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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연못 Aug 14. 2023

늘 쉽지 않은 직장인의 여행 준비

'결혼 10주년을 기념해 신혼여행지를 다시 가보자'는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되었지만, 준비 여정은 가볍지 않았다. 우리의 10주년은 우리밖에 모르는 일이니 우리 스스로 애쓰지 않는 한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멋진 축하와 기념의 분위기가 준비되어 있었다는 듯 타이밍 맞춰 피어오르는 일이 아니었다. 직장에도 오랜만에 긴 휴가를 내겠다며 허락을 받아야 했고, 여행 경비도 스스로 알뜰살뜰 모아야 했다. 긴 휴가라고 해봤자 1주일 남짓이고, 여행 경비도 둘이서 몇 백만 원이 최선이지만 이것도 우리에게는 험한 등정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의미가 부여된 여행이다 보니 선택 하나하나에 모두 신중해졌다. 도시, 호텔, 식당, 관광 등 무엇 하나 대충 끼워 넣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래도 자주 못 가는 여행인데, 처음인 곳을 가보는 게 낫지 않나?"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도 초반 방향을 흔드는 요인이었다. 결혼 10주년인 것도 알겠고, 신혼여행지가 의미 있는 것도 알겠는데, 그래도 여행은 여행이니까 다른 가보고 싶었던 곳을 가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의견이었다. 일리 있었다. 우리는 늘 가보고 싶은 곳에 비해 가본 곳이 적은 직장인이었으니까. 1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을 가는 것도 부러움을 살 만한 일이었다. 그 여행이 비록 3박 4일이라 할지라도. 자유롭게 시간을 내서 하고 싶은 것을 원하는 만큼 하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으니 1주일이라는 휴가는 귀하디 귀한 것이었다. 이 소중한 시간을 가보았던 곳에 사용할지, 색다른 곳에 사용할지는 제법 고민이 되는 포인트였다. 


유럽 곳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파리, 로마, 런던, 체르마트 등 주요 도시에 이어 프랑스 남부 시골 마을, 이탈리아 해변 마을들까지. 일단 유럽이기는 했다. 그래도 유럽이 낭만적일 것 같았다. 미국, 캐나다, 남미 등도 모두 흥미로웠지만 이번 여행은 유럽이 맞을 것 같았다. 사랑스럽고 감성적인 분위기는 유럽이 채워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문제는 늘 그렇듯 시간이었다. 우리가 어렵게 만들어낸 이 작고 소중한 찬스를 어떻게 쓰면 후회하지 않을지 예측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사실 이 예측은 보통 무의미하기 마련이다. 후보지를 다 경험해 보고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것이 베스트인지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어찌어찌 선택하게 된 여행지는 보통 취향에 맞을법한 곳을 고르는 것이기에 특별히 재앙 같은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 한 괜찮은 추억으로 남게 된다. 물론 '괜찮은 추억' 정도가 아니라 '최고의 추억'이 되고 싶은 마음이기에 고민이 되는 것이겠지만. 이런저런 사유들을 동원하며 도시와 일정에 대한 결정장애를 잠재우고 싶었지만, 결국 짧은 휴가 일정을 탓하면서 결정은 최대한 끝까지 미루게 되는 보통의 수순을 밟고 있었다. 


그렇다고 고민이 마냥 길어질 수도 없었다. 우리는 몇 년간 모은 마일리지로 항공권을 구매할 계획이었고, 마일리지 항공권은 출발 날짜까지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어야만 원하는 도시와 일정을 맞출 수 있었다. 보통 1년 전, 6개월 전처럼 머나먼 미래의 좌석들도 매진되고는 했다. 세상에. 1달 뒤에도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1년 뒤 일정이라니. 무슨 여행을 이렇게 일찍부터 계획해야 하는 건가 싶었지만, 이런 투정은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마음껏 돈을 써서 원하는 대로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시스템이 제공하는 가이드에 순응하여 우리의 일정을 맞춰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결국 어렵게 어렵게 바르셀로나와 파리가 낙첨되었다. 처음 얘기한 대로 신혼여행지에서 추억을 떠올려본다는 의미가 한 축을 이루었고, 새로운 곳도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나머지 한 축을 이루었다. 스페인 중에서는 바르셀로나가 가장 끌렸고, 새로운 곳 중에서는 파리가 근소한 차이로 조금 더 끌렸다. 로마나 베네치아 같은 곳도 낭만적일 것 같았고, 체르마트나 인터라켄 같은 곳도 평온할 것 같았지만, 파리를 먼저 한 번 가보고 싶었다. 파리야말로 낭만의 대명사인 데다 '유럽 여행'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가장 진하게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항공권을 예매하면서 바르셀로나보다 파리가 오히려 살짝 더 인기가 없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어쨌거나 약 1년 뒤에 떠날 우리의 기념비적인 여행에 대한 발걸음을 떼었다는 것으로도 감회가 남달랐다. 항공권 발권이 완료되었으니 가열차게 정보들을 모아보며 '여행 간다!'라는 설렘으로 일상을 버티는 즐거운 순간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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