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두룩 빽빽한 유아 전집을 2년 마주하고.
와이프와 나는 서점에서 일하다가 만나 사랑을 키웠다. 연애시절에 지역 독립서점을 가고 독특한 책을 찾아 여행했으며, 책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서로가 작가였다면 책 속에 이야기를 좀 더 많이 나눴을까. 우리는 판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양장본, 반양장본, 속지, 띠지, 초판, 재판, 중쇄, 책등, 책배, 가격, 출판사 등등 책이 출간되는 형태에 대해서 서로 할 말이 많았다.
그렇게 책을 사고, 또 사고 있으나, 깊이 있게 읽은 책은 별로 없다고 솔직하게 고백해본다. 인생에 중요한 화두가 던져지면 발등에 불이 떨어지듯 관련된 책을 수집하고 읽기를 시작하지만, 평소에 결심이 없으면 책을 잘 펼쳐보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났다. 우리는 그림책을 많이 읽지 않았지만, 어떤 그림책이 유명하고, 잘 팔리는지는 전문가 수준이다. 무조건 팔리는 그림책과 진열하면 호기심이 생기는 그림책과 인기 없는 그림책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수백 권의 단행본 그림책을 구매해보니 우리 부부는 눈길을 달리했다. 전집을 구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프로검색러의 심정으로 와이프는 전집을 선정해서 사들이기 시작했고, 나는 주야장천 아이에게 읽어주기 시작했다.
아이는 재미있어하는 것 같으나, 나에겐 부작용이 있었다. 첫 번째로 그림책 질이 너무 안 좋은 것을 느낀다. 수학, 과학, 숲, 인성 등의 카테고리로 묶인 전집들은 전부다 강조하는 바가 한결같아서 이야기하는 바를 억지로 끌고 가는 느낌이다. 교통수단에 관한 어린이 전집을 보다가 경악한 순간이 있었는데, 비행기 관련해서 년도과 인물까지 읊는 어린이 전집도 있었다. 예를 들어 "윌버 라이트와 동생 오빌 라이트는 1903년 세계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한 미국인 형제야! 2년 후 형제는 고정익 항공기를 처음으로 제작했지!"와 같은 문구이다. 만든 사람 멱살을 잡고 싶었다.
두 번째로, 물린다. 앞서 말했듯이 하나의 카테고리로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까 그 책이 그 책 같고, 또 읽었나 안 읽었나 헷갈리고, 따로 표시를 해두지 않으면 반복해서 읽게 된다. 반복해서 읽는다고 나쁠 것은 없는데 전집을 구매했으니 한 바퀴는 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이 생겨서 그것이 또 스트레스로 여겨진다. 암쪼록 아이는 재미있는데 내가 읽기 힘들고 재미없어서 그만하고 싶어 진다.
나 자신이 서서히 책을 멀리하게 된 건 스스로 괄목할만한 사건이다. 부모가 책에서 멀어지면 아이도 책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면서 책을 안 펴보는 게으른 아빠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단행본을 사고 싶다. 빨갛고 굵게 강조되어 개념을 강조하는 글밥들 말고. 감동도 있고 폭소할만한 그림책을 찾아 나섰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