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뿔싸! 강도가 들었다.

by EUNJIN



서울에서 나의 세 번째 집은 단독 화장실이 딸린 방 하나, 주방 하나의 다가구 주택 반지하였다. 지하도 아니고 1층도 아닌 ‘반지하’라는 형태의 주택은 서울에 와서야 처음 보게 되었다. 그것은 천만의 인구가 꾸역꾸역 모여 살기 위해 탄생한 ‘최저의 거주환경을 가진 최상의 주택구조’였다. 반지하의 ‘반’이 깊을수록 임대료는 싸졌고 더불어 습기와 곰팡이와 어둠도 깊어졌다.


내가 살게 된 반지하는 그나마 1층에 가까운 반지하였다. 외부 골목에서 주인집과 다른 쪽의 철대문을 열면 서너 계단쯤 아래로 내려가고, 나란히 붙은 두 집 중 첫 집의 현관문을 열면 또 두어 계단 깊이쯤 아래, 내 집의 거주공간이 시작되었다. 시작되는 그곳이 작은 싱크대가 놓인 주방이었고 다시 나무로 된 방문을 열면 작지만 아늑한 방과 그 안으로 또다시 문 달린 화장실이 있었다. 집 밖에서 보자면 사분의 일쯤은 지하이고 사분의 삼쯤은 1층인, 서울에서 그나마 제대로 된 나만의 첫 공간이었다.

철대문은 고장이 나 꽉 닫히지도 잠기지도 않았다. 바람이 휭- 하고 불면 철문이 휙-하고 열려 벽에 부딪혔다가 다시 바람이 휭- 불면 슬며시 반대로 닫히며 삐그더덕- 소리를 내었다. 골목의 대부분의 집들이 그러했으므로 주인에게 고쳐달라고 요구하지 못했고 주인 또한 고쳐줄 필요도, 의지도 없었다. 나란히 붙은 두 집의 현관문은 아래쪽 반은 철제이고 위쪽 반은 유리로 되어있었는데, 부실한 철대문 대신 현관문을 안으로 꽁꽁 잠그는 것 외에는 믿을 것이 없었다.

2층의 다가구 주택이었던 그 집엔 반지하에 나를 포함한 두 가구와 1.5층의 세입자 가족, 그리고 2.5층의 주인네까지 총 다섯 가구가 살았는데, 그곳에 사는 3년 동안 나는 주인아주머니와 그녀의 나이 많은 딸 외엔 그 누구도 보지 못했다. 옆집에 내 또래의 아가씨가 나처럼 혼자 산다는 것도 그 집을 떠날 즈음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같은 지번을 공유하며 살았지만 어느 누구도 시간과 마음을 나누지는 않았다. 철저히 분리되고 독립되어 있었다.


그 당시 나의 일상은 야근과 밤샘과 출장이 반복되던 날들이었다. 사실 그 당시랄 것도 없이 내가 PD로 살았던 대부분의 날들이 그러했다. 더욱이 그때는 다양한 춤과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에 관한 프로그램과 여행 프로그램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을 때라 주중엔 ENG 촬영과 편집과 후반 작업으로 야근과 밤샘을 하고 주말에는 6mm 카메라를 들고 댄스 대회장과 클럽과 동호회를 찾아 출장을 다녔다. 낮도 없고 주말도 없는 진공의 날들이었다.


그런 나의 생활 패턴을 누군가 낱낱이 내다보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길지 않은 그 골목엔 자주 주차 문제로 언성이 오갔고, 20년 이상을 한 자리에 산 원주민들조차 서로 인사를 나누거나 왕래를 하지 않았기에 누가 누구에게 관심을 갖고 누가 누구를 지켜보고 있으리라고는 예상되지 않았던 것이다. 야근을 하고 깜깜한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는 날은 입은 옷을 벗지도 못한 채 그대로 엎어져 곯아떨어지기 일쑤였고, 해가 뜨면 세수도 못하고 부리나케 달려 나가곤 했기에 어쩌면 내가 먼저 그들 모두에게 철저히 무관심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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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퍽퍽한 일상에 별똥별처럼 갑작스레 꿀 같은 휴식이 주어졌다. 토요일 촬영이 취소된 것이었다. 아... 이 얼마만의 금 같은 시간인가. 만성 피로와 두통에 시달리고 있던 때였다. 이 금쪽을 나는 달디 단 잠으로 눌러 채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금요일 밤을 새우고 토요일 새벽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와 하루 종일 누릴 호사를 생각하며 오랜만에 온몸을 구석구석 씻었다. 미끌거리는 캐미솔을 갈아입고 꼼꼼하게 로션도 바르고 머리를 말렸다. 완벽한 휴식을 위한 경건한 의식이었다. 며칠째 개지도 못한 이불을 반듯하게 펴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독을 베어 문 백설공주처럼 깊고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니 찰나의 시간이나 흘렀을까.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신경이 거슬려 잠에서 깨어났다. 30분은 계속되었을듯했다. 아... 이 달그락거리는 소리, 반복적인 부산함... 짜증이 났다. 열리지 않는 눈을 반만 뜬 채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벌컥 열었다.



저... 저... 게... 뭐... 지...?
맙... 소! 사!
손.... 손이잖아!!!



아뿔싸.

눈 앞에 어른거리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데는 일 년 같은 몇 분의 시간이 필요했다. 유리문을 부수고 그 사이로 남자의 손이 쑤-욱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그 손은 안에서 걸어 잠근 문을 열려고 부단히도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비로소 나는 창자에서 쥐어짜 낸 힘으로 고함을 질렀다.



아- 악!!!!!
누구야!!!!!!



놀란 손이 재빨리 깨진 유리문 사이를 빠져나갔다.



잡아야 해!



재고 따질 겨를도 없이 순간적으로 나는 잠긴 문을 열려고 바둥거렸다. 오래되어 녹슬고 뻑뻑하던 잠금장치는 안에서도 잘 열리지 않아 매번 애를 먹곤 하던 것이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도 한파처럼 날카로운 두려움도 저 놈을 잡아야 한다는 의지를 꺾지 못했다.

겨우 문을 열어젖히고 "도둑이야!"라고 소리쳤을 때 그는 이미 집과 집 사이의 담을 폴짝폴짝 뛰어넘으며 홍길동처럼 달아나고 있었다.

나는 그만 문 앞에 얼음처럼 멈춰서 버렸다. 이내 온몸에서 스르르르 기운이 빠져나갔다.

낯익은 뒷모습이었다. 낯익은 모습.

나는 그저 눈을 찡그리며 그가 누구인지,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려 애쓸 뿐이었다.

그가 시야에서 영영 사라지고 나서야 다시 정신이 들었다. 맨가슴에 잠옷만 입은 채 넋을 놓고 서있던 내가 보였다. 안경을 찾아 쓰고 시계를 보았다. 10시 30분이었다.


토요일 아침 10시에 찾아온 강도. 유리문이라 쉽게 깰 수 있었던 현관. 그런데 오래되어 열리지 않던 잠금장치. 30분간 끈질기게 노력했던 그. 마침 출근하지 않았던 나...

쓰나미 같은 거대한 공포가 삽시간에 몰아쳤다.

주인을 찾아가 사실을 얘기하고 문을 고쳐 달라 말했다.

뜨악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아주머니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사람을 부르고 그 전보다 튼튼한 유리로 갈아 끼웠다. 하지만 그것은 또 하나의 실수였다.


나는 깨진 유리 조각들을 치우고 당장 입을 옷들을 챙겨 친구네 집으로 갔다.

그 반지하 방에서는 더 이상 잠들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친구네서 지낸 지 일주일째, 주인아주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도둑이 들었다고.

토요일 환한 낮이었다.


이번엔 내 집과 나란한 옆집까지 두 집 모두에 들었다. 새로 간 유리는 와장창 깨져있었고 문은 닫혀있었다. 집안은 들어왔는지 말았는지 모를 만큼 별 다를 게 없었다. 반면 옆집의 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집안은 쑥대밭이 되어있었다. 도둑은 마치 자신의 존재를 증명이라도 하듯 구석구석을 헤집어 놓고 사라졌다. 내 방에서 사라진 것이 몇 년간 찔끔찔끔 모아 온 천 원 지폐와 동전들이었다는 사실은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알았다. 가난한 자취생의 집에서 가져갈 것이라곤 나한테조차 잊혔었던 십여 만원의 그 무거운 동전들뿐이었으리라.

그제야 아주머니는 유리문에 철망을 끼워 넣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집에 살 수 없었다. 나의 작지만 소중했던 반지하 집은 그렇게 개운치 않은 기억 하나를 보태며 씁쓸히 떠나오게 되었다.


돈 많은 주인집이 아니라 가난한 자취생의 집에 주말 아침마다 들어왔던 도둑.

그 도둑이 노린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 도둑은 정말 누구였을까.

내가 본 낯익은 그 모습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잘못 본 것일까.

그는 내가 없는 줄 알고 왔던 것일까. 아니면 있는 걸 알고서 왔던 것일까.

만일 그 문이 쉽게 열렸더라면 그날 나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재개발이 된다고 뉴스며 인터넷이며 한참을 들썩거렸다.

아직 그 골목 그 집이 있는지. 아니면 싹- 밀려 사라져 버렸는지.

매일 반쯤 감은 눈으로 출근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은 여전한지.

연기 폴폴 피우며 연탄불에 구워 먹던 갈매기살 집은 그대로 있는지.

남편과 첫 키스를 나누었던 집 앞의 가로등은 여전히 노란색으로 빛나는지.

주인집 딸은 시집을 갔거나 주인아주머니의 병은 좀 나아졌는지.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추억과 아픔이 버무려진 그곳이 나는 요즘도 자주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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