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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두 Feb 26. 2021

아빠가 육아휴직 2년 하면 깨닫는 것

육아휴직 1년 채우고 퇴사하고 1년 지날 때.

정말 시간이 없다.

부부갈등 소재로 아침드라마에 나오는 대사 중 하나는 이것이다. "애 키우면서 집에선 뭐하길래 이런 거 하나 못해?" 

남편은 일 마치고 돌아왔는데, 집안일이 정리가 안되어 있거나 빈틈이 보일 때, 꼭 아내에게 이렇게 한 마디씩 던진다. 그러면 지는 아내들은 아무 말도 못 하거나, 대꾸하는 아내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네가 그럼 애를 봐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1년 육아휴직을 꽉 채워 쓰고, 3개월 복직하고 다시 퇴사. 다시 본격 육아를 하고 있는 아빠다. 수많은 아내들을 대변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집안일 무시하지 마라, 할 거 많다. 근데 의외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게 집안일이야."

 

집에서 도대체 뭐하냐고 묻겠지.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한다고. 나도 도대체 내가 뭘 하는지 모르겠다. 아이 어린이집 등원시키면 내가 먹은 거, 아이가 먹은 거 설거지하고, 집 정리하고, 반찬 사러 장보고, 들어와서 밥하면 벌써 오후 2시가 된다. 그러고 샤워하고 유튜브 보면서 한두 시간 현타 오면 하원 할 시간이 된다. 내 커리어를 쌓기 위해 계획했던 것들은 저 멀리 가버리고 없고, 책상에 읽고 싶은 책들만 수두룩하게 쌓여있다.


매일매일 서두르게 된다.

정말 매일매일 촉박하다. 가만히 멍 때리면 뭐 할 일 없나 찾게 된다. 기어코 찾은 일을 하다 보면 이상하게도 더 바쁜 일이 생각난다. 하던 일을 관두고 더 바쁜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아이의 하원 시간이 되고, 그렇게 아이를 데려오면 지친 마음으로 아이와 놀게 된다. 놀다 보면 물론 같이 신나는 일이 있는데, 그렇지 못한 날이면 정신이 엉망이다. 할 수 없이 아이를 재우고 나서 해야지 싶었던 일들이, 결국엔 내가 같이 잠을 자게 되면서 내일 아침으로 미뤄지게 되고, 결국 한 번 정신 못 차리고 늪에 빠지면 제대로 가늠할 수 없는 우울도 같이 생겨난다.


점점 자아가 망가진다.

아이에 대한 고민을 매일같이 한다. 수저, 포크, 발달 시기, 옷, 계절, 아이에게 신경을 매진하다 보면 어느새 내 청바지나 외투는 안중에도 없다. 입었던 옷들을 계속 입고, 내게 맞는 스타일이 무엇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드라이기도 안 쓴 지 꽤 오래됐다. 배우자가 내게 관심이 없는 이유도 다 있다. 살을 빼지 않고, 피부가 푸석하고, 성격이 거칠다. 자기 관리할 시간이 정말 없다. 그럼에도 더 윤택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누구겠는가. 파출부를 고용하는 사람일 것이다. 아이를 돌봐주거나, 집안 청소를 해주거나, 반찬을 해주거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남을 고용하면서 나를 두 개로 만드는 것이다. 사실 이게 비용적인 문제로 가장 어려울 것이라 사람들이 생각하지만. 내가 부재중에 내 집을 치워주는 것, 또는 내 반찬과 아이 반찬을 대신 만들어 주는 것은 1회 비용에 10만 원 아래로, 생각해보면 매우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는 것은 내 벌이가 시원찮게 때문이다. 가정부 파출부 안 쓰고 자기 관리하고 몸 가꾸고 상냥하고 요리 잘하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아이도 그만둘 수 없고, 나도 그만둘 수 없다.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포기 못한다. 간혹 포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말고, 아이를 위해서. 아이가 크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우쭐해지는 부모들이 있다. 그렇게 자아를 아이에게 쏟아부으면서 생활하는 부모들은 대부분 아이가 청소년기가 되면 크게 좌절한다. 흔히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이 여기서 시작된다. 정작 아이가 커버리고, 내가 아이에게 굳이 무얼 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오면, 무엇에 관심이 있고 취미가 무엇이었는지 생각이 안나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자존감이 하락된 사람의 모습을 '거울을 통한 나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어쩜 그렇게 장면을 구상한 감독은 그 모습을 잘 알고 있을까. 나 자신을 거울로 바라봤을 때 가장 큰 패망 감에 든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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