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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기 Jan 06. 2021

"엄마가 일을 못하는건 나 때문이야?" 아이가 울었다.

한 달에 82만 원을 기꺼이 지출한 이유


아이는 하나 둘째는 고양이
회사 밖에서 프리하게 사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Ep 05.



등교 없는 온라인 학습이 이어지던 날이었다. 우리는 언제나처럼 EBS 방송을 시청한 뒤 학교에서 나눠준 학습 꾸러미를 펼쳤다. 초등학교 2학년 가을 교과서는 우리 동네 지도를 그려 보며 다양한 직업을 알아보는 중이었다. 오늘의 숙제는 ‘내 주변의 직업인 인터뷰하기’. 아이는 바로 옆에 있는 엄마를 인터뷰하겠다 결정하고 학습장에 적힌 인사말을 읽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바쁘실 텐데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몇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김슬기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시나요? 이렇게 읽으면 되는 거지? 여기 써 있는 대로?"

"응응. 그리고 거기 빈칸에 엄마 대답을 적으면 돼. 아니에요, 천만에요. 인터뷰를 요청해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저는 글을 쓰는 일을 합니다."


"네, 김슬기님은 작가이시군요.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요?"

"책을 많이 읽고 글을 꾸준히 쓰는 게 중요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걸 아주 좋아했어요.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일기를 썼고요. 6년간 매일 썼던 일기장이 지금도 집에 있답니다."



나는 괜히 들떠 조잘조잘 말을 늘어놓았고, 아이는 받아 적기가 힘드니 너무 길게 이야기하지 말라며 핀잔을 줬다. ‘일을 하며 가장 뿌듯함을 느끼실 때는 언제인가요?’ 같은 몇 개의 질문을 지나 아이는 물었다.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나는 대답했다. "글을 쓸 시간이 부족하다는 게 제일 어려운 점이죠. 요즘은 일할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아요.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아서요.” 







주워 담을 수 없는 엄마의 실수, 아이가 울면서 물었다.


상황극에 너무 몰입을 했던 걸까,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을 뱉어 버렸다. 말을 하자마자 사태를 파악한 내가 변명의 말을 덧붙이기도 전에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가 일을 못 하는 건 나 때문이야? 내가 맨날 집에 있어서?”


“아니이!!! 절대 아니지! 하윤이 때문이 아니라 코로나 때문이지, 코로나! 코로나 때문에 학교를 못 가는 거잖아. 코로나 때문에 엄마도 카페에 못 가고~ 엄마는 하윤이 때문에 일을 못 하는 게 아니라 하윤이 때문에 일을 할 수 있는 건데? 엄마가 쓴 책은 다 하윤이랑 엄마 이야기잖아. 하윤이가 엄마를 작가로 만들어줬는 걸. 엄마는 하윤이 때문에 작가가 될 수 있었어. 하윤이도 알지?”


나는 황급히 아이가 좋아하는 우리만의 놀이 - 엄마가 쓴 책의 제목 속에 숨어 있는 하윤이 찾기를 하며 아이의 기분을 달랬지만 이미 입 밖으로 나온 말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나 때문에 엄마가 일을 할 수 없다니, 내가 엄마의 일을 어렵게 하는 이유가 된다니… 이제 겨우 9살 아이의 마음에 나는 어떤 생각을 던져 넣은 것인가.







엄마가 일을 할 수 없는 이유, 너 때문이 아니야.


출산 후 일을 할 수 없었던 건 태어난 아이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일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아이는 응당 엄마가 끼고 키워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 때문이었으며, 출산 휴가 3일을 보낸 뒤에는 아이를 낳기 전이나 후나 조금도 달라질 게 없는 아빠의 일과 때문이었다. 그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그가 아빠로 존재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는 늘 야근과 주말 특근에 시달렸다. 


그가 육아에 동참할 시간을 봉쇄당하고 있는 사이, 나는 고립됐다. 아이와 나는 13평의 신축빌라에서 둘만의 시간이자 영겁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을 한참 지나온 뒤에야 나는 그에게 물었다. “우리가 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당신이 일찍 퇴근을 하고 돌아와 아이를 함께 돌볼 수 있었다면, 육아 휴직을 당연히 쓸 수 있는 회사에 다녔다면, 나만 혼자 180도 뒤바뀐 삶을 살아야 하지 않았더라면… 그럼 많은 게 다르지 않았을까? 그럼 우리는 어땠을까?”


“그럼 <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가 이 세상에 나올 수도 없었겠지. 당신이 지금처럼 작가로 활동을 하지 않았을지도?” 그는 웃으며 말했고 나도 따라 웃었지만 동시에 생각했다.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다면, 육아와 돌봄의 책임이 오롯이 엄마의 몫으로 주어지지 않는 사회에서 살 수 있다면, ‘작가’라는 타이틀 따위는 없어도 그만이라고, 육아로 무너진 여자의 회복기 따위는 시원하게 찢어 버릴 수 있다고. 







여성 상위 시대라는 지금도 여전한 M자 곡선, 코로나 중에 매달 82만 4640원을 지출한 이유


‘여성 상위 시대에 페미니즘이 웬 말이냐’는 말이 나오는 2020년에도 우리나라 여성의 연령대별 고용률 곡선은 M자를 그린다. 30~40대 여성은 결혼과 임신,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었다가 40대 후반부터 50대 초반에 재취업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여성이 다시 찾을 수 있는 일자리의 대부분은 돌봄 중심의 저임금 비정규직이고, 나 하나가 아무리 날고뛴다 한들 이 사회의 구조 밖에서 존재할 수는 없다. 


출산과 육아는 내가 속한 세상의 장애물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고, 우리는 오늘도 그 앞에서 애를 쓴다. 그 벽의 높이에 짓눌려 주저앉지 않기 위해서, 까치발만큼이라도 그 벽 너머를 보기 위해서. 코로나19로 학교와 사회, 공적 공간이 담당했던 모든 역할이 멈췄을 때에도 우리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매달 82만 4640원을 돌봄 나눔을 위해 지출했다. 


뚝 떨어진 체감경기에 있던 아르바이트생도 줄이던 시기에 무려 주 24시간 아르바이트생을 더 고용하는 막무가내 전략. 학교에 가지 않고 온종일 집에 있는 아이의 돌봄을 함께 하기 위하여, 엄마의 일을 지속하기 위하여, 우리는 기꺼이 지불한 것이다. 돈만 내면 돌봄과 일을 양립할 수 있는 우리의 일터에 감사하면서 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보여준 현실, 우리 사회에서 취약한 곳은 어디인가


아이의 등교 중단으로 단기 고용한 아르바이트생이 그를 대신해 편의점을 지켜주는 동안 그는 아이를 보았다. 그 덕에 나는 신간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2020년 5월, 코로나의 한복판에서도 세 번째 책을 출간했다. 우리는 매달 많은 돈을 써야 했고, 그건 더하기와 빼기로 계산되는 경제학의 측면에서 지극히 비효율적인 선택이었지만 그래서 우리는 함께 울고 웃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하루 3시간 돌봄이 가능한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기 시작했을 때, 우울증이 오기 직전이었던 그의 돌봄 시간을 다시 확 낮춰주었을 때. 비로소 그는 빛나게 웃으며 말했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나도 책 한 권 쓸 뻔했잖아. 아이가 잠들면 자동차로 숨었다!!”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바이러스는 여전히 그 기세가 등등하고, 우리의 재난은 계속된다. 오늘도 많은 여성은 일터를 잃거나 잃어야 할 상황으로 내몰린다. 멈춰 버린 사회 시스템의 공백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엄마’의 몫으로 돌아온다. 재난은 우리 사회의 취약한 곳이 어디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휴교와 자가격리로 인한 여성의 가사와 돌봄 노동의 급증, 가정폭력의 증가, 보건사회 분야 노동자의 70퍼센트에 달하는 여성의 감염 위험 노출, 취약한 일자리에 집중된 저소득층 여성의 해고와 강제 휴직… “엄마가 일을 못 하는 건 나 때문이야? 내가 맨날 집에 있어서?” 내 얼굴을 쳐다보던 아이의 눈빛과 거기 고인 눈물, 그 눈물과 함께 터져 나온 말을 잊을 수 없는 이유는 아이의 말이 이 모든 상황을 함께 불러오기 때문이다. 






“딸인 동시에 엄마인 나는 수많은 딸이 걸어왔던 여자의 역사 위에 존재한다. 그 길은 여전히 척박하고 험난하다.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들어간 아이가 자라,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고, 우리 곁을 떠나 독립을 하는 그날까지…… 내 딸이 겪게 될 많은 일 앞에서 나는 자주 겁이 난다. 그래서 이 책이 내 딸을 향한 용기이자, 모든 딸을 위한 응원이 되기를 바란다.”
 
- 김슬기, <딸에게 들려주는 여자 이야기> 프롤로그 중에서 


코로나19의 한복판에서 완성한 책 속에 담은 마음을 아이는 알아줄까? 9살의 어느 날 엄마가 생각 없이 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얼마나 미안했는지… 내가 너에게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렇게 서로를 마주 볼 수 있다면, 아이의 손을 잡고 말하고 싶다. 내가 속한 세상의 이면을 볼 수 있는 눈을 네가 선사해주었다고, 네가 그 현실에 주저앉지 않고 맞서 볼 용기를 내게 주었다고. 


아이에게 받은 응원과 희망을 다시 아이에게 전할 수 있는 날을 고대하며.. 오늘도 집에 있는 아이 옆에서 나는 자투리 글을 쓴다. "하윤아, 네가 언제 이 글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너는 엄마의 영원한 뮤즈, 마르지 않는 글감의 원천이야." 











아이가 가르쳐 준 일상의 진실

내 앞의 거대한 벽에 맞서는 힘은
내 옆의 자그마한 온기에서 나온다. 

아이의 손은 언제나 따뜻하고
오늘도 나는 그 온기에 기대어 산다. 

서로가 서로의 작은 온기가 될 수 있기를,
그 온기가 이 겨울의 우리를 지켜주기를.




아이는 하나 둘째는 고양이, 회사 밖에서 프리하게 사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는 매주 수요일, 주 1회 연재됩니다. 지난 글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해 주세요 :)

Ep 01. 족욕기 보고 울어봤니? 고양이를 키우면 생기는
Ep 02. 바닥난 통장과 코로나 블루,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Ep 03. 퇴사 후 편의점, 둘째는 고양이. 적자를 내며 삽니다.
Ep 04. 자다 깬 아이가 엄마를 찾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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