽게 배우로 안착했다. 1986년 MBC 탤런트로 데뷔한 박순애는 참신한 이미지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1994년 결혼 후 은퇴했지만, 비교적 짧은 활동 기간 동안 정상급 배우로 활약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같은 해 영화 '깜보'의 주연으로 데뷔한 김혜수는 16세에 연예계에 입문해 지금까지도 최고 배우로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신인 시절부터 하이틴 경력 없이 곧바로 성인 역할을 맡으며 쉴 새 없이 영화, 드라마, 광고를 섭렵하며 업계에서 최강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배우다.
화려한 미모에 비해 활동 경력이 짧은 최수지는 1987년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그녀가 남긴 필모그래피는 '사랑이 꽃피는 나무'와 '토지'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엄청난 미모로 대한민국을 강타한 배우였다. 1987년, 아역배우에서 본격 성인 연기로 전환하며 최대 이슈를 모은 배우는 강수연이다. 청춘 멜로부터 사극, 정극까지 장르를 아우르며 명실상부 대한민국은 물론 국제적 배우로 일찍부터 명성을 떨쳤다. 그녀의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농염한 연기, 특유의 매력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같은 해 미스 롯데 1위에 선정되며 청소년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이미연은 80년대 후반 최고의 인기 스타로 군림했다. 기존의 스타들을 제치고 '이미연의 시대'를 만들어갔다. 같은 해 고등학교 2학년이던 오현경은 모델로 데뷔하여 이듬해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주목받았고, 이미 인기가도를 달리던 중 1989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참가해 '진'에 당선되었다. 마치 오현경 띄우기 마케팅을 한 듯 데뷔가 찬란했는데, 당시 함께 경합을 벌인 고현정은 미스코리아 '선'에 당선되었다. 고현정 입장에서는 이미 인지도가 있는 오현경이 선발대회에 나선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을 것으로 추측된다. 미스코리아 진 당선 이후 오현경은 엄청난 스타로 부상했다. 엄청난 스캔들은 덤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