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보다 좋을 순 없다.
집에서는 최대한 게으르게 지내는 게 습관이었던 내가 결혼을 하자 집안일이 종종 싸움의 화제로 올라왔다. 남편은 나보다 정리정돈에 능했기에 집안일을 소홀히 하는 날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날은 화장실 수채 구멍의 머리카락을 치우란 말을 들었고, 어떤 날은 그릇 정리 좀 하라는 푸념 섞인 말을 듣기도 했다. 그나마 가르치는 걸 좋아하는 남편의 성향 덕분에 잊을만하면 계속 얘길 해주니 집안일을 못하는 나라도 아주 조금은 익숙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때까지도 집안일은 나의 시간을 일부러 써서 해야만 하는 노동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곧 아이가 생겼고 집안일은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아이가 태어나자 식구 하나 늘었을 뿐인데 빨래도 설거지도 어마어마하게 쌓였다. '매일 이렇게 많은 집안일을 해야 한다니 절망스럽네.'라고 자주 생각했었지만 아이 때문에 멈출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집안일을 하다가 깜짝 놀랄만한 모습을 발견했다. 아이가 물티슈를 뽑아 바닥을 열심히 닦고 있는 게 아닌가. 마치 주변 청소라도 하듯 바닥부터 식탁까지 구석구석 닦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밀대를 밀고 있으면 아이도 나를 따라 밀대를 밀고 싶어 했다. 아이는 집안일에 관심이 참 많았다.
몬테소리 교육을 들여다보면 일상 영역의 집안일 함께 하는 활동을 중요하게 다룬다. 아이가 자신이 먹은 음식을 손질하고, 그릇을 설거지하며, 흘린 물이 있으면 수건을 가져와 스스로 닦는다. 그밖에도 유리창 함께 닦기, 입은 옷 빨래하는 등의 활동도 추천한다. 아이들에게 힘든 노동을 시킨다고 의아할 수 있지만 의외로 집안일을 하는 과정에서 자기 조절 능력을 터득할 수 있다고 한다. 물병에 물을 따르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어른들은 너무 쉽게 물병에 있는 물을 따라 마실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겐 물병에서 얼마나 물이 쏟아질지도 미지수고 물을 따르는데 얼마큼 힘이 필요한지도 가늠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컵에 물을 가득 채우다 넘친 상황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스스로 자신이 마실 물을 컵에 따라 마시는 아이들은 조절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를 얻는다. 또 집안일을 하면서 자신이 맡은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을 때 유능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으며, 책임감까지 배울 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더 이상은 집안일을 쓸모없거나 시간 낭비하는 일로 생각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아이와 함께 일어나자마자 이불을 개고 샐러드를 요리해먹거나 청소를 하는 간단한 활동이 나의 생활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살아오면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일이 아이를 키움으로써 바뀔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