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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연못 Aug 14. 2023

여행 준비도, 일상생활도 서로 다름

아내는 신혼여행 후 몇 해 지나지 않아 신용카드를 바꿨다. 항공사 마일리지가 쌓이는 카드를 써야겠다고 하더니 며칠 뒤부터는 생활 대부분을 그 카드와 함께 했다. 1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을 두세 번 정도 다녀온 시점이었던 것 같다. 결혼 10주년 여행은 마일리지를 모아서 항공권을 구매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더니 흔들림 없이 정진해 나갔다. 물론 나에게 카드를 바꾸라는 권유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세월에 마일리지를 모아서 가겠냐며 심드렁하게 반응했던 인간은 몇 년이 지나서야 간신히 카드 변경에 성공했다. 결국 마일리지로 항공권을 구매하게 될 것을 왜 그리 말을 듣지 않았는지. 쯧. 


아내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실천에 옮기는 편이었다. 함께 살게 되면서 그 속도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는데, 추운 겨울 이불속에서 여행 프로그램을 보다가 "올해 가을쯤에는 저기나 가볼까?"라고 무심코 내뱉은 말을 허투루 넘기지 않는 식이었다. 몇 분 뒤 아내는 나에게 몇 월 며칠에 어느 항공사가 제일 싼 것 같다며 예약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었다. 사실 난 "그럴까?" 정도의 반응을 기대한 이야기였는데, 이렇게나 신속 정확한 전개라니. 


우리 여행은 보통 그렇게 시작됐다. '올해는 여기 어떨까' 식의 이야기가 나오면 아내가 바로 항공권과 호텔을 알아보았고, 거기에 맞춰 둘의 휴가 일정이 정해졌다. 곧이어 여행 기분을 내기 위한 책도 주문하고, 블로그와 유튜브도 여기저기 다녀보기 시작했다. 사실 이 대부분의 행위는 아내에게 이뤄지는 것이었다. 난 조금 멍한 채로 어버버 거리기 일쑤였고, 그러면 어느새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는 걸?'이라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언제 한 번은 제대로 좇아가지 못한 채 "조금만 천천히 생각해 보면 안 될까?"라며 호흡을 늦췄다가 항공권 구매 시기가 늦어지면서 가격이 올라서 아내의 분노도 함께 올라간 적도 있었고, "당신은 안 가고 싶은 거야? 왜 아무 의견이 없어?"라는 이야기를 기어코 들을 때까지 넋 놓고 있을 때도 있었다. 



언제나 차이가 확연했다. 출발 시점도 달랐고, 속도도 달랐다. 한 명은 빨랐고, 한 명은 느렸다. 계획적이냐 그렇지 않냐 하는 차이는 두 번째 문제였다. 더 답답한 것은 속도의 차이였다. 나도 나름대로 여행지에 대해 알아보고, 준비한다고 했지만 아내 성에는 차지 않았다. 느리기 때문이다. 머리에 떠오른 시점부터 모르는 것과 불안 요소 등을 하나하나 지워나가야 하는데, 남편에게 맡기면 몇 주, 혹은 몇 달을 계속 궁금한 것 투성이로 지내야 할 판이었으니 먼저 뛰쳐나갈 수밖에 없었다. 


디테일도 차이가 났다. 나는 항공권과 호텔이 대략 얼마 정도인지, 한 끼 밥 사 먹는 것이 얼마 정도인지 대충 알고 나면 그렇게 파고들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 정도 정보만으로도 예산을 어느 정도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남은 시간 동안 어떻게 모아야 할지 계획을 세우면 그것으로 여행 준비는 거의 끝이었다. 물론 가고 싶고, 먹고 싶고, 사고 싶은 것들도 알아보긴 하겠지만, 이런 부분들은 현지에서 얼마든지 상황이 바뀔 수 있으니 대략적으로만 알고 싶었다. 하지만 아내는 아니었다. 첫날 점심에 먹으러 갈 곳, 둘째 날 오전에 구경할 곳, 셋째 날 오후에 쇼핑할 목록을 만들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렵고 귀하게 낸 휴가 기간에 우왕좌왕하며 시간을 버리게 될 것이었고, 그런 소동은 자신의 여행에 전혀 끼워 넣고 싶지 않았다. 


우물도 아쉬운 사람이 판다고, 결국 우리의 여행은 아내의 계획에 기반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다행히 남은 한 사람은 호불호가 심하지 않은 편이었다. 박물관도, 골목 구경도, 투어버스도, 지하철도, 레스토랑도, 거리 음식도 모두 괜찮았다. 새로운 것을 접해본다는 것 자체가 좋았기에 그 종류는 어떤 것이 되어도 크게 문제 될 것 없었다. 하지만 그런 점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여보, 여기 어때? 이 식당 괜찮을까? 이런 건 너무 비싸지 않을까?"라는 수많은 질문에 짧고 명료한 "괜찮은데"라는 대답으로 일관했으니 문제로 번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여행 연차가 싸이면서는 조금씩 알아보며 의견을 내는 척 학습해 나가긴 했다. 



결혼 10주년 여행 역시 이전까지의 준비 패턴이 잘 드러나는 양상이었지만, 그래도 다른 때보다는 신중하게 시간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처음 10주년 여행 이야기가 시작된 바르셀로나를 두고도 또 가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 되었는데, 여기는 배제하고 못 가본 다른 유럽 국가를 가는 것이 좋을지, 혹은 바르셀로나와 다른 도시를 일정에 함께 넣는 것이 좋을지 등등 큰 틀을 잡는 것부터 고민이 많았다. 아내는 스페인 외의 유럽은 모두 처음이었고, 어렵게 마음먹고 떠나는 유럽 여행이니만큼 가장 좋은 곳으로 가고 싶었다. 이 귀한 여행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고민에 고민이 거들 될 만큼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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