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영어를 잘하는 줄 알았어
4. 나는 내가 영어를 잘하는 줄 알았어
영어가 돼야 캐나다를 가지
언제, 어떻게 캐나다를 가야 할지 정하니, 다음 단계로 느리지만, 천천히 나아갈 수 있었다. 유학&이민 박람회를 여러 군데 쫓아다니며 수많은 유학원과 상담했는데, 모든 곳에서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영어 점수'였다. 어느 유학원과 상담을 하더라도 영어 점수가 있는지를 먼저 물어봤다.
캐나다를 가기 위해, 필요한 공인 영어 시험 중에는 아이엘츠(ILETS)가 있다.
아이엘츠는 International English Language Testing System로, 영국문화원과 케임브리지 대학교, 호주 IDP 에듀케이션이 공동 개발하고 관리, 운영하는 영국식 영어 능력 시험이다. 비영어권 국가 출신자들의 영어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으로, 미국에는 토플이 있다면, 영국 연방 국가(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에는 아이엘츠가 있다. 물론, 미국에서도 아이엘츠 점수로 토플 점수를 대체하는 곳이 있고, 캐나다에서도 토플 점수를 받는 학교가 있긴 하다.
토플보다는 아이엘츠가 더 쉽지 않을까, 하는 막연하고 안이한 생각으로 아이엘츠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정했다. 사실 이렇게 막무가내로 결정하기보다는 진학을 원하는 학교를 먼저 정하고 거기에 맞춰 영어 시험을 준비하는 게 맞지만, 캐나다에 있는 학교는 주로 아이엘츠 성적을 요구한다는 말만 듣고 아이엘츠로 결정을 했다.
아이엘츠는 영어 능력을 듣기와 읽기, 쓰기와 말하기로 평가한다. 한국인들은 대체로 말하기와 쓰기 파트를 어려워하는 반면에 듣기와 읽기 파트에서는 점수를 잘 받는 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말하기와 쓰기가 어렵다는 말에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내 생각을 곧잘 글로 쓰고 말로 뱉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언어가 달라졌다고 해서 그렇게 어려워질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일단은 아이엘츠 교재를 샀다. 뭘 사야 할지 몰라서 서점에서 한참을 뒤적이다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단어와 문법을 위주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단어와 문법 중심의 교재를 샀다. 그리고 첫 장을 펼쳐 공부한 이후로 다시는 펼치는 일이 없었다.
생각보다 나는 게으름뱅이였고, 나의 의지력은 보잘것없었다. 책은 샀지만 펼치지 않고 시간만 허송세월 보내다가 계획했던 날짜는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결국, 사교육의 힘을 빌리기로 하고 집과 가까운 곳의 아이엘츠 종합반 수업을 등록했다.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기에, 일부러 종합반을 선택했다. 듣기와 읽기 수업은 과연 지루하다고 느껴질 만큼 수월했다. 어차피 집에 가면 안 하니까 수업이라도 들어야지, 하는 마음에 수업을 빼먹는 날은 없었다.
문제는 말하기와 쓰기였다.
시험용 말하기와 쓰기의 세계는 차원이 달랐다.
어릴 적부터 영어 공부를 좋아해서 스스로 찾아 할 정도였고, 영어 공부를 하며 어려움을 느낀 적이 별로 없었다. 종종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노력으로 금방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학교 시험은 교과서 밖을 벗어나지 않았고, 점점 말도 안 되게 어려워지는 수능(혹은 모의고사) 영어 시험도 결국 '공식'이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공식을 익히면 다음은 어려울 일이 없었다. 이런 건 아이엘츠 듣기와 읽기 공부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엘츠 쓰기와 말하기 파트는 정말로 차원이 달랐다. 내 생각을 말하고 쓰되, 내 생각대로 말하고 쓰면 안 되었다. 정답이 없지만, 정답처럼 보이게 쓰고 말해야 했다.
A가 B인가 물어보는 질문에 그렇다/아니다로 대답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A가 B라면 왜 그런지, 아니라면 왜 아닌지를 대답해야 했다. 둘 중에 어떤 쪽을 고르든 중요하지 않았다. 내 생각이 무엇인지 말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생각을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중요한 거였으니까.
초반에는 내 '생각'을 말하고 쓰기에 집중하느라 매번 지적을 당했다. 선생님이 틀렸다고 지적할 때마다 내 생각과 내 주장이 부정당하는 것 같아 자꾸만 주눅이 들었다.
요령을 터득한 것은 학원을 보름 정도 다닌 후였다. 내 생각과 주장을 고집하며 말하거나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어떻게 잘 '꾸며내서' 말하고 쓰는지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틀렸다고 지적당하는 것은 내 생각이 아니라 나의 말하기, 쓰기 방법이었다.
요령을 터득했다고 해서 공부가 쉬워지진 않았다. 집에서 쓰기 숙제를 할때면 늘 엉엉 울기 일쑤였다. 아무리 해도 시간 내에 답을 쓰기 어려웠고 사고 회로가 자꾸 멈추었다.
내가 정말 원하는 점수를 받을 수 있을지 내내 걱정이 됐다.
이러나저러나 시간은 흘렀고, 학원 선생님의 조언으로 시험을 연달아 두 번 치는 걸로 접수를 했다. 아이엘츠 시험의 난도는 전반적으로 들쑥날쑥해 언제 어려울지 언제 쉬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다만 극악할 정도로 어려운 시험이 연달아 두 번 나오지 않아, 처음 시험에 어려웠다면 그 다음은 쉬워지니 두 번 연속으로 치는 게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다. 시험 비용이 만만치 않았지만, 단기간에 원하는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내게 최선이었다.
첫 번째 시험은 듣기와 읽기 시험이 정말 쉬웠다. 풀면서도, 이렇게 쉬운 게 내가 제대로 풀고 있어서 그런 거야, 아니면 내가 정말 하나도 몰라서 그런 거야?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심지어 읽기 시험에서는 시간이 남아서 지문을 다시 한번 더 읽을 정도였다. 듣기도 내가 틀린 문제 개수를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쓰기는 기억하기도 싫을 만큼 끔찍했는데, 문제 지문이 Paraphrasing 하기 어려울 만큼 짧았다. (*Paraphrasing : 다른 말로 바꾸어 표현하기. 영어 쓰기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말하기는 긴장했던 것에 비하면 잘 말한 것 같았다.
두 번째 시험에서는 듣기와 읽기가 평이한 반면 쓰기가 첫 번째 시험에 비해 쉬운 편이었다. 자신감에 넘쳐서 힘차게 썼고, 내가 쓰고 싶었던 말들을 충분히, 적절한 단어들로, 글자수도 넉넉하게 다 써냈다. 다만 말하기 시험에서는 처음 시험보다도 더 어눌하게 말했던 것 같아 점수가 더 떨어졌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결과는 내가 느낀 것과는 조금 달랐다.
어쨌든 목표한 학교에 지원할 수 있을 만한 점수가 충족되었고, 아이엘츠와 씨름은 이렇게 일단락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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