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누군가를 지켜본다는 건 그 사람에게 '희망'이라는 불씨가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는 '의심'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지켜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게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감사기 될 수도 관찰이 될 수도 있다.
자녀에 이상행동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부모는 감시보다는 관찰에 가까운 행동을 한다.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른 것은 무엇일까.
제 나이에 맞는 행동을 하지 않는 이유에는 무엇이 있을까.
진짜 늦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아니면, 받아들이기 어려울 만큼 문제가 있게 된 것인가.
이 과정에서 부모는 다툼이 자주 벌어지게 되고 그 다툼은 곧 또 다른 자녀에게 화풀이를 하듯 전의 되고 만다.
비극적인 사실은 얼마만큼 빨리 이 상황을 받아들이느냐라는 것이다.

"섬세하게 살펴보자!"
지난번 집사람과 갑자기의 이상행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나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사실 나도 조금은 의심(?)을 했던 부분이었고 그런 부분이 나와 집사람의 공통분모라는 것에 살짝 당혹스러웠으니까.
설령 한쪽이 의심하다고 해도 다른 한쪽이 받아주지 않으면 그건 평범한 일이겠지만, 같은 생각으로 갑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특징적인 의심이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혼자 무언가를 가지고 놀고 있는 아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가며 옹아리 같지 않은 옹아리로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것 같은 아이.
불만이 생기면 꼬집거나 할퀴는 행동을 보이며 고집을 부리는 아이.
이 모든 게 나의 관찰 주제였고, 횟수와 강도를 측정해보는 관찰 과정이었다.
"집에 스위치를 자주 누르며 불이 켜지는 걸 확인하는 횟수가 많아지고 있네."
기록은 하지 않았지만 자주 보이는 행동들은 점점 ASD행동과 일치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인가 집사람이 '교육 바우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언어치료를 통해 늦은 언어발달에 도움을 주자는 취지였지만, 처음에는 왜 돈을 쓰냐며 반대했던 나도 조급함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사람들에게 이런 고민이 있다고 얘기하면 모두 똑같이 조금만 기다려주라고 한다.
알아서 말문이 트이고 분명 엄마, 아빠 하면서 우리를 부르는 시간이 찾아올 것이란 희망고문 비슷한 말을 한다.
나 또한 그런 희망고문에 취해 있었나 보다.

"희망고문당해봐야..."
집사람에게 바우처를 통한 언어치료교육을 해보라고 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갑자기는 네 살이 되었다.
또래 아이들만큼 대화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소통은 가능한 단계(?)였기 때문에 언어치료를 받으면 더욱 좋아질 것이라 확신했다.
지시하는 것에 반응했고,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통제하는 것에 자기 불만을 표현해도 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 뒤, 집사람이 나름 인터넷을 통한 정보망을 동원하여 괜찮다고 평가된 언어치료실 중 한 곳에 등록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상담을 통해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는 답변도 들었단다.
이제 갑자기 관찰 2차전이 펼쳐질 차례이다.
얼마만큼 성장하고 좋아질지 기대 반 우려반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