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몬트리올 YMCA gym
“아차, 내가 패스를 집에 두고 왔어. 헬스장 들어갈 수 있을까?”
“오늘도 출근했구나? 넌 우리 헬스장 직원 같은 회원이잖아. 너는 카드 대신 얼굴이 공식 패스야. 내가 문을 열어줄게. 들어가서 오늘 운동도 즐겁게 해!”
헬스장 출입 패스를 집에 두고 와서 당황하고 있던 순간. 1층 안내데스크 에디는 유쾌하게 웃으며 입장을 도와준다. 여기는 캐나다 몬트리올 중심가의 가장 큰 헬스장인 YMCA. 건물 3층을 통째로 복합 운동 시설로 사용하는 이곳은 1층엔 수영장과 농구 코트가 있고 2층엔 GX(그룹수업)를 위한 공간이 있으며, 3층엔 러닝 트랙을 갖춘 큰 헬스장이 있었다. 룰루레몬에서 나온 노란 탑과 레깅스로 환복하고 러닝 트랙을 돌며 몸을 푼다. Instructor라 적힌 빨간 유니폼을 입은 트레이너들이 헬스장 곳곳에서 아는 체하며 눈인사를 해주니 나도 반갑게 화답한다. 한국에서는 억지로 트레드밀만 탔던 내가 어떻게 헬스장 개근자가 되었는지 스스로도 놀랍다. 1층 입구에서 프리패스로 기분이 한껏 고양된 나는 3층 탈의실로 한걸음에 뛰어 올라갔다.
말 못 하는 벙어리 삼룡이가 되면 이렇게나 답답할까? 사람은 표현의 동물이라는 걸 외국에 나가보면 피부로 느낀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불어 세상에 첨벙 들어선 후론 하고 싶은 말과 할 수 있는 말의 간극 사이를 매일 허우적거렸다. 대학도 졸업한 다 큰 성인이 초등생 영어로 의사소통하게 되면 순간이면 내가 바보가 된 게 아닌가 싶어 현타가 밀려온다. 적절한 어휘가 떠오르지 않아 말을 삼키거나, 몹시 활발한 내가 여기서는 강제로 내성형 인간이 되어버렸다. 한국에선 이렇게 바보는 아니었는데 말이지, 인문학부 수석을 해서 영문과에 1등으로 배정을 받기도 했고, 토익도 고득점을 받아 취업 후에 사장님의 총애를 받기도 했던 나였다. 그런데 14시간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에 도착한 순간 머릿속을 맴도는 문법들과 한국어 혀 사이에서 프리토킹이란 난제는 486 컴퓨터처럼 버벅버벅 로딩이 걸렸다. 답답함이란 마음의 짐이 늘어갈 때쯤 늘어난 몸무게에 떠밀려 헬스장을 등록했다. 집에선 조금 멀긴 했지만, 나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중심가의 YMCA로 결정한 건 어린 시절의 로망 때문이리라. 러닝 트랙이 있는 헬스장이라니, 왠지 이것이야말로 진짜 외국스러운 게 아니던가. 어린 시절 본 사진 한 장에 꽂혀 영문과까지 냅다 가버린 나에게 집에서 다소 떨어졌다는 실리적인 이유는 전혀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자신감과 자존감의 쌍두마차를 하드케리 하며 진정한 운동인으로 태어날 거란 건 꿈에도 몰랐다. 탈의실에서 옷을 다 갈아입었으니 이제 러닝 트랙을 뛰어 볼까나.
Downtown Montreal YMCA on Drummond Street near Sainte-Catherine Street, Oct. 11, 2023. (Martin Daigle, Cit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