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도 한번 살아보지, 뭐

정신 차려 보니, 경력은 없고 나이만 먹었더라

by 희연

캐나다에서도 한번 살아보지, 뭐

3. 정신 차려 보니, 경력은 없고 나이만 먹었더라


나이만 먹을 대로 먹은 나, 이대로 괜찮을까?


호주에서 꿈같았던 10개월, 워킹홀리데이로 놀 수 있을 만큼 놀다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내 나이는 어느덧 스물여섯 살이 되어 있었다. 호주에서 내 소개를 하던 버릇이 남아 만 나이로 스물여섯이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동안은 정신 못 차리고 나를 "스물여섯 살"로 소개를 했다. 그러니까 사실은 스물일곱 살이었는데.

건강 상의 문제로 한국에 돌아오게 된 것이라, 부모님과 함께 지내며 당분간은 외국을 나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지냈다. 부모님이 계시는 나의 고향, 거제도는 경상도 치고는 덜 보수적이라고는 하지만 역시 어쩔 수 없는 경상도였다. 서울에서만큼 일신이 자유롭지 못해 자꾸 답답함을 느끼고 동네 밖을 나돌았다. '동네 밖'이라고 하면 부산이나 제주, 서울 같은 곳이 주 목적지였다.

그래도 외국은 나가지 말자,라고 생각하던 와중에 실연의 아픔이 찾아왔다. 사실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 혼자 외국에 가 있는 열 달 동안 그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은 자만이었으니까. 그 덕분에 나는 더 이상 한국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떠나고 싶었다. 멀리, 더 먼 곳으로.


마침 캐나다인 친구, D와 통화를 갖가지 위로의 말을 들었는데 ("전 세계 모든 남자들이 너의 새로운 짝이 될 가능성이 생긴 거잖아! - 아, 게이를 빼면 말야.") 누구나 해줄 수 있는 말이었지만, 나는 D가 해준 캐나다 이야기가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럼 캐나다로 가 볼까?


사실 캐나다로 갈지 호주로 갈지 마음을 완전히 정한 것은 좀 더 나중 일이었다. 그래도 일단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그 순간부터 시간은 미친 듯이 빠르게 흘렀다. 당장 떠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 가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탓에 곧바로 나갈 수는 없었다. 돈을 먼저 모아야 했다.


딱 1년만 돈을 모으자, 그래서 떠나자.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돈은 생각보다 쉽게 모이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친한 언니'가 도움 요청한 것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모았던 돈을 홀랑 빌려주기도 했다. (덕분에 사기죄로 고소를 당해 경찰서도 다녀오는 진귀한 경험도 했다. 교훈, 돈은 절대 빌려주지 말자.)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렀다. 마음은 캐나다로 기울어서 캐나다를 가기로 결정도 했고, 어떻게 가야 할지를 정해야 했다. 결정을 내렸을 때는 20대였으니까, 캐나다 워킹홀리데이에 지원해 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섣불리 워킹홀리데이를 갔다가 또 시간만 낭비하게 될까 두려웠다. 기왕 가는 거, 좀 더 공을 들여 영주권을 따서 정착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러니까 단지 1~2년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내 삶이 그곳에서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욕심이었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캐나다에 직장을 구해서 떠나는 것이었다.

문제는 내게 아무런 경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정말로, 이력서에 쓸 만한 경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대학생 때 전전했던 아르바이트는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되었고, 대학 졸업 후 동네 보습 학원에서 6개월 영어를 가르친 것도 경력으로는 쓸 수가 없었다. 그 어떤 회사에도 입사 원서를 넣겠다는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서른이 다가오면서 조급해졌다. 나이는 나이대로 먹었으면서 제대로 된 직장 생활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이대로 아무것도 없이 캐나다를 가야 해?

그나마 내가 영주권을 딸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루트는 "유학 후 이민"으로, 캐나다 내 컬리지 2년 과정을 다니고 졸업하여 직장을 구해 일하다가 영주권을 신청하는 것이었다. 유학원과 상담 후 이쪽으로 결정을 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서른이 될 때까지의 내 인생을 그냥 낭비한 시간으로 치부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경력 한 줄 쓸만한 일이 없다는 건 좀 슬펐다. 물론 내가 선택해서 이렇게 된 거였지만.


어쨌든 먼저 캐나다에 있는 컬리지로 진학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정했으니 중요한 문제가 남았다.

바로 돈이었다.


경력만 없는 게 아니라 돈도 없다는 게 문제긴 했지만.


2년 코스 학비, 딱 그만큼만 모아서 가자. 그러니까 3천만 원이 모이면 떠나자.

나머지는 그다음에 생각하자.


나이는 먹었어도 막무가내인 것은 10대 못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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