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도 한번 살아보지, 뭐

이민 결정. "다른 나라에서도 살아 보려고."

by 희연

캐나다에서도 한번 살아보지, 뭐

1. 이민 결정. "다른 나라에서도 살아 보려고."


2017년 4월 30일. 날씨가 점점 더 더워지고 있었다. 손님이 없는 한적한 카페에 앉아서 조남주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순식간에 다 읽었다. 내게는 절망이 드리워졌다.


「82년생 김지영」다 읽었다.
소설이라기보단 누군가의 일상을 기록한 일대기 같았다.
그리고 점점 선명해졌다.
아. 그래, 이래서 내가 한국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던 거라고.
이래서 내가 "평범한 삶"은 싫었던 거라고.
홀로 가는 길이 험난하고 힘이 들겠지, 제시되어 있는 평범한
삶, 평범한 이야기는 언젠가 내게 다가올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 그래서 내가 행복할 수는 없겠지.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행복하고 싶다.
행복해질 것이다.
누구와도 다른 삶을 살게 되지는 않겠지만 모두가
갖고 있는 절망을 벗 삼는 삶을 살지는 않아야지.
희망이 없을지라도 빛이 보이지는 않아도,
나는 내 삶을, "나"를 잘 찾아서 살아야지.
"내 삶"을 살아야지.

20170430


책을 읽자마자 절망감에 휩싸여서 굳은 결심을 했다. 이민을 가자, 고.


이민 결심이 꼭 이 책 때문에 선 것만은 아니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차근차근 이민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살다 보니 현실에 무뎌져서, 이대로도 괜찮지 않나? 하는 안일한 생각이 문득 들었던 때였다. 내가 이민을 가고 싶다고 마음먹었던 그 순간의 감정을,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되살아나게 했다.


언제였을까?

처음 호주 어학연수를 가서, 2012년 12월 대선에서 박근혜가 당선되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았을 때부터였을까? 같이 어학연수 온 한국인 친구와 개표방송을 보며 엉엉 울고는, 우리 난민신청을 하자며 서로를 다독였던 것은 반쯤은 장난이었지만, 어떤 정치적 절망이 깔려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혹은, 한국에 돌아와서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갈 수 있는 자리가 어디에도 없다는 걸 느끼면서였을까? 대학교 4학년, 졸업을 앞두고도 진지하게 취업을 생각하진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다급하게 하나 둘 취업해버리는 그 분위기에 이끌려, 조급증이 나는 바람에 잠깐 취업 준비를 한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기엔 충분한 기간이었고, 나의 무능함에 무너지기에도 무척이나 충분한 시간이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고, 스스로를 책망하게 되는 그 어둠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아니면 대학 졸업 후, 약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친구와 단둘이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을 때였을까?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교류하고, 서로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너는 너대로 힘들구나, 나는 나대로 힘들단다 다독였는데,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호주 이민'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어렴풋이 '여기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한국에 돌아와서, 오래도록 만나왔던 남자 친구가 구두로 약속했던 결혼을 파기하고 청천벽력 같은 이별 통보를 하고 잠수를 탔을 때, 충격에 식음을 전폐하던 그때였나? 그와 함께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면, 한국땅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억지 같은 마음, 그런 것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학원 강사를 하며, 중, 고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이 나라의 교육에 '아이들'은 없다는 것을 보고 말았다. 내가 앞으로 한국에서 계속 살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이를 낳아 길러야 한다면 한국에서는 절대 안 되겠다는 생각을 자꾸만 했다. 성적표에 매겨진 등급, 등급대로 나뉜 계급, 계급 상승을 위해 새벽 6시부터 밤 12시가 넘도록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책상에 붙어서 청춘을 빼앗긴 채 살아가야 하는 청소년들. 주어진 것들만 해내기에도 버거워서,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생각해 볼 시간이 없는, 그리고 공부를 왜 해야 하냐고 되묻던 학생들. 그들의 눈동자에 미래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한낱 학원 강사는 외워야 할 단어장만 던져줄 수밖에 없었다.


이민을 결심하게 된 정확한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삼십여 년 간을 살아오며 체감한 '싫은 것들'이 모여서 나의 결정을 굳건하게 만들었다. 싫어도 참고 살아왔던 시간이 더 길어서, 이제는 싫은 것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한 번 도망쳐 보려고 한다.


"나 이민 가려고."


이 한 마디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경험을 녹여낸 대답을 한다. 내가 뱉은 이 말속에 들어있는 나의 경험치들이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모양인지, 대게는 부정적인 답변들 뿐이다.


뭐하러 가냐, 어딜 가나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다.

거기서 힘들게 노력하는 거 반만큼만 해도 한국에서 더 잘 살 수 있다.

그 나라에 가면 인종차별당해서 더 먹고살기 힘들다.

막상 갔는데 마음에 안 들면 어쩌려고 그러냐.

한국 사람은 한국에서 한국 사람들이랑 어울려 사는 게 제일 좋은 거다.

그곳은 할게 너무 없어서 심심한 나라다.

한국만큼 좋은 나라가 없다.


내 마음을 타인에게 설득시키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이 말을 들으면 어쩐지 이민을 가야만 하는 타당한 이유들을 제시하면서 이들을 설득시켜야만 한다는 강박에 빠진다. 사실 너무 뻔한 반박들이고, 설령 그 어떤 합당한 근거들을 꺼내놓는다고 하더라도 이 사람들의 귀에는 헛소리로만 들릴 것이다.

(사람 사는데 다 똑같으면, 아프리카에 가서 사는 건 어때? 어차피 거기도 똑같이 사람 사는 덴데 뭘! / 그런데 왜 한국에 있는 그 많은 청년층들은 빈곤을 벗어나지 못할까? 노력이 부족한가? / 인종차별이야 어느 나라에나 다 있다고 하지만,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제도가 있고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좀 더 나은 곳에서 살고 싶어. / 마음에 안 들어도 내 몫이야. / 누구와 어울려서 어느 땅에 사는 게 제일 좋은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아는 법이지. / 한국에서도 내가 할 건 없는 것 같아. / 응, 나에게는 좋지 않아.)

모든 반박할 수 있는 답변들을 다 머릿속에서 지우고, 나만의 그 타당한 이유들을 다 목구멍에 삼킨 다음, 딱 한 마디만 한다.


"세상은 넓은데, 한국에서만 살긴 좀 아깝지.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도 한 번 살아 보려고."


그래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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