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 S씨

by EUNJIN



나는 PD였다. 그리고 나는 사업가였다.

나는 강사였다가 글을 쓰는 마케터였다가 동시에 소잉 아트를 하는 아티스트였다가 가방을 만들고 마크라메를 하는 핸드메이더이기도 했다. 어느 것은 끝난 직업이고 어느 것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저것 잡다한 일들을 끊임없이 하고는 있지만 그 노력의 대가로 삶을 유지할 만한 수준의 일정한 수입을 지속적으로 받는 것이 직업이라면 현재의 나는 '무직'이고 월급의 유무를 떠나 가장 비중 있게 하고 있는 일을 직업이라 말한다면 '주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각종 서류의 직업란 앞에서, 혹은 누군가의 질문 앞에서 언제나 머뭇거리게 되는 내 생에 가장 어려운 질문이자 잃어버린 자아의 모습이기도 하다.


한 인간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것에 '직업'만큼이나 짧고 간결하게 많은 정보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또 있을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탄생의 순간부터 '어떤'(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고 단련해야 하는 숙명을 가진 존재들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꽤 오랜 시간을 방송 PD로 살았던 나는 결혼 2년이 넘어가면서 엄마가 되기 위해 퇴직을, 아니 '잠시 휴직'을 했다. 어느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업무의 강도와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는 내내 그렇게 나를 힘겹게 할 질문의 시작이 될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휴직 뒤 찾아온 임신과 출산은 건강하고 파릇한 생명에 대한 온전한 감사와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일가친척 하나 없는 서울에서 어린 생명을 돌보는 일의 처절함을 낱낱이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그저 고단함이라거나 힘듦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앉아서 밥 먹을 틈도, 맘 편히 똥 눌 틈도 없는 육아의 현실은 인간의 존엄성마저 사정없이 흔들어대며 좁은 아파트 안에 갇힌 채 24시간 풀가동이었고, 갓 엄마가 된 여자와 갓 아빠가 된 남자, 나 아니면 너, 단 둘 뿐이었던 돌봄의 무게는 매일매일 헉 소리가 날 때까지 더해지고 더해지며 체력과 함께 멘탈까지 탈탈 털어갔다. 나는 하루아침에 극명하게 바뀌어버린 삶의 패턴으로 인해 예상치 못하게 많이 우울했고 많이 힘들었으며 많이 아파했다. 잃어버린 육체의 자유뿐 아니라 저당 잡힌 영혼의 자유마저 깊은 침묵과 마른 울음으로 참아내며 소멸되어가는 '나'란 존재를 무기력하게 바라봐야만 했다. 성장을 멈춘 채 멀어져 가고 있는 지난 시간의 커리어에 마음만 동동거리며 그렇게 엄마로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잠시 쉬려고' 했던 '일'에서 나를 점점 더 먼 곳으로 밀어 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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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내가 저 많은 직업을 가졌었던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하루아침에 끝날 리 없는 '엄마'라는 역할과 '아내'라는 위치에서 그보다 훨씬 이전에 존재했던 '나'라는 인간의 정체성, 사회적 쓸모와 경제적 독립. 그 끈을 나는 끝내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또 아무리 은행 거래가 많아도, 십 원 한 장의 빚이나 단 하루의 연체도 없이 튼튼한 신용을 쌓고 있어도 제 명의로 내는 세금이 없기에 제 명의로 신용카드 한 장 만들지 못하는 굴욕감. 남편의 이름에 종속돼 경제생활을 꾸려 가야만 하는 '주부'라는 직업의 치사함이 때때로 울컥 올라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일일이 떠벌이고 싶지도 않지만 일일이 알아주지 않음에 억울한 날들이 더 많아지면서 어떻게 해서든 원래의 온전히 독립된 인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 후로 나는 쉼 없이 이 곳 저곳을 기웃거렸다. 끊임없이 관심과 적성을 찾았으며 비전을 분석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가 아니라 시간을 조각조각 쪼개어 낯선 것들을 배우고 밤잠을 줄여 공부했으며 그러면서 동시에 일을 했다. PD라는 전문의 경력을 두고 새로운 분야의 일을 찾아 헤매고 다닌 건 내가, 10분도 혼자 둘 수 없을 만치 어리고 여린 아이들의 엄마라는 사실과 살고 있는 이 서울 땅에 10분도 아이를 돌보아줄 핏줄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잠깐씩이라도 아이를 부탁할 수 있는 가족이 가까이에 있었다면 달랐을지도 모르겠지만 야근과 밤샘과 출장이 잦은 PD로서의 삶과 엄마로서의 삶을 균형 있게 유지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아이를 돌보는 일 보다 우선순위에 둘 수는 없었다.

내가 찾는 일은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지장을 주지 않는 것이어야 했다. 아이들 일과와 겹치지 않는 시간에 하는 것이어야 했고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에는 나 또한 반드시 집에 머물 수 있어야 했다. 일에서 엄마로 복귀하는 순간, 동시에 아내와 주부로도 돌아와야 했다.

육아와 일, 현실과 꿈, 가족의 안정과 나의 미래, 그 사이의 적절한 선을 찾느라 나는 여러 종류의 직업을 가졌고 또 여러 번의 포기를 해야만 했다.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

그 커피 1500원이었어. 그 사람들도 같은 커피 마셨으니까 얼만지 알았을 거야.
오빠, 나 1500원짜리 커피 한잔 마실 자격도 없어? 아니, 1500원이 아니라 1500만 원이라도 그래.
내 남편이 번 돈으로 내가 뭘 사든 그건 우리 가족 일이잖아. 내가 오빠 돈을 훔친 것도 아니잖아.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82년생 김지영> P. 164 ~ 165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그리고 경.단.녀(경력 단절녀)가 되었지. 이제 아무데서도 반기지 않고 선뜻 써주지도 않는 나이의 아.줌.마가 되었어. 그 사이 세상은 어마어마하게 변화하여 낯선 것들 천지가 되었고 이전에 내가 갈고닦았던 고급 기술들은 전부 휴지 조각이 되었어. 우주의 축복을 받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고 한들, 한동안 전장을 떠나 있던 내가 다시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

사실, 지금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굳건히 나를 먹여 살렸던 능력은 기억조차 희미해. 사람들이 아줌마는 용감하다고들 하던데... 사회로 돌아갈 생각을 하면 나는 그저 아찔하기만 해. 나의 퇴보를 확인해야만 하는 순간, 신생아처럼 발가벗겨질 순간, 그 순간이 몸서리치게 두렵거든.


그런데 말이야...

비록 경력은 단절되었으나 나의 생은 단절되지 않았어. 나에겐 여전히 팔딱이는 꿈이 있고 멈추지 않은 시간도 있지.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이곳저곳을 기웃기웃 거려 볼까 해. '나' 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손을 놓아버리기에 나는 아직 너무 젊거든. 어쨌든 사는 동안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무엇이라도 해보는 게 낫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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