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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두 Feb 11. 2021

이겨먹고 싶어

아빠의 인내심과 승부욕은 세월이 다듬어준다.

남편들은 자녀가 딸이건 아들이건 이겨먹으려고 안달 난다. 가위 바위 보, 비석 치기, 달리기, 공놀이 등 대결을 하는 게임 구조에서 때론 져주기도 하지만, 끄끝내 이겨먹으려는 심리가 한 번쯤은 있다. 멀리서 보면 잘 노는가 싶은데 결국 아이는 울음을 터트리고 쫄랑쫄랑 엄마에게 달려간다. 그때마다 와이프들은 그렇게 말하곤 하지. 

"아 좀 져줘!"

그러면 또 우리 남편들은 이렇게 말하지. 

"내가 일부러 그러는 거야! 이 험난한 세상이 결코 만만치 않단 말이지! 응?"


하지만 내가 일부러 이겨먹는 이유는 또 하나 있는데, 최근에 아이가 자기주장을 하기 시작하면서 화가 나면 뜬금없이 소리를 빽 지르기 시작했다. 한 번 소리를 지르고 나면 나도 그 이후에 기분이 상해서 삐딱하게 핀트가 틀어지는데, 재미있게 놀다가도 아이의 의견에 일부러 반대로 가면서 억지를 부리고, 아이가 아니라고 말하면 말꼬리를 잡아 또 아니라고 말하고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참 치사하기 짝이 없는 아빠네... 저녁밥 먹고 빈둥빈둥 30분만 놀면 매일 서로가 머리통이 터지듯 둘 중 하나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토라진다.


생각해보면 아이에게 화를 냈던 순간들이 많았다. 주로 아이의 습관이었는데, 말을 막 하기 시작했을 때 "아빠 싫어", "아빠 미워." "아빠 저리 가." 등의 말을 할 때면 굉장히 큰 충격에 휩싸이고 한동안 우울에 빠지거나 와이프에게 아이를 맡기고 어디론가 나갔었다. 5살인 지금도 그런 말들을 하곤 하는데, 심각했던 그때와는 다르게 나는 요동이 없다.


또 한 번은 나를 때리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4살 시절엔 아이가 마음이 상하면 나에게 찾아와서 다짜고짜 머리통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게 아빠와 관계없는 갈등인데도 그랬다. 놀이터에서 친구가 모래 삽을 가져가도 날 때렸고, 웅덩이에 신발이 젖어도 날 때렸다. 그때마다 나는 또 육아의 방향이 대단히 잘못된 줄 알고 혼란스러웠다. '때리는 버릇은 어디서 온 것일까. 어린이집에서 배워온 것인가. 내가 평소에 때렸던가. 뽀로로가 잘못된 건가.' 고민하고, 육아서적도 보고, 혼자 진지해졌다. 물론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요동도 없다.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는 주의만 가볍게 주면 알아듣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아이의 말 한마디 작은 행동이 엄청 큰 상처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큰 상처를 줄 것이라고 예견하며 막막해하고 있다. 가끔은 아이가 커서 가출을 하면 어쩌나, 아들의 일기장을 보다 걸리면 어쩌나(그건 나만 조심하면 될 듯), 내 지갑에 돈을 훔치면 어쩌나 걱정한다. 아직 다 크지도 않았는데 사서 걱정을 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예전에 그 사소한 아이의 행동이 나에게 큰 상처를 줬고 또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고 전혀 다른 상처를 주듯, 인내심은 아이를 키우면서 세월이 다듬어주는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알쓸신잡3에서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한 유시민 작가가 유럽 최초의 고아원인 인노첸티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여기 옮겨본다. 인노첸티에는 시설을 거쳐 성인이 된 사람들의 인터뷰를 모아놓은 곳이 있다. 이곳에 파올라 라는 아시아계의 성인이 인터뷰를 해놓은 것을 보고 유시민 작가가 눈시울이 붉어진다.


파올라는 어렸을 적에 버려졌고, 인노첸티에서 생활하다가 운좋게도 좋은 양부모를 만나 성인이 될 때까지 평안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친부모가 양육권을 주장해서 도로 파올라를 데려갔고, 또 다른 행복한 삶을 살 줄 알았던 파올라는 절망하고 만다. 나아준 부모의 삶과 가치관이 본인과는 너무 맞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는 면회도 오지 않은 친부모였다고. 그렇게 지내온 파올라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한다. "가족이란 여러분이 만들어가는 거예요."


엄마 아빠도 사람이고 아이도 사람이니까 서로 무례할 수 있고 때론 토라질 수 있는데, 결국은 대하는 방식은 한결같으니, 같이 지내온 세월이 깊을수록 서로를 알아감도 깊어지는 것이 아닐까. 아이도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아빠도 만들어지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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