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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지혜 Sep 13. 2023

조서의 서명날인 거부, 유리할까 불리할까

최근 당 대표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에 자신의 진술 취지가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서명날인을 하지 않은 채 조사를 마쳤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피의자가 조사를 마치고 그 조서에 서명날인을 안 해도 되는 거냐고 묻습니다.

네. 서명날인 안 해도 됩니다(야당 대표라서 특별히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


피의자 조사는 본질적으로 피의자의 협조가 없으면 불가능한 “임의수사” 방식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피의자 조사에 있어서 그 무엇도 강제할 수가 없습니다. 조사에 서명날인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강제할 수 없습니다(좀 거칠게 표현하면, 강제로 손가락을 잡고 지장을 찍으면 안되겠지요?).

그럼 서명날인 안 하는 경우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될지는 서명날인 하는 경우에 근거 규정을 봐야 합니다.

형사소송법은 조서에는 진술한 사람이 간인하고 서명날인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


형사소송법
제48조(조서의 작성 방법)  (1)피고인, 피의자, 증인, 감정인, 통역인 또는 번역인을 신문(訊問)하는 때에는 신문에 참여한 법원사무관등이 조서를 작성하여야 한다.  
(2) 조서에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을 기재하여야 한다.  
1. 피고인, 피의자, 증인, 감정인, 통역인 또는 번역인의 진술.  
2. 증인, 감정인, 통역인 또는 번역인이 선서를 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사유   
(3) 조서는 진술자에게 읽어 주거나 열람하게 하여 기재 내용이 정확한지를 물어야 한다.   
(4) 진술자가 조서에 대하여 추가, 삭제 또는 변경의 청구를 한 때에는 그 진술내용을 조서에 기재하여야 한다.   
(5) 신문에 참여한 검사, 피고인, 피의자 또는 변호인이 조서 기재 내용의 정확성에 대하여 이의(異議)를 진술한 때에는 그 진술의 요지를 조서에 기재하여야 한다.
(6) 제5항의 경우 재판장이나 신문한 법관은 그 진술에 대한 의견을 기재하게 할 수 있다.  
(7) 조서에는 진술자로 하여금 간인(間印)한 후 서명날인하게 하여야 한다. 다만, 진술자가 서명날인을 거부한 때에는 그 사유를 기재하여야 한다.

간인은 문서 각 장의 사이사이에 도장이나 지장을 찍는 방식으로 문서 처음부터 끝장까지 찍으면 됩니다. 문서의 연속성과 완결성을 증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간인이 되어 있지 않으면 문서의 완전성이 훼손되었다고 보아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서명날인은 조서 끝부분에 진술한 사람 본인 이름을 자필로 쓰고 도장 또는 지장을 찍는 것입니다.

진술한 사람이 간인도 하고 서명날인하는 것은 자신의 진술 취지대로 기재되어 있다는 것을 직접 읽어서 확인했고 이의가 없다는 뜻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 조서는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법원은 서명날인이 없는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확립된 판례입니다.


서명날인을 거부한 사정을 조서에 기재했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식상 서명날인 없는 조서는 조서로서 형식이 갖추어져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조서말미에 피고인의 서명만이 있고, 그 날인(무인 포함)이나 간인이 없는 검사 작성의 피고인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할 것이고, 그 날인이나 간인이 없는 것이 피고인이 그 날인이나 간인을 거부하였기 때문이어서 그러한 취지가 조서말미에 기재되었다거나, 피고인이 법정에서 그 피의자신문조서의 임의성을 인정하였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

대법원 1999. 4. 13. 선고 99도237 판결

​​

그럼 피의자는 귀한 시간을 들여 작성한
조서의 서명날인을 왜 거부하는 걸까요?
거부하는 것이 피의자 입장에서
유리할까요? 불리할까요?

서명날인을 진술한 사람이 자신의 진술 취지대로 기재되어 있지 않거나 조사 절차와 방식에 이의가 있다는 항의의 뜻을 표시하는 겁니다. 수사기관과의 기싸움의 의미도 있습니다. 조서에 내 취지가 반영되어 있지 않으니 내용을 고쳐 달라고 요청하는 등 실랑이를 하면서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서명날인을 거부하거든요. 감정적인 대응일 수도 있습니다. ​


한편, 겉으로는 항의의 뜻을 표시하는 동시에 실제로는 진술 거부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불리할 수 있는 진술을 해서 그 진술이 불리한 증거로 사용되게 해서 처벌받을 가능성을 높이느니 입을 다무는 것입니다. 서명날인 거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명날인을 해서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를 하나 더 추가하느니 증거능력이 없어지게 해서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를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


하지만 진술 거부나 조서 서명날인 거부를 통해 불리한 증거 하나를 없애더라도
실제로는 피의자에게 더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어서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철저히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


핸드폰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이나 구속영장 발부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핸드폰은 한 사람의 모든 인생을 알 수도 있기 때문에 법원도 핸드폰 압수수색 영장은 신중히 발부합니다. 구속영장은 물론 더욱 신중히 발부합니다. ​


서명날인이 거부된 조서가 검찰이 기소한 후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는 없지만,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 법원은 영장 청구 시까지의 모든 수사기록을 제출받아 열람합니다. 그 수사기록에 편철된 서명날인이 거부된 조서를 영장 발부 판사가 다 읽어 보는 것입니다.

수사기록상 피의자 진술 외에 다른 증거가 상당히 갖추어져서 혐의 입증이 충분하다고 보이는 상황에서 피의자가 조서 서명날인을 거부하거나 진술을 거부하면? 판사는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겁니다. 피의자가 증거 인멸 혹은 도주 우려가 높다고 판단할 테니까요.

진술거부의 경우에도 판사는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판례를 한 번 보겠습니다. ​


형법 제51조 제4호에서 양형의 조건의 하나로 정하고 있는 범행 후의 정황 가운데에는 형사소송절차에서의 피고인의 태도나 행위를 들 수 있는데, 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할 권리가 보장되어 있으므로(헌법 제12조 제2항), 형사소송절차에서 피고인은 방어권에 기하여 범죄사실에 대하여 진술을 거부하거나 거짓 진술을 할 수 있고, 이 경우 범죄사실을 단순히 부인하고 있는 것이 죄를 반성하거나 후회하고 있지 않다는 인격적 비난요소로 보아 가중적 양형의 조건으로 삼는 것은 결과적으로 피고인에게 자백을 강요하는 것이 되어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나, 그러한 태도나 행위가 피고인에게 보장된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객관적이고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진실의 발견을 적극적으로 숨기거나 법원을 오도하려는 시도에 기인한 경우에는 가중적 양형의 조건으로 참작될 수 있다.

대법원 2001. 3. 9. 선고 2001도192 판결

법원은, 피고인은 헌법상 보장된 진술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진술거부권의 행사 그 자체를 형을 가중하는 요소로 할 수는 없습니다. 자백을 강요하는 결과가 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객관적이고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형을 가중하는 요소로 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자녀의 입시 비리 등으로 법정에 선 전 법무부장관이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취지를 반복적으로 진술했습니다. 재판부가 객관적인 증거가 있다고 보아 유죄로 판단한 범죄사실에 관하여 일반적인 양형보다 비교적 중형이라고 할 수 있는 징역 2년의 징역형을 선고한 것에는 아마도 진술거부권 행사도 가중적 요소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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