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어느새 결혼한 지 햇수로 10년째가 되어가고 있었다. 지나고 보니 그리 긴 시간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크게 변한 것도, 이렇다 할 만하게 해 놓은 것도 딱히 없어 보였다. 우리가 조금 늙은 것 같긴 했지만, 또 언뜻 보면 크게 달라 보이진 않는 것 같기도 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과장이었나 싶기도 하고. 아마 무탈하고 평탄하게 세월을 보내 별다른 차이를 못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날이 그날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완전히 고요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 2~3년은 열과 성을 다해 목청껏 싸우는 날도 많았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잠잠해지긴 했지만. 이사는 3번을 했고, 고양이도 1마리 키우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일을 그만두고 다시 시작하기를 여러 번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안전제일' 아내는 극도의 불안감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설상가상 직장 내 스트레스가 더해져 공황장애가 생기기도 했다. 크고 작은 잡음과 걱정이 언제나 함께 했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늘 일상 저변에 깔려 있었다. 그럼에도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서 '평탄했다'라고 요약하는 것은 높낮이의 차이가 엄청나지는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행복하지만 버라이어티하지 않은 삶'. 다르게 요약하면 이 정도? 그야말로 소시민의 삶 그 자체. 태어나고 죽어간 셀 수 없이 많고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어디 있는지 찾기도 힘든 조그만 점의 점 같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법한 인생. 그리고 이렇듯 일반적이고도 일반적인 인생 하나와 또 다른 하나의 결합. 이런 둘이서 가끔 존재의 의미를 고찰하고자 하는 대화도 나누어 보았지만 몇 분을 이어가는 것이 전부였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우리 둘이 그럴듯한 결론을 만들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언제나 "둘이 재미있게 살면 되지"라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마음으로 고민을 매듭짓곤 했다.
둘이 재미있게 지낼 수 있는 우리만의 최상의 방법은 여행이었다. 여행은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이었고, 현실과 가장 확실하게 분리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여행지, 특히 해외 여행지에서는 회사업무와 관련된 연락을 받지 않아도 용인되었고, 마음껏 게으르거나 마음껏 흥을 내어도 용인되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그 며칠만큼은 무언가 다른 의미와 분위기로 채워질 수 있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이었는지 알 새도 없이 금세 증발되어 버린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수개월 뒤에 탑승할 항공권을 구매하고, 살고 있는 동네보다 더 많은 맛집 정보를 수집하는 순간들이 밋밋한 일상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꾸밈요소가 되어 주었다.
매 해 결혼기념일 근처에 여행을 떠났다. 길어야 4~5일 밖에 되지 않는 직장인의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둘이 재미있게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멀고 비싼 곳으로 가지도 못했다. 베트남, 대만, 홍콩 등 동남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좋았다. 다른 풍경을 볼 수 있었고,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일하지 않아도 되었고, 사고 싶은 것을 사도 되었고, 체험하고 싶은 것을 체험해도 되었다.
여행 후에도 냉장고에 붙어있는 자석들, 선반 위에 놓여있는 기념품들을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별생각 없이 바라볼 때도 있지만 보통은 씩 한 번 웃게 된다. 집에 놀러 온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이야기할 때는 한층 더 톤이 높아진다. 여기는 어디였고, 저기는 어디였는데, 그곳 풍경이 너무 멋있었고, 음식이 기가 막혔다는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면서 신이 나곤 한다. 전반적으로 평탄해 보이는 결혼 생활이었지만, 여행이 특별한 추억으로 중간중간 자리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로 인해 최근 3년 동안은 이 특별한 추억을 쌓을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의 결혼은 10년 차로 접어들고 있었다. "10년 뒤에 다시 여기로 여행 오자"던 이야기를 실현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였다. 스페인. 우리는 스페인으로 신혼여행을 갔었다.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두 도시에 1주일 정도 머물렀는데,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곳이었다. 모든 것이 좋아 보이던 신혼여행 시점이었기에 더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스페인은 분명 또 가고 싶을 만큼 멋진 여행지였다. 가우디의 건물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좁은 골목, 따스한 햇살, 맛있는 음식, 무엇 하나 행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생에 인상적일 만큼 멋진 시간을 마무리하고 돌아올 즈음 우리는 약속 아닌 약속을 나누었다. "10년 뒤쯤 여기 또 오면 진짜 좋지 않을까?"
생각보다 그 시간은 스리슬쩍 지나갔고, 우리는 결혼하고 9년 만에 동남아를 벗어나 다시 한번 특별하고 특별한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