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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두 Feb 25. 2021

공동육아 협동조합 어린이집으로.

언제까지 내 아이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우리는 공동육아를 왜 결정하게 되었는가.

결혼한 당신. 아이가 있는 당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당신. 잘 지내고 있는가. 나는 그날따라 잘 지내지 못했다. 아이가 밤중에 말했던 이야기 때문이다. 평소에 우리 부부는 아이와 함께 잠자리에 누워서 아이의 그 날 있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곤 했다(아마 대부분 그러시겠지요.). 엄마 아빠 사랑한다는 말도 잘하는 시간대이고, 평소 아이의 감정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날 아이의 말을 듣고 충격받았다. 선생님이 때렸다고, 게다가 '이렇게! 이렇게' 하며 자신의 머리를 세차게 때리면서 맞았다고 이야기했다. 너무나 구체적으로, 시간 때와 상황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우리 부부는 그날 이후로 틈만 나면 가슴이 덜컹덜컹 내려앉았다. 설마 그랬겠냐며 나는 애써 외면했다. 그럴 리가 없다며, 그렇게 친절한 분들이... 당연히 알아봐야 할 문제들을 놓고 나는 회피했다. 어린이집 교사를 감싸는 나를 내가 이해하지 못 할 정도로 나는 회피하고 있었다. 그토록 정에 휘둘렸나보다. 지금도 입을 꾹 닫았던 지난날의 나를 안타깝게 회상하고있다. 와이프는 그런 나를 보며 예전에 없던 화를 토했다. 


그때 알았다. CCTV가 어린이집에 설치되어 있다 한들, 그들에게 보여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전쟁 선포이다. 아이를 맡기는 부모가 CCTV를 확인하면 원장과 선생 입장은 어떻겠는가. 이미 관계는 금 가는 것이다. 게다가 처음 CCTV를 봐도 되겠냐며 와이프가 물었을 때 이상한 답변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원장 선생님이 경찰을 대동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 약관이나 법 조항을 찾아보지도 않았다. 그대로 속이 문드러졌다. CCTV는 부모가 볼 권리가 있어도 교사에 대한 신뢰를 박살내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 날 이후로 코로나도 격상되어 한동안 집에서만 아이를 데리고 있었고, 그냥 퇴소 결정을 내렸다. 어린이집에는 그냥 전염병 때문에 못 보내겠다고 하며 에둘러 말하고는 처리했다. 그간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어떻게 지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알았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안 가기 위해 꾸며내는 말을 할 인지능력은 이미 지났다고.


함께 키우는 우리 아이.

우리 부부는 생각했다. 다른 대안이 없을까. 우리 아이는 발달이 늦고, 다른 아이보다 반찬도 덜 먹고, 놀이 참여도 안 하는 편이며, 혼자만에 상상에 빠져 지내는 아이인데, 이것 때문에 또 다른 어린이집에서도 불똥이 튀는 것은 아닐까. 


다른 어린이집을 가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다 크면 모를까 아직 유아시기인데, 보살핌을 부모가 직접 관여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 여기저기 둘러본 결과, 우리가 선택한 길은 공동육아였다. 


아이의 활동을 CCTV로 단순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한 달에 한 번은 부모들이 돌아가면서 교사가 되고, 주마다 돌봄의 장이 되는 어린이집 터전을 직접 청소하며, 재정과 홍보는 물론 신입으로 들어오는 조합원을 교육하는 것도 전부 부모가 한다. 이렇게 부모들이 조합원이 되어 똘똘 뭉친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그 이념부터가 철저하고 확실하다.


본래 없었던 터를 닦고 길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여 우리 동네에 생긴 공동육아 어린이집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간신히 안정세를 되찾은 공동 어린이집에 이제 막 우리 아이는 입소를 한다. 그 시설이 낙후한들 어떠한가. '부모가 직접. 내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를 키운다.'는 명목으로 모두가 손을 합친 공동육아는 생각만으로도 좋은 취지 같다.

 

획일적인 교육제도를 반대한다.

아이들에게 점수를 매기고 줄 세우는 현시대에, 그냥 아이 자체로만 클 수 없을까 고민한 것 같다. 아니, 획일적인 교육제도는 사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동육아는 누리과정에 지배받지 않는 어린이집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생활습관을 아얘 나 몰라라 하고 방치하는 교육은 아니다. 기초적으로 해야 하는 여러 가지 습관을 자연스럽게 익숙해질 수 있도록 담당 선생님이 보살펴주신다고 알고 있다.

 

공동육아. 그리고 설국열차.

이우학교를 아는가. 대안학교에 대표적인 학교로서. 성적과 등급으로 교육제도를 만들어놓은 우리나라 교육환경을 뒤집고 토론과 자유로운 수업의 장으로 탄생한 이우학교에 대해 학부모들은 치열하다. 이우학교에 다녔단 말 만으로도 엄청난 스펙을 만들기에, 입학설명회가 진행되기 전에 근처로 이사를 감행하고, 탈락하면 민원도 넣는다더라. 좋은 취지로 설립된 학교에, 사교육과 아이의 스펙이라면 자신의 뼈라도 갈아버릴 심산인 학부모들의 전쟁이라니. 정말 혀를 내두르겠다.

 

내가 공동육아를 선택한 것은 이우학교처럼 대단한 대안교육을 실현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는 아이를 그냥 맡기고 데려오는 탁아소의 개념으로 어린이집을 사용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CCTV가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그것이 있으니 되레 선생님들을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직장인처럼 보게 되는 것도 없지 않았다.


두 번째는 아이를 좀 천천히 키우고 싶었다. 각자 아이에게 발달이 다 다를 텐데, 벌써부터 누리과정이랍시고 클래식 들려주고, 예절 가르치고, 길들인다는 게 이상합니다. 하여 닭장에 닭 넣듯 안 키우려고 생각했다. 


세 번째는 나의 발전이다. 부모로서, 그리고 아이를 맡는 교사를 공감하면서 어린이집에 개입하는 사람이 되고자 결정했다.

 

보육 폭력.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원아를 폭력 하는 선생님은 어떻게든 생겨날 것이다. 내 주변만 보더라도 아이를 탁아소로 보낸다는 개념인 사람이 거의 100%이며, 맡기면 알아서 잘해주겠지. 하는 부모들이 많다. 아이 키우기 힘든 거 잘 알고 있으면서, 그런 부모들이 교사들의 힘듦은 잘 모른다. 커피 배달하고 빵 선물해봤자, 뒤돌아서면 아이들이 때 부리고 울고 있는데, 그 스트레스 감당을 누가 해주겠는가. 빵이 해결 못해준다. 커피도 해결 못해준다. 그래서 어린이집 교사는 부처가 해야 되는 것이다. 이 시대에 어린이집과, 유아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언제까지 내 아이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저 운 좋은 선생님을 바라는 뽑기 같은 마음으로 아이를 맡기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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