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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N Sep 26. 2023

넋두리 좀 해도 될까요.



한 동안,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지냈었다.

회사 사람, 업무적인 사람을 제외하고는 딱히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도 없었고, 꽃다운 나이가 아니기에 이런저런 모임에 참석하는 일도 없었다.

사실, 새로운 인연을 만든다는 것이 내 나이쯤 되면 감정적으로나 에너지적으로 힘에 많이 부치는 일이기도 하고 그 과정 또한 누리기 힘든 일과이기도 하다. 언제나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밀려 있었기에 사람을 만나 여가를 즐긴다는 것은 사치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미 있는 인연을 잘 이어나가는 것도 힘이 드는데 무슨 새로운 인연이야... 하며 굳이 사람을 더 알려고도, 깊게 알려고도 하지 않고 지냈다.

또한 나는 지난 몇 년을 거의 어둠 속에서 침잠하듯 숨만 쉬고 있었기에 남들이 보기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고 너무 건강했지만 내 안에서는 끊임없이 세상을 밀어내고 있었다. 언제가 내 마지막 날이 될까를 매일 생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누굴 만날 생각도, 이유도, 마음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주로 보게 되는 것은 오래된 인연, 그러니까 이미 쌓을 대로 쌓고 닳을 대로 닳고 알대로 알아서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익숙하고 친밀한 오래된 사람뿐이었다. 물론 그 수가 많은 것도 아니다.

그들에게는 또, 그들도 내게는 숨길 게 없고, 포장할 게 없고, 아낄 게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괜찮아 보이는 그들도 그들의 세계가 너무나 힘에 겹고 끝없는 터널 같을 때가 많다는 걸.

거기에 내 어둠까지 끼얹을 수는 없다는 걸. 그것은 예의도 아니고 도리도 아니라는 걸.

우리는 너무 가깝기에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드러낼 수 없다는 걸.


가슴속에 쌓인 말들이 넘쳐서 질식할 순간이 되자, 어디든 터트려야만 했다.

하지 못한 말들이 너무 많고, 듣지 못한 말들이 너무 많고, 사람의 목소리가, 눈빛이, 표정이 너무 필요했다.

심각하고 암울한 이야기 말고, 조금은 가볍고 상쾌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같은 것을 보고 다른 것을 느끼는 그 지점이 궁금했고, 나 말고 다른 이의 일상은 어떻게 흘러갈까 궁금했고, 누군가가 나도 궁금해해 주면 어떨까 생각했다.

너무 깊은 의미를 두지 않되, 너무 가볍지 않은, 일상의 온기. 그냥 딱 그 정도가 그리웠던 것 같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안에서 내가 살아 있음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들로부터 무엇이든 느끼고 얻고 싶었다.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조금은 빛으로 나오고 싶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내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싶었을 수도 있고.


아니... 모르겠다. 그냥 그리웠다.

온기. 사람의 온기.





그러다 하나, 둘... 새로운 사람들을 알게 되고 만나게 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많이 잊고 또 잃고 있었구나를 깨달았다.

인사가 주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내가 어디에서 에너지를 얻고, 어떤 것에 두 눈이 반짝이고, 어떨 때 배꼽 빠지게 웃음이 나는지 알게 되었다.

어디에서 영감을 얻고, 어디에서 의지가 깨어나고, 어디에서 집중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그것들은 지금껏 유지되어 오던 나의 생활을 조금씩 흔들어 놓았다.

몰랐던 것을 새로이 알게 되었기에 기존에 유지되어 오던 단순하기 그지없던 나의 루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맞는 것인가. 이것이 잘하는 것인가. 매일 고민했고 매일 긴 숨을 내 쉬었다.

여전히 고민하고,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나는 부단히도 노력하고 있다.

그 노력에 온몸이 아파 와 가끔 모든 것에서 손을 떼 버리고 싶을 만큼, 나를 잃지 않으면서 나를 놓지 않으면서, 죽지도 않으려고 온몸에 힘을 주고 있다.



< 이병률 _ 이 넉넉한 쓸쓸함 >



그런데, 나는 지금... 힘이 든다. 어렵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내 생각보다 거짓이 가득하다.

나누었던 이야기들, 건넸던 눈빛, 보였던 미소, 잡았던 손. 그 모든 것이 진짜일 거라는 것은 나만의 무지렁이 같은 착각이었다.

왜 그 많은 거짓을 품고 사는지.

그 거짓들에 왜 시간을 쓰고, 감정을 쓰고, 에너지를 쓰고, 돈을 쓰는지.

왜 거짓의 말들을 흘리고, 거짓의 마음을 흘리고, 거짓의 정보를 흘리는지.

아무리 아무리 이해해 보려고 애를 쓰고 애를 써도.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는 그 거짓의 세상 때문에 나는 또다시 질식할 것만 같다.


그냥 좀, 솔직해도 되지 않나.

그냥, 제발 좀. 솔직해져도 되지 않나.

그렇게 거짓으로 꾸며내서 그들이 얻고 싶은 건, 얻을 수 있는 건 과연 무엇일까.

이렇게 빤히 그 거짓을 눈치채는 사람이 있는데 왜 깜쪽같이 속였다고 착각하는 걸까.

그들의 거짓을 눈치채는 날에는, 그렇게 발가벗겨진 그들의 민 낯을 보게 되는 날에는.

숨을 쉴 수가 없다.


내가 한참 세상 속에 있을 때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았었는데.

가진 게 없어도, 그래서 줄 것이 없어도, 보여줄 게 빈약해도, 화려하게 포장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서로 마음을 맞추고 가진 것을 나누고 같이 즐기고 충분히 감사히 여겼었는데.

내가 침잠하던 그 사이 이 세계가 우주로부터 어떠한 돌덩이에 심하게 얻어맞은 것일까.

아니면 내가 떠돌고 있는 이곳이 이미 쓰레기장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너무 늙어버린 것일까... 하...


그들의 어리석음이 안타깝고, 그 안타까움에 가슴이 시린 나도 안타깝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그들이 숨긴 알맹이들. 진실들.

그 모든 것이 슬프고 불쌍하고, 그것이 슬픈 나도 가엾고 불쌍하다.



< 류시화 _ 포옹 >



오늘은 누구라도 나를 좀 안아주었으면 좋겠다.

누구든 나를 안아준다면 그 품에서, 그 체온 안에서, 한 10분쯤 소리 내서 엉엉 울고 싶다.


여러 편의 시(詩)들이 마음에 와 박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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