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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두 Feb 10. 2021

역시 나는 대단하지

자기애 충만한 아빠님의 오류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우리 아이 오감발달 수업을 신청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내 아들과 같은 시기에 태어난 아이가 이렇게 많구나 새삼 깨달았다. 출산율이 적네 어쩌네 하는데 내 주변엔 그렇지 않은 것 같아 괴리감을 느낀 부분이었다. 


또 하나 괴리감이 있는데, 남편이 홀로 아이를 둘러업고 문화센터에 온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이다. 주로 남편과 와이프가 동반했거나, 할머니가 오거나, 할아버지도 같이 오는 경우가 드물게 있고, 대부분 와이프가 아기를 데리고 온다.


나의 와이프는 출산 후에 몸이 매우 안 좋아졌다. 그것이 내가 문화센터에 오는 이유이다. 게다가 나는 출산이 임박할 때까지 밖에서 줄담배만 피우던 철부지였다(이럴 수가). 이렇게 귀중한 존재가 태어나고 있을 때 와이프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고 있었는데, 나는 옆에서 도움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더 철없는 사실은 이 문화센터도 내가 직접 등록한 것이 아니라 와이프가 등록한 것이다(이럴 수가). 그래서 내가 아이와 함께 밖에 나가야 마땅했다. 그래야 와이프가 집에서 휴식할 수 있었고, 내 죄책감도 조금 덜어낼 수 있을 것이었다. 


문화센터에서 오감 수업이 끝나고 유아휴게실에 가서 기저귀를 갈아주고 분유를 먹여줄 때면 지나가는 엄마들에게 칭찬을 들었다. 

'어머님은 좋으시겠다. 남편분이 이렇게 아이를 데리고 다니고.'

'힘들지 않으세요? 데리고 다니는 게 보통이 아니죠?'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맞아요. 남편들이 이런 거 알아야 돼요. 엄청 힘드네요." 하며 마치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된 것처럼 너스레를 떨며 하하 웃었다. 과거의 나를 만난다면 뺨을 후려치고 싶다. 

 

육아휴직을 시작하고 아이와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는 문화센터를 무의식 중에 기다렸다. 지나가고 생각해보니 그 이유는 엄마들에게 말 한마디 듣기 위함이었다. 엄청난 위로까진 아니더라도 힘내라고, 잘하고 있다고, 부럽다고 칭찬 듣고 싶어서 대단한 이벤트인 마냥 손꼽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날이 갈수록 어깨뽕이 올라갔다. 내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지냈다. 문화센터에 다녀오면 아이에게 태블릿을 쥐어주었고, 나는 깨어있는 사람인 것처럼 인터넷에 일기를 적고 사람들에게 내가 반듯하게 육아하고 있음을 알렸다. 이 얼마나 곤장을 맞아도 시원찮을 행동인가.


물론 휴직 서너 달은 열심히였다. 분유도 잘 먹여, 목욕도 척척, 와이프 식사도 챙기고, 청소도 하고, 방 정리도 소질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밖을 못 나가고 말도 안 통하는 아이와 함께 있자니 외롭고 우울한데 집안일은 끊임없이 쳐내야 하니, 이건 도저히 너스레를 떨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같이 이야기를 나눌 남편 동료도 없으니(이건 핑계, 결국 찾아보면 다 있음.) 결국 아이가 태어나고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물면서 방탕이 시작되었다.


점점 아기의 감정은 고려하지 않고 내가 힘들다는 감정에만 몰두해 무조건 아기띠를 둘러메고 누군가와 소통하려고 돌아다녔던 것 같다. 위로를 한마디 받으면 일순간 스트레스가 풀렸지만, 다시 집으로 들어오면 긴장이 풀어지고 기분이 비루해졌다.


이런 것을 정신과 의사 정우열은 '자기애가 충만한 아빠'라고 말하더라. 아빠가 육아에 심취한 사람처럼 포장된 나머지 아기를 무기로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말야. 아빠로서 이렇게 혼자 아이를 데리고 문화센터에 다니고, 분유도 직접 타 먹이지, 대단하지? 똥 기저귀 갈고 손톱 깎는 건 기본이야. 무려 아빠인데 말야. 짱이지?'


안과 밖이 다른 아빠를 보며 아이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무렵이었음에도 나의 이중적인 모습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밖에서 웃고 집에서 나자빠진 나의 대충 육아를 아이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지난날을 회상하자니 뼈가 시리고 가슴이 아프다.


이 글은 아이가 커서 보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여기에 미안의 심정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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