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슬픔을 들키지 않는 도시, 오쓰》

by 쓰는사람 명진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

이 말은 틀렸어.

난 찾았거든, 아지트를


소중한 이를 잃어본 사람은 알 거야.

울리지 않는 전화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건

살아 있는 지옥이란걸


아빠가 있었다면 지금쯤 전화했을 텐데,

이 좋은 날 드라이브 가자고 연락했을 텐데,

아빠가.. 그렇게 갑자기 떠나지 않았더라면..


상주 역할도, 아빠의 마지막 배웅도

씩씩하게 견뎌냈는데

나는 왜 아직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걸까.


작년 봄, 벚꽃조차 무감각하던 5월

도망치듯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어

덩그렇게 놓인 3일을 혼자 버틸 자신이 없어서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야

교토에서 가까운 오쓰(Otus)라는 한적한 마을에

영국인이 하는 고요한 숙소가 있다길래

주소 한 장 달랑 들고 갔지.

그것이 영어로 도망칠 수 있는

가장 짧은 동선이었으니까


간사이 공항에서 교토까지, 1시간 반

교토에서 오쓰시까지, 40분


텅 빈 눈에 비치는 풍경은 도시에서 시골로

빌딩 숲에서 나무로 점차 바뀌더라


6시 즈음 숙소 근처에 다다르니

하루 종일 주린 배가 고프더라

'우습지? 슬픔도 배고픔을 못 이기는걸 보니

난 아직 살아있나봐‘


지하철 역을 빠져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렸어

츄리닝에 모자, 화장도 안하고, 환전도 안하고,

짐도 없는 탈출자가 맛집을 검색했을 리 만무하잖냐.


차만 쌩쌩 달리는 주변을 서성이다가 구글맵을 켰지.

제일 가까운 식당이 어디냐고


지도가 알려주는 대로 찻길을 2번 건너 주택가 초입에 있는 랜덤 가게로 투벅투벅 걸어가 문을 여는 순간


그때부터 여행의 장르가

암울한 탈출기에서 휴머니즘으로 바뀔 줄은

상상도 못했...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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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