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누군가에게는 야구장이고
누군가에게는 흥인지문이며
누군가에게는 쇼핑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DDP인 그곳.
나에게 동대문은 '땀'과 '삶' 그 자체였다.
10여 년 전 잠시 방송 일을 쉬고 있던 나는 넘치는 자신감과 겁 없는 패기로 의류사업에 뛰어들었다. 인터넷 쇼핑의 붐이 일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TV에 간혹 나오는 어린 쇼핑몰 오너들의 성공스토리에 준 것도 없이 내 것 뺏긴 아이 마냥 샘이 나고 배알이 꼬였다. 그런 불손한 마음 20%와 더불어 나에게는 든든한 지원군과 남들보다 유리한 환경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가족이었다. 가족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방과 서울을 오가며 의류 사업을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나는 그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아 온라인 쪽을 파보기로 한 것이다. 시대에 맞춰 채널을 다양화하고 추후 가족과 연대해 사업을 더 크게 키워볼 작정이었던 것이다.
차근차근 사업을 준비하며 가장 공을 들였던 부분은 바로 물건 사입(판매자가 판매할 물건을 선택하고 도매로 구매하는 것)이었다. 현장에서 직접 뛰는 사입은 단순히 물건을 buying 하는 과정이 아니었다.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 신상품들 속에서 내 브랜드에 맞는 콘셉트와 연령층을 정확히 잡고 흔들리지 않는 집중력과 판단력으로 그에 맞는 제품과 거래처를 선정하는 가장 핵심의 일이었다. 옷을 고르고 나면 거기에 어울리는 모자와 액세서리와 신발과 가방 등을 시시각각 스캔하며 한쪽 머리로는 쉼 없이 코디를 늘어놔야 하고 다른 한쪽 머리로는 쉼 없이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이윤을 맞춰야 했다. 거기에는 오랜 시간 동대문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도매상인들의 기에 눌리지 않을 담력과 배짱, 입담 또한 필요했다. 그 시절에는 인터넷 쇼핑몰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던 때라 도매상들이 쇼핑몰과의 거래를 거부하는 곳도 많았고 소량 구매이거나 사입자가 어수룩해 보이면 말을 섞지 않는 곳도 많았기 때문이다.
도매시장은 밤 시장과 낮 시장이 구분되어 있어서 상가마다 혹은 층마다 영업시간이 다르고 물건의 스타일이나 판매하는 품목, 가격대도 달랐는데 일주일에 한두 번 사입을 갈 때마다 저녁부터 아침까지 무거운 짐 가방을 질질 끌며 15시간 이상을 꼬박 도는 것이 보통이었다. 온몸이 아픈데 다리는 걷고 있고, 배는 고픈데 입맛은 없고, 정신은 차리고 있으나 얼은 나가 있는, 사입은 정말이지 몸과 정신이 동시에 축나는 고되고 힘든 과정이었다.
동대문 상가에는 옷을 파는 의류상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거대한 타운을 이루는 그곳엔 갖가지 직업군이 존재했는데 우선은 옷이나 가방, 액세서리나 신발 등을 파는 도매상들이 있었다. 저녁에 소매상들을 한꺼번에 태우고 와서 사입이 끝나는 아침에 다시 태우고 가는 관광버스들이 있었고 그 버스들에서 내리는 혹은 개인적인 방법으로 모이는 각 지방과 도시의 소매상들이 있었다. 그들을 주 고객으로 하는 밥집들이 구석구석 숨어 있었고 시간 없고 출출한 사입자들을 대상으로 간식이나 음료를 파는 노점상들도 있었다. 공장에서 제작된 상품을 도매상가로 나르는 퀵서비스 맨과 상가 앞에서 내린 커다란 짐들을 각 도매상에게로 혹은 그 반대로 옮겨주는 지게꾼들이 있었다. 그리고 직접 오기 힘든 소매상의 의뢰를 받고 원하는 매장에서 원하는 물건을 대신 사입해 소매상에게 보내주는 대리 사입자들도 있었고 또 소매상들이 구입한 물건들을 돌아다니며 수거하거나 소매상이 직접 가져다주는 물건들을 한꺼번에 모아 새벽 일찍 화물차로 싣고 가서 각자의 매장으로 배달해주는 지역별 화물 삼촌들도 있었다. 오고 가는 차들을 정리하거나 CCTV에 눈을 박고 있는 주차 요원과 안전요원들이 있었고, 도매상들 사이를 오가며 잔돈을 바꿔주거나 거래를 트는 은행 직원, 봉투를 팔거나 음료를 배달하는 아르바이트생들도 있었다.
사업 초반, 뭣도 모르는 내가 언니를 따라 이리저리 쫓아다닐 때, 새까만 어둠은 온데간데없이 붉고 푸른 건물의 네온사인들과 시끌시끌한 음악, 수없이 늘어선 차들과 호루라기 소리, 그 사이를 비집고 하얀 입김을 뿜어내며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사람들. 내 눈엔 그 모든 것이 박제된 하나의 그림처럼 아찔했다. 바깥만큼 치열했던 상가 안은 더했다. 좁은 복도를 오가는 수많은 직군의 사람들, 그들이 뱉어내는 숨과 소리, 어깨에 둘러맨 거대한 짐들에 이리저리 치이며 나는 현실의 세계가 아닌 곳에 표류한 미아처럼 혼을 놓치기 일쑤였다.
매일 밤 그곳엔 수십 만의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하루에도 수십 억의 현금이 거래되었다. 몇 천 원의 수수료로 노동의 값을 받는 그들은 누구도 걸어 다니지 않았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뛰듯이 움직이고 달리듯 숨 쉬었다. 영하의 한 겨울에도 얼굴 위로 땀이 흘렀으며 1분의 시간을 한 돈의 금처럼 여겼다.
나는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에서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생(生)을 보았다. 1%의 거짓도 배어들 틈 없는 진실하고 치열한 삶. 온 정신과 육체를 다해 뱉고 있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숨. 그것은 뜨겁고도 놀라웠다.
그들 안에서 나는 수도 없이 부끄러웠고 수도 없이 깨달았다. 수도 없이 반성했고 수도 없이 존경하였다. 그들 모두는 스승이었고 말이 없는 교본이었다.
누구에게도 거저 주어지는 인생은 없다. 아직 젊었던 그 때나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이나 이것은 진실이고 놓치기 쉬운 진리이다. 뜨거운 삶의 현장에 놓이게 되면 화르륵 데듯 알게 된다. 애써 부여하는 의미 이전에 순간순간 빚어내는 숭고한 노력과 정성의 가치를.
나의 나태함이, 불평이, 하늘을 찌르는 순간이 오면 그때의 동대문이 생각난다.
누구든 나에게 저의 내밀한 어둠을 보이며 삶을 괴로워하는 이가 있다면 한 번쯤 말해주고 싶다.
밤 9시, 동대문의 디자이너 클럽으로 가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