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도대체 왜 헤어진 거야?"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돈도 많고, 그녀에게 헌신적이었다. 이별 사유가 궁금했다. 그녀를 더욱 닦달해 이유를 들었다.
"그게... 음... 그 남자.. 두 달에 한 번도 힘들었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두 달에 한 번이라니. 너무 심했다.
오랜만에 만난 L은 예전처럼 무척 털털했다. 백화점 1층에서 만나기로 했다. 화려한 잡화코너 사이에 서 있는데, 멀리서 누가 걸걸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녀였다. 사람은 잘 안 바뀌구나. 여전히 편한 남동생 같았다.
그녀의 아재미는 이제 시작이었다. 백화점 맞은편 상가를 누비더니, 데려간 곳은 문어와 삼겹살을 파는 곳이었다. 테이블은 거뭇한 아저씨들로 가득했다. 이곳에서 다 먹고 날름 먼저 계산한 그녀는 이쑤시개로 이빨 사이사이의 문어를 꺼냈다. 나를 남자로 전혀 생각하지 않는 탓도 있겠지만, 이 정도면 털털함으론 대한민국 제일이다.
그런 그녀는 문어와 삼겹살을 앞에 두고 지난 연애 얘기를 진솔하게 꺼냈다. 나이 차가 꽤 났던 엑스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30대 초반에 사업을 성공시켜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다. 외제 스포츠카를 몰았다. L을 데리고 해외여행을 그렇게 많이 다녀왔단다. 더군다나, 그녀 하나만 바라본다고 했다. 다른 여자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매 주말마다 L을 즐겁게 해줄 데이트 계획에 골몰한다고 했다.
하지만 2년 넘게 이어온 관계는 파탄 났다. 전 남자친구는 사귄 지 6개월부터 이상해졌다고 한다. 많은 업무로 피곤함을 호소하며, 사랑 나누기를 피해왔단다. 어찌나 피하던지 두 달에 한 번도 겨우 했다고 한다.
30대라는 세월의 풍파가 매섭다. L은 엑스가 너무 심각하자, 호르몬 검사까지 함께 했다고 한다. 그 결과 신체나이 50대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받았다고 한다.
김정운 교수의 책을 읽다가 박장대소한 적이 있다. 목욕탕 탈의실의 남자 행동을 기준으로, 남자를 둘로 나눴다. 샤워를 마치고 팬티를 가장 먼저 입는 남자와 팬티를 가장 나중에 입는 남자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에너지의 차이가 팬티를 언제 입을 건지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진 것이다.
나는 목욕탕에서 이 사람 저 사람을 힐끗힐끗 눈치를 보며, 가장 빨리 팬티를 입어버리는 남자를 또 둘로 나누고 싶다. 바로 절치부심파와 금붕어파다. 절치부심하며 팬티를 나중에 입기 위해 노력하는 남자와, 목욕탕에서의 수난을 금붕어처럼 금방 까먹어버리는 남자다.
내 친구 A는 절치부심파다. 그 녀석이 여성성 폭발하는 여자를 만날 때였다. 어느 날 급하게 전화를 걸어와 받았다.
"나 진짜! 진짜 진짜! 하체 운동 열심히 한다. 하체 운동의 중요성을 알았어."
그리곤 캐틀벨을 주문했단다. 무거운 케틀벨을 들고 스쾃에 매진했다. 어느덧 그는 스쾃 전도사가 되었다. 남자와 그 남자의 여자친구를 위한 최고의 운동이란다. A는 여자친구가 없을 때도, 회사일이 바빠 운동할 겨를이 없을 때도, 항상 마음속에 하. 체. 운. 동.에 대한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 그런 강박증 덕에 좋은 체력과 힘을 유지하고 있다. A는 말한다. 다음 여자친구를 위해서 꾸준히 힘을 비축해둘 거라고.
문제는 금붕어파다. 오랜만에 만난 L의 엑스가 그렇다. 여동생 L은 엑스를 1년이나 기다려줬다고 한다. 구 남자친구의 원기회복을 위해 '운동 열심히 하기', '편의점 도시락 먹지 않기' 등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함께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엑스는 노력하지 않았다. 매 순간 금붕어처럼 지침을 잊어버린 것이다. 1년 동안 달라진 것이 없었다. 결국, 그토록 사랑하던 인연의 끈도 끊어져 버렸다.
나의 남자 구별법을 친구 J에게 말한 적이 있다. J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내가 속하는 곳이 없는데? 하나 더 추가해. 팬티 안입고 그냥 나오는 남자."
재수없다. 목욕탕에서 팬티를 안 입고 나오거나 가장 나중에 입는 남자가 얼마나 될까. 그들은 선택받은 소수다. 그렇기에 모든 남자가 선망하며 부러워하지 않는가. 남자 대다수가 팬티를 가장 먼저 입는다. 노력해야 한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정신적으로 사랑을 퍼주기만 해서 뭐 하는가.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것도 사랑의 너무도 중요한 일부분이다. 금붕어가 됐다간 사랑하는 여인을 속절없이 떠나보낼 수밖에 없다. 세월을 탓하며, 비루해 가는 육신을 탓하며,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야근을 탓하며, 편의점 도시락과 패스트푸드의 간편함을 찬양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