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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두 Mar 03. 2021

할 수 있지? 그래. 할 수 있어!

오늘도 반성할 수밖에 없는 나의 인내심 한계.


그날은 화를 냈다. 이제는 혼자 속옷을 벗고 입을 줄 알았는데 아직 속옷을 제대로 펼치는 방법도 모르는 것이다. 팬티는 어떻게 입는 거냐며 스스로 옷장에서 속옷을 꺼내와서 꾸역꾸역 다리를 끼워 넣었으나 다리가 들어가야 할 곳에 허리가 들어가거나 뒤집어 입거나 힘겨워 눈뜨고 못 볼 지경이었다. 끝까지 지켜보다가 내가 좀 거들었는데 끝내 내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끝까지 지켜보려 했는데 도중에 아들은 도와달라고 말했고, 나는 할 수 있다며 끈기를 갖고 시도해보라고 응원 아닌 응원을 했다. 그 응원 속에 점점 인내심은 바닥이 나고 있었고 서로 감정이 헝클어져 웃고 떠들며 놀이했던 30분 전의 기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찌어찌 속옷은 입었는데, 이제 잠옷 혼자 입기를 시켜보다가 아들 멘탈이 박살 났다. 나는 그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양치를 시키는데 또 혼자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상한 자립을 향한 고집 때문에 아들에게 생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아들은 점점 울상이 되었고, 나는 한 숨을 푹푹 쉬면서 잠자리를 폈다. 그러다가 문득 아들이 거실로 도망갔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5분이 지났을까 기분을 스스로 풀자 마음먹으며 나는 아들을 불렀다. 


"아빠 화 풀렸어?"


아빠 눈치를 보는 아들에게 나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순간 아들의 표정이 미세하기 떨리기 시작하자 내가 진심을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너무 아빠 생각만 한 것 같다고, 넌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빠가 너무 앞서 나간 것 같다고, 그래서는 안됐는데 미안하다고, 이제부터는 미안하다는 말 웬만하면 안 하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미안하다고, 앞으로는 도와달라는 대로 돕겠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진심을 잘 모르던 아들이 울먹거리며 내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도 아들에게 진심을 안 비추고 매일같이 장난으로 아이의 감정을 가벼운 종잇장처럼 집어던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냥 미안하단 말 한마디 성의 있게 하려다가 온 몸 다해 아들에게 고백해버린 꼴이 되었다.


문득 집 청소를 하던 어느 날 식탁 하단에 초코잼이 묻어있던 때가 생각난다. 초코잼을 바른 모닝빵을 함께 먹던 아침, 아들은 초코가 묻은 손가락을 식탁 밑에 닦았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해해 웃으며 모닝빵을 먹었다. 왜 몰랐을까. 아들이 나에게 예의를 차리고 있었다는 것을. 자신이 잘 크고 있다는 것을 쉼 없이 보여주고 있는데, 왜 아빠인 나는 아이에게 괜찮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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