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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두 Feb 12. 2021

서점 덕후 아이들

책을 좋아하거나, 혹은 기다리거나.

나는 서점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 꽤 오랜 기간 정직원으로 있었으며, 직급이 올라가고 몇 달 되지 않아 육아문제로 퇴사했다. 


서점에서는 그림책을 다루는 업무를 했다. 그림책을 판매하는 일은 다른 서적보다 기막히게 힘든 일이다. 소설책이나 역사책 같은 굵기가 있는 단행본은 재고를 다루기가 쉬운 반면에 그림책은 크기도 모두 제각각이며, 하드커버 도서가 많기 때문에 무게가 상당하다. 판형도 다양하다. 피규어나 장난감이 딸려있는 그림책은 양호한 편이다. 입체적인 팝업북, 스티커북, 사운드북 등도 포함해야겠다. 


그림책을 담당부서는 외서 그림책도 함께 담당해야 했는데, 외서 그림책의 굵기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얼마나 얇은지 호치케스로 찍어 판매하는 단어책도 있고, 아기 손바닥만큼 작은 책도 있으니, 정리하다 보면 그냥 큰 바구니 하나 놔두고 니들 맘대로 읽어보라 하고 싶은 폭탄 같은 심정이 되어버린다.


뿐만 아니다. 많은 어린이들이 서가에 있는 책을 훑어보고 제자리에 놓지 않는다. 당연히 정리 습관이 없는 미성년자라 그럴 수 있다. 도서관이라고 생각하고 매일매일 와서 책을 열댓 권씩 쌓아놓고 읽고 가는 아이도 있다. 근무지를 여러 번 바꿔가며 일해왔는데, 매장마다 저녁때만 되면 혼자 와서 책을 쌓아놓고 읽고 가는 아이들이 한 두 명씩 꼭 있다. 


이런 어린이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이 아이들은 어른들 만큼이나 독특하다. 저녁마다 홀로 방문해서 책을 쌓아놓고 읽는 아이들을 말하자면 대부분 방과 후에 부모를 기다리는 아이들이다. 내가 본 아이들 모두 남자였다(생각해보니 여자 아이들이 이렇게 방치되면 위험하겠다 생각도 든다.). 그리스 로마 신화, 메이플스토리, 오싹오싹 무서운 이야기, 신비 아파트 시리즈 들을 보면서 엄마나 아빠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러다가 정 심심해지면 점원에게 다가와 무어라 말도 걸고, 서재 구석에서 잠도 잤다. 대체적으로 기다리는 지루함에 빠져 지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정말로 책이 좋아서 미치도록 파고든 아이는 단 하나 있었는데. 이 아이는 휴대폰도 없어서 매장에서 매번 전화기를 빌려서 엄마에게 전화했다. 가장 압권의 대화가 생각난다. "오늘은 나 막국수 안 먹으면 집에 안 갈 거야. 아 막국수 먹고 싶다고오~"


한 아이는 그림책을 너무 많이 본다며 할머니에게 꾸중을 듣기도 했다. 언젠가 '매번 와서 만화책이나 봐서는 공부가 되겠냐.'며 손자를 심하게 타박하셨는데 그 소리가 꽤 커서 주변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조용히 해주십사 말씀드렸고, 할머니는 언짢고 쑥스러운 듯 더 이상 말을 삼가셨지만 미련 없이 손자의 손을 잡고 매장을 나가시는 게, 매번 손자에게 하시는 말씀인 듯싶었다. 아이가 책을 읽는 게 어찌 그리도 불편하실까 싶었다.


외서 그림책 중에 챕터북을 홀로 구매하는 초등 고학년 여학생도 있었다. 그것도 빈도수가 꽤 잦았다. 센세이션을 일으킨 순간이 한 번 있었는데, Mysterious Benedict Society <베네딕트 비밀클럽>라고 하는, 청소년 판타지소설을 소녀가 혼자 결제하고 뚜벅뚜벅 걸어 나가면서 책의 앞뒤를 요모조모 훑어보며 혼잣말로 "히히, 재미있겠다." 말하며 퇴장한 순간이었다. 나와 옆에 있던 직원 둘 다 한동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서점을 퇴사하고 나서 문득 서점에서 필수로 일과를 지내는 아이들을 생각해본다. 그들을 생각하자니 매번 기분이 묘해진다. 책을 좋아하게 된 것은 부모의 영향이었을까 아니면 본인의 선택이었을까. 부모의 영향이 대부분 크겠지만 책에 파묻혀 잠만 자는 아이와 책에 몰두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아이와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내 아이는 책을 좋아하게 될까. 그것은 부모의 바람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 책이 많고, 발달과정에서 우리 아이는 언어발달이 빨랐다. 하지만 그뿐이다. 나머지는 아이가 스스로 커가며 제 몫을 찾을 것이다. 다만 서점에 혼자 두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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