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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기 Dec 23. 2020

퇴사 후 편의점, 둘째는 고양이. 적자를 내며 삽니다.

주 4일 36시간 근무의 비밀, 회사 밖에서 프리하게 사는 이유



아이는 하나 둘째는 고양이,
회사 밖에서 프리하게 사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Ep. 03




둘째를 낳는 대신 고양이를 키우자는 결정을 내린 것은 2018년의 겨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때였다. 남편과 아이의 동물 사랑은 유난했다. 길거리의 고양이만 봐도 한 시간씩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동물농장을 가기 위해 강원도로 수시로 떠났다. 그런 둘을 보며 나는 늘 흔들렸고, 그즈음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한 선생님의 한 마디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나처럼 외동딸을 키우고 있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왜 더 일찍 허락해주지 않았을까 후회가 돼요.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까. 아이가 너무 좋아하니까.”


스무 살이 넘은 딸을 보면서도 가슴이 메어지는 엄마의 마음이 오롯이 전해졌다. 하나이기에, 혼자이기에. 외동이라 경험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허전함도 마치 내 탓인 양 미안해지는 것이 어미의 마음 아니던가. 나는 외동을 결핍과 외로움으로 연결하는 사회의 편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내 아이의 충만함은 채워주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원 없이 사랑할 수 있는 일상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래! 너희가 그렇게 원한다면 내가 허락해 줄게. 고양이를 키워도 좋아.” 대단한 선언문을 발표하듯 말했지만 둘의 반응은 놀라웠다. 내가 허락만 해주면 당장이라도 고양이를 데려올 줄 알았던 그는 “지금 당장은 좀 그렇고…”라며 발을 뺐다.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고양이? 지금 우리 집에도 고양이 있는데? 하윤이 고양이~ 내가 고양인데?”


고양이 놀이에 심취한 예비 초등학생의 대답은 차치하더라도 그의 반응은 충격적이었다. 고양이를 키울 기회를 미루다니, 언제 다시 내려올지 모를 나의 제안을 유예하다니! 나는 그의 심중을 살피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던졌고, 답은 간단했다. 그의 발목을 붙잡은 건 돈이었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편의점은 적자에 시달렸다. 그해 겨울 3개월은 물론 그다음 해 겨울에도, 우리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월급을 내가 받은 강사료로 줘야 했다.








편의점이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이유,

너무 앞서가는 그의 노동시간


편의점의 적자는 근거리에 생긴 경쟁점으로 촉발되었지만 우리가 선택한 결과이기도 했다. 말이 좋아 자영업자이지 실제로 ‘자영(自營)’할 수 있는 부분이 극히 제한적인 프랜차이즈 편의점 사장은 시간제 노동자와 다르지 않다. 매달 나오는 정산금에서 월세와 전기세, 이런저런 공과금과 알바비를 빼고 나면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이 남는다. 내가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오기 위해서 줄일 수 있는 것은 인건비뿐이고, 그래서 가족 경영은 선택 아닌 필수가 된다.


사장이 장시간 근무를 하며 아르바이트생을 최소한으로 쓰거나 부부가 12시간씩 맞교대를 해야 그럭저럭 평균적인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곳에서 우리 부부가 선택한 노동 시간은 애초에 적자를 내고야 말겠다는 선언과 같았다. 우리가 회사를 나와 편의점을 선택한 이유는 더 많은 ‘돈’이 아닌 ‘시간’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말도 안 되는 가족 경제를 꾸려 나갔다. 경력단절로 소득이 전무했던 내가 돈을 버는 만큼 아르바이트생을 늘리는 제로 전략. 내가 버는 돈이 생길 때마다 네가 버는 돈을 깎아내는 도로 아미타불 경제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주 4일 36시간 근무제가 선사한 놀라운 일상,

포기하고 싶지 않은 오늘


그가 12시간, 내가 6시간씩 근무를 했던 개업 첫해를 지나 편의점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무렵부터 나는 나의 일을 찾기 시작했고, 그렇게 첫 번째 책을 출간했다. 책 한 권을 썼다 한들 돈이 들어올 일은 거의 없는 현실에서 그래도 가뭄에 콩 나듯 용돈벌이 수준의 소득을 올릴 수 있었고, 그렇게 들어오는 돈이 생길 때마다 그의 근무시간을 줄였다. 1년, 또 1년이 지나며 내 이름을 달고 나온 책은 세 권이 되었고 나를 불러주는 도서관도 늘어갔다. 그의 출근 일수는 주 5일에서 4일이 되었고, 주당 36시간 근무제를 만들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전 8시에 출근해서 오후 5시에 퇴근하는 일상. 앞서가도 너무 앞서가는 유러피안 근무 체제가 필요했던 이유는 단 하나, 지나고 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이와의 시간을 누리기 위해서다. 우리는 아이가 우리를 원할 때, 친구보다 부모가 우선일 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선택했다. 매일 저녁 가족이 함께 하는 일상의 즐거움을, 일주일에 한 번은 아빠와 함께 하는 둘만의 데이트를.  









야근은 물론 주말 특근, 주말 부부까지 해야 했던 회사를 버리고 그는 아이와의 시간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아빠만 보면 낯이 설어 더욱더 격렬하게 엄마 품에 붙어 울던 아이는 이제 없다. 높은 연봉이 사라진 자리에 귓속에 새겨 두고 싶은 아이의 웃음소리가 채워졌다. 아이와 그는 갈수록 애틋해졌으며 둘만의 추억을 더 빈번하게 속삭였다.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이가 커갈수록 둘째를 독촉하는 주변의 말이 더해졌지만 그는 말했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곁에서 보고 싶다고.


“아이를 더 낳으면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잖아. 당연히 돈이 더 많이 들고, 그럼 나는 다시 근무시간을 늘려야겠지. 요 며칠 출근을 못한 아르바이트생 때문에 내가 일찍 퇴근을 못하고 오늘 하윤이를 봤잖아? 겨우 며칠이었을 뿐인 데도 다른 거야. 그 며칠 사이에 또 자랐더라고. 또 다른 느낌이었어.


그런 하윤이를 보니까 너무 신기하고 대견하면서 순간 울컥 속이 상하더라. 그 며칠을 못 본 게 마냥 아쉽고, 하윤이가 정말 어렸을 때, 하루하루 더 많이 변해갈 때, 그 시간을 나는 보지 못 했다는 거, 곁에 있지 못했다는 거. 이제 와 어쩔 수 없지만 그게 그렇게 속상하더라고.


나는 하윤이랑 이렇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게 너무 좋아. 그걸 포기하고 싶지 않아.”


그는 아이와의 시간을 누리며 행복했지만 아이와의 시간을 누리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또 감당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주입하는 ‘가장’의 역할이란 어찌나 강력한지. 우리는 ‘원 팀’이라고, ‘네 돈, 내 돈’이 있을 수는 없다고, 우리는 보육에 필요한 돈과 시간을 함께 만들어 가는 거라 나는 매번 말했지만 내가 번 돈으로 아르바이트생의 월급을 줘야 하는 달마다 그는 조용히 마음을 태웠다. 10년 넘게 태우지 않던 담배에 다시 불을 붙였다.







둘째 대신 고양이, 회사 밖에서 불안하지만 충만하게


고양이를 데리고 올 수 있었던 건 그로부터 2년이 지난 뒤, 우리 생활을 힘들게 했던 편의점의 계약기간이 한 달 남은 시점이었다. 한 달 뒤면 우리는 훨씬 나은 조건의 계약을 할 수 있었고, 약간의 목돈도 들어올 예정이었다. 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만성 적자에 시달리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을 때 비로소 그는 고양이를 입양했다. 우리는 합사에 실패해 한 번 파양된 적이 있는 크림이와 가족이 되었다.


둘째 대신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는 말했다. 동물한테 쓸 돈이 있으면 아이를 키우라고, 요즘 젊은 사람들은 왜 자식보다 동물을 키우려 드는지 모르겠다고. 동물에게 나가는 돈이 적지는 않지만 아이를 키우는 데 드는 돈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걸 그들은 모르는 걸까, 모르는 척하는 걸까? 동물 아닌 자식을 키우려면 일단 최소 10년은 그 아이를 돌볼 절대적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은 대체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우려면 돈과 시간이 필요한 데, 돈을 벌기 위해서는 직장에 내 시간을 몽땅 저당 잡혀야 한다. 내 시간이 회사에 종속되면 나는 내 아이를 돌볼 수 없게 되고, 그렇게 내 아이를 키우기 위해 회사를 나오면 나는 다시 돈이 없어진다. 이 환장할 놈의 뫼비우스는 사라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돈과 시간을 균형 있게 갖고 싶었고 그래서 회사 밖에서 프리하게 산다. 우리의 프리는 아슬아슬한 외줄 위에 존재하고 그래서 우리의 선택은 외동이다.


아이는 하나 둘째는 고양이. 조금 다른 넷으로 우리는 산다. 적자를 기꺼이 작당하는 일상을, 우리 가족만의 충만한 하루를.








                                                                                                                                                                                                                                                                                                                                        


고양이가 가르쳐 준 일상의 진실

둘 다 가질 수 없다면
둘 사이를 걸어보리라.
담벼락의 좁은 틈새도
끄떡없는 고양이처럼.


아이는 하나 둘째는 고양이, 회사 밖에서 프리하게 사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는 매주 수요일, 주 1회 연재됩니다. 지난 글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해 주세요 :)

Ep 01. 족욕기 보고 울어봤니? 고양이를 키우면 생기는 일
Ep 02. 바닥난 통장과 코로나 블루,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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