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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두 Feb 09. 2021

어바웃 미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아저씨에 대해서

배우는 하고 싶고, 돈은 잘 벌었으면 좋겠고, 주목받았으면 좋겠어서 장래희망을 성우로 했습니다. 공부는 못해서 지방대학교 연극학과에 경쟁률 없이 합격했으며, 연극을 배우고 서울로 상경해 성우학원을 다녔습니다. 학원을 다니면서 시 낭송 대회에 나가서 상도 타보고, 팟캐스트도 해봤습니다. 유명해지지 않았고, 돈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미술관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고 반지하 방에서 함께 일하는 친구와 살았습니다. 공영방송 공채시험에 최종면접까지 가봤는데 불합격되었습니다. 경쟁자 수도 많고 불합격 여부가 확실치 않은 싸움에 지쳐서 성우의 꿈을 돌연 포기했습니다. 


그 와중에 영화배우를 양성한다는 학원에 또 들어가 영화를 어쭙잖게 배워보면서 서점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오디션 포트폴리오 몇 장 돌리다가 영화는 한 편도 못 찍어보고 서점에서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정직원이 되었고, 아들이 태어났고, 육아휴직을 했다가 복직하고 또 퇴사 후 가정주부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기까지가 서른 살 제 삶입니다.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도 없고, 잘난것도 없고, 깊이 들여다본 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최근에 그림책은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육아를 빌미 삼아 시작한 것인데, 서점에서 그림책을 다뤄봤던 경험도 있어서 더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집에서 요리하고 청소는 하는데, 요리는 와이프가 매번 맛있다고 먹어주지만 한 번 너무 짜거나 맵다고 말하면 상처 받아서 한동안 자괴감을 갖기도 합니다. 청소도 허술합니다. 가끔은 와이프가 '어이그.' 하면서 제가 닦았던 구역을 다시 닦곤 합니다. 또 소심해져서 눈치 보고 하는데, 삐졌는지 확인하고 눈치 보는 와이프가 또 있네요.


한동안 아빠 육아가 붐이었습니다. 아빠도 육아를 위해 1년 휴직을 해야 한다고 해서 남성 육아휴직자가 갑자기 늘어났던 시절이 딱 제가 육아 휴직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여러 가지 남성 육아 후기를 남기는 아빠들의 이야기가 차고 넘치고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압니다. 저도 엄마들의 고충을 늘어놓고 공감받고 유명세를 안고 싶었지만, 다른 아빠들만큼 멋지게 소화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 주저하고만 있었습니다. 


이것저것 어떻게든 쓰고 싶은 성격이라서 여기저기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고 살았는데, 막상 모아놓은 글이 없어서 이렇게 올려봅니다. 보잘것없고 충실했던 인생은 가정뿐인 서른 남성인데, 누구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게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떻게든 이야기를 모아보려고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또 다른 부모님들에게 힘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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