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서 직장을 그만둔다

적게 벌고 지위가 낮아도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을 선택한다.

콘텐츠 회사 기획팀에 근무할 때 있었던 일이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디자이너와 기획자, 작가는 출근한 후에는 점심시간을 빼면 사무실 밖으로 나갈 일이 거의 없다. 병원 진료나 은행에 볼 일이 있어도 점심시간 안에 다녀와야 한다. 병원이나 은행에 사람이 많아서 오래 기다려야 할 때는 동료에게 연락해서 늦는다고 얘기해야 한다. 근무시간에 아무런 말도 없이 자리를 비우면 안 되기 때문이다.

마케팅팀, 제휴팀 등 외부 업무가 많은 부서 직원들은 출근해서 회의하고 각자 업무가 할당되면 거래처 담당자와 약속을 정하고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외근을 하는 부서 직원들은 사무실을 벗어나면 비교적 자유롭게 시간을 사용한다. 거래처 여러 곳을 다녀야 하는 날은 하루 일과가 빠듯할 때도 있지만 여유가 있는 날은 일과시간에 개인적인 일을 할 때도 있다.

내근 직원과 비교해서 외근 직원은 은행 일이나 병원 진료를 보는 것도 자유롭다. 심지어 근무 시간에 이사 갈 집을 보러 다니는 직원도 있었다. 예약한 시간에 맞춰서 가야 하는 치과치료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았다. 주로 외근을 하는 부서의 직원들도 실적과 성과에 대한 고충은 있다. 하지만 사무실을 벗어나면 자기 시간을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외근 직원이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은 내근 직원이 충분히 부러워할만하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주인공이 했던 “배가 고파서 고향으로 내려왔다.”라는 대사에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야근과 회식으로 늦은 밤에 귀가하는 날이 수두룩하고 일에 쫓기며 주말에도 쉬지 못한다.


살기 위해서 직장을 그만둔다


직장인으로 살아갈 날은 점점 짧아지고 정년까지 회사를 다니더라도 정년 이후에 경제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젊을 때 건강을 챙기며 자기 일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안정과 성공의 기준이 사회적인 통념과 일치했다면 지금은 개인의 기준에 따라 성공을 다르게 정의한다.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지위까지 올라가는 성공에서 조금 적게 벌고 사회적 지위가 낮아도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시간자결권이 수명을 늘린다


_brunch_alone_cover.jpg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과 예측가능성이 없다는 느낌이 사회심리적인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 로버트 새폴스키(스탠퍼드대학 교수)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는 데서 얻는 가치는 매우 크다.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일을 하면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이미 50여 년 전에 증명되었다.


1967년에 영국 런던에 공공기관이 모인 거리 화이트홀(Whitehall)에서 공무원을 대상으로 장기간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 연구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장기적으로 그 사람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진행되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개인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최하위직 공무원은 최상위직 공무원과 비교해서 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할 확률이 3배나 더 높았다. 고위직이 건강을 관리할 여유가 있어서 비만이나 흡연 비율이 하위직보다 낮았지만 이런 변수를 고려하더라도 최하위직 공무원이 사망할 확률은 여전히 2.1배나 차이가 났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로버트 새폴스키 교수는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과 예측가능성이 없다는 느낌이 사회심리적인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라고 설명했다.

강석기 기자, [사장님과 말단사원, 누가 더 스트레스 받나?], 〈과학동아〉, 2011년 9월호


화이트홀 연구 결과, 고위직 공무원과 비교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하위직 공무원이 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할 확률이 높게 나타났다. 하위직으로 갈수록 자신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위에서 시키는 일을 해야 하고 출퇴근 시간, 화장실 가는 것까지 상사의 눈치를 보면서 일하면 자신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인다.

미국 양로원에서도 비슷한 실험을 했다. 양로원 노인들에게 사소한 일이라도 스스로 결정하게 해서 건강이 좋아졌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이 연구결과는 자기가 할 일과 시간을 결정하는 게 삶의 질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업무 스트레스와 불규칙적인 식사로 건강을 해친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퇴사했어요.”라고 말한다.

요즘은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가 ‘자기 생활을 찾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 회사를 다니면서 누리는 경제적인 안정보다 회사를 그만두고 정신적으로 안정된 인생을 살겠다는 의지가 더 크다.


정리해고 명단에 자기 이름이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실직 후의 삶에 대해서 걱정한다. 당연하다. 당장 내일부터 일할 곳이 없어진다면 누구나 막막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요즘은 살기 위해서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도 적지 않다.


퇴사를 권하고 퇴사를 축하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무런 계획 없이 직장을 그만두는 걸 권하지는 않는다. 내가 몇 군데 직장을 그만두었던 때를 돌이켜보면, 직장을 그만둔 이유가 있었고 퇴사 후에 이렇게 하겠다는 계획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니었던 때도 있었고 퇴사 후에 이렇게 해야지, 라는 계획을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차근차근 실천하지도 못했다.


직장을 그만두는 분위기가 과거와 많이 달라졌어도 퇴사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물론,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는 것도 중요하다. 퇴사와 시간자결권을 단순하게 저울질하기보다 5년, 10년 후에 돌이켜봤을 때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하기 바란다.



출처

정경수 지음, 《혼자의 기술》, (큰그림, 2018), 37~40쪽

참고문헌

강석기 기자, [사장님과 말단사원, 누가 더 스트레스 받나?], 〈과학동아〉, 2011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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