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에는 다수의 사투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_^
내 나이 열 살이나 되었을까...
시장 끝 어디쯤에 엄마의 작은 가게가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놀기도 했다. 공기 속 푸른빛이 돌 때 장으로 나가 깜깜한 어둠을 짚고 집으로 돌아오던 엄마에게 그곳은 주방이자 거실이고 창고이자 다락이었다. 조그만 가게를 반으로 갈라 한쪽엔 팔지 못한 물건들이 층층이 쌓여있었고 반대쪽엔 평상을 놓고 장판을 깔고 담요를 덮은 아늑한 자리가 있었다. 나는 그곳에 누워 시장통을 오가는 사람들이나 가게 앞을 기웃거리는 손님들을 구경하곤 했다. 시장에는 온갖 사람이 모여들었고, 갖은 재료들이 널려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뚝딱 산해진미에 12첩 반상도 차려낼 수 있는 풍년의 곳간이었다.
어느 날, 엄마는 두 손으로 들기도 힘들만치 커다란 빨간색 플라스틱 다라이(대야)에 소풀(정구지, 부추)을 가득 담아 들고 오셨다. 거기에는 멀리서도 코끝이 간질거리는 초록의 방아 이파리가 섞여있었고 한쪽 귀퉁이, 야물게 생긴 땡초(청양고추)와 껍질 깐 홍합 한 봉다리(봉지)도 들어있었다.
수돗가에 쭈그려 앉아 채소들을 슥-슥 씻던 엄마는 이내 소풀을 숭덩숭덩 썰고, 착착착착 땡초를 다지고 방아잎을 똑똑 분질러 다라이에 넣었다. 다음으로 홍합을 큼직큼직하게 반토막 낸 뒤 밀가루를 탈탈 털어 넣고 물을 부어 손으로 휘-휘- 저어가며 걸쭉한 반죽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허리가 잘린 빈 드럼통을 가게 밖으로 꺼내 시커멓게 때가 탄 사과 궤짝을 발로 밟아 토막 난 조각들을 던져 넣었다. 신문지를 태워 불씨를 넣고 그 불씨가 궤짝에 옮겨 붙어 드럼통에 주홍빛이 넘실대자 어디서 났는지 모를 가마솥 뚜껑을 그 위에 턱 뒤집어엎었다. 바짝 익은 솥뚜껑에 하얀 김이 오르자 엄마는 허어연 돼지비계를 솥뚜껑 가생이(가장자리)에 빙글빙글 둘렀다. 반지르르하게 녹아내린 돼지기름 위로 반죽 한 국자를 터억 얹어 넓고 얇게 펴주면 이내 가게 주위로 꼬신 내(고소한 냄새)가 퐁퐁퐁 구름을 만들며 퍼져 나갔다.
방아잎과 홍합이 잔뜩 들어간 찌짐(전, 부추전)이었다.
엄마의 요리가 놀이 같기만 하던 나는 “내가! 내가!”를 외치며 팔을 걷어 부쳤고, 엄마는 이 때다 싶었는지 어쨌는지 두 말없이 내 손에 국자와 뒤지개를 쥐어 주었다.
목욕탕 의자까지 깔고 앉아 제법 그럴듯하게 부쳐낸 찌짐이 소쿠리에 한 장, 두 장 쌓이자 주변 상인들과 손님들이 몰려들었고, 마침 출출하던 오후의 그네들은 내 하는 놀이에 기를 북돋아 줄 요량으로 줌치(주머니)와 전대에서 쌈짓돈을 꺼내어 깔깔거리며 한 장, 두 장 찌짐을 사 갔다.
시장 사람들과 나눠 먹을 생각으로 시작했던 엄마의 찌짐 파티는 빨간 다라이 가득하던 반죽이 절찬리에 동이 나면서 끝이 났다. 이날의 파티는 열 살 아이에게 진득한 노동의 현장과 의외의 소질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를 선사하며 찌짐 장사를 해보라는 부추김과 칭찬을 남겼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이후 집안의 모든 제사와 차례에서 찌짐을 전담하게 되는 노동 지옥이 되어 돌아왔다.
그날, 가마솥 뚜껑 앞에 쪼그려 앉아 돼지기름에 갓 구워낸 고소하고 바삭한 찌짐! 보랏빛 꽃송이처럼 오묘한 방아 향과 진한 홍합 향이 기름 냄새와 얼기설기 어우러져 춤을 추던 그 찌짐을 초고추장에 콕! 찍어 먹던 그 맛은 내게 첫 아이의 태몽처럼 강렬한 것이어서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영혼 속에 각인되어버렸다.
고향에 산 시간보다 타지에서 살아온 시간이 더 긴 내게 가장 그리운 고향의 냄새는 단연 음식이었다. 서울에 와서야 안 사실이지만 내가 자란 곳은 음식이 맛난 축에 끼지 못하는 동네였다. 그곳의 음식들은 대부분 짜고 매웠으며 날카롭고 진했다. 어쩌면 그래서 더 강력한 힘을 지녔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내가 먹고 자란 모유와 같았으며 엄마의 젖가슴에서 풍기는 체취처럼 특별하고 아련한 것이었다.
서울에 사는 내내 방아 잎이 들어간 부추전이 몸서리쳐지게 그리웠다. 지천에 널려있던 방아잎을 부쳐 먹고 끓여 먹던 삶에서 향기조차 맡을 수 없는 삶으로의 이동은 오랫동안 나를 힘들게 했다. 생양파를 올리고 집집마다의 비율로 만들어진 막장(쌈장과 비슷하나 쌈장과는 다른 장)에 수육처럼 찍어 먹던 순대는 주황빛 도는 소금에 찍어 먹는 밋밋한 서울의 순대와 비할 바가 아니었고, 분식집에서 쉽게 먹을 수 있던 당면이 오동통하게 들어간 고추튀김이 서울에는 없다는 사실에 좌절했었다. 엄마가 보양식으로 종종 끓여주던 맑고 개운한 추어탕은 뻑뻑하고 걸쭉한 남원 추어탕이나 원주 추어탕으로 대신해야 했고 생선이 많은 동네에서 싸고 흔하게 먹을 수 있던 짜고 매운 아귀찜은 1인 가구나 2인 가구가 쉽게 먹을 수 없는 비싸고 거한 음식이 되어버렸다. 칼바람 불어 으스스한 날 시장통에서 먹던 소고기국밥은 내 유년의 기억들과 함께 불 위 올려져 밤새 폭폭폭 끓기만 했다. 태어날 때부터 냉면은 다 그렇게 면발 굵고 담백한 국물에 육전이 올려진 줄로만 알았던 진주 냉면이나 청양고추 송송 썰어 넣어 칼칼하게 끓이는 비리지 않은 갈칫국은 고향 친구들하고나 나눌 수 있는 향수가 되었다.
아... 그리운 내 고향의 오래된 음식들...
무릇 음식은 한 뼘 혀로 느끼는 다섯 가지 맛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라 수백 수천의 추억과 겹겹이 쌓아온 시간의 맛으로 먹는 것이리라. 음식을 떠 올릴 때마다 필름처럼 재생되는 낱낱의 기억들이 어우러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나의 역사와 함께 익어가는 음식들...
내년 봄엔 정말이지 베란다 화분에 방아 씨앗이라도 구해 뿌려 보아야 할까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