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는 없다
2. 유토피아는 없다.
그래서 대체 왜 캐나다로 간다는 거야?
캐나다를 가기로 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메리트는 캐나다가 영어권 국가라는 것이었다. 모국어인 한국어 외의 언어 중, 내가 그나마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구사할 수 있는 것이 영어였다. 어릴 때는 영어 공부를 좋아했기 때문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영어 테이프를 들으며 따라 하기를 곧잘 했다. 그리고 학창 시절에도 영어 성적이 나쁘지 않았고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하는 것을 꺼리지도 않았다. 인제 와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적은 비용으로 빠른 시일 내에 이민이라는 코스를 밟기에는 난관이 여간 험난한 게 아니다. 그러니까 영어를 쓰는 나라로 가자는 것이 캐나다를 고려하게 된 첫 번째 이유였다.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대표적인 나라 중,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미국은 처음부터 논외였다. 그리고 호주는 학생비자로 한 번,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한 번, 총 두 번을 다녀온 적이 있었으니 또 목록에서 제외했다. 영국도 3주 정도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했고 크게 끌리는 나라는 아니었다. 그 외에도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가 몇 군데 더 있겠지만, 내가 가 보지 못한 나라 중, 땅이 넓고 비교적 이민 정보가 많은 나라로, 캐나다가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그래, 캐나다 정도면 좋겠어.
추운 곳을 싫어하는 내가, 겨울의 나라 캐나다를 가겠다고 하니 주변에서 말리는 말 뿐이었다. 나조차도 내가 겨울 평균 기온이 항상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캐나다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걱정했고, 캐나다가 아닌 익숙하고 따뜻한 호주가 더 낫지 않을까, 갈팡질팡 하는 마음이 매일같이 새록새록 돋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캐나다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 주었던 뉴스를 우연히 다시 읽게 되었다.
https://www.huffingtonpost.kr/2015/11/05/story_n_8476106.html
캐나다 내각 성비는 5:5라는 내용의 기사였다. 이 글 초안을 썼던 2019년과, 지금 현재, 2020년에는 어떻게 변했는지 알지 못하지만, 기사가 났던 당시의 감상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라고 어렴풋이 확신할 수 있다. 캐나다 말고 어떤 나라에서 의회 구성을 이렇게 했을까? (굳이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드문 케이스이기 때문에 뉴스화되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한국의 국회의원 성비가 남자 83% 여자 17%인 것과 비교하니, 한국보다 캐나다는 그야말로 유토피아처럼 보였다.
내각 성비를 같게 구성한 것이 완벽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분명 성별을 뛰어넘는 또 다른 기준이 필요하겠지만, 이 기사를 읽으며 느낀 확실한 한 가지는 '여성도 원하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여기겠구나.'였다.
"넌 여자니까 안 돼."라고 나에게 직접 말한 사람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그 말을 듣기 전에 내가 먼저 몸을 사리기도 했으니까, 상대적으로 적게 듣고 자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었다. 곧 서른을 앞둔, 여자인 나는, 한국에서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희망을 품기에는 너무 약자였다.
그리고 얼마 후, 캐나다에 관한 또 다른 기사를 읽었다.
https://www.huffingtonpost.kr/2015/12/11/story_n_8780296.html
캐나다에 들어온 시리아 난민을 환영하는 총리의 모습이 담긴 기사였다. 그는 공항까지 직접 가서 난민들을 맞이하며 따뜻한 온기를 가득 담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러분들은 이 공항에 들어올 때는 난민이었지만, 공항을 나가는 순간 캐나다 국민이 될 것입니다."
어떤 나라의 국민성을 알고 싶을 땐, 그 나라 사람들이 약자를 대하는 모습을 보라고 했던가. 나라를 잃고 헤매는 최약자들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았을 때, 이 곳은 나에게도 쉼터가 될 수 있는 나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 총리, 트뤼도는 이후에 숱한 구설에 오르게 되지만, 이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물론 캐나다도 사람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다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지옥 같은 삶이 캐나다에서 펼쳐질지도 모르고, 그래서 너무 지겨워져 캐나다에 학을 떼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지구상에 유토피아가 있다면, 나는 그곳을 목표로 삼았겠지만, 아직 어디에도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딜 가도 나쁜 사람들은 있을 것이다. 그만큼 좋은 사람도 또 있겠지. 누가 말하듯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으니까. 사람들이 모두 같다면, 제도라도 잘 갖춰진 곳은 어떨까? 누구나 자신의 땅에 들어온 이방인을 차별하겠지만, 제도적으로 차별을 금지한 곳이라면? 약자를 향한 폭력은 어딜 가나 있다지만, 그나마 국가 권력이 약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좀 더 강력히 작용하는 곳이라면?
그곳도 완벽한 유토피아는 아니겠지만, 비교적 괜찮은 시작점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작은 꿈과 희망을 품고, 캐나다행을 결정했다.
Copyright. 2020. 윤해후.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