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의 역사를 살펴보면,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간되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다윈의 주장에 의하면 15억 년 전 지구의 생명체는 암수로 구분되지 않고 하나의 성(性)만이 존재했다고 한다.
자신의 몸을 희생하며 번식을 했던 시대에는 꼭 성별의 중요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이런 방식을 '무성생식'이라고 부르는데, 좀 쉽게 설명하면 자신을 또 다른 나로 복제한다고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하지만 지구의 생명체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환경이 바뀌고 번식에 대해 또 다른 방식을 선택해야 했다.
그래서 유성생식이 나타나게 되었고 아빠와 엄마라는 성별 존재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가족이라는 구성원이 등장하게 되는데, 가족이라는 구성체 중 유전적으로 이른바 '내리사랑'이라는 것이 등장한다.
"왜지? 그냥 막 끌려~"
많은 과학자들은 오늘날까지 내리사랑이 어떤 부분에서 발달하는지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리사랑은 곧 사랑이고 애정이라는 것이다.
부모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는 조부모의 마음을 아무도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앞에서 언젠가 말한 것 같은데, 나의 아버지는 형제와 사촌이 굉장히 많으시다.
들은 얘기로 할머니가 14살에 시집을 오셨는데 당시 할아버지가 30살이셨단다(지금 생각해보면 아동범죄 수준이라는...).
7남 1녀 중 일곱째로 태어나셨고 큰아버지 아들 즉, 우리 집에서 가장 큰 사촌형님보다 연세가 1살 적으시다.
아버지의 사촌들도 상당히 많아서 서열을 정리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다른 형제와 사촌들보다 열심히 사셨고 지금의 가정을 꾸려오셨다.
또한 어릴 적부터 총망한 학업성적과 지적 수준으로 다른 형제들에게 인정받으며 장차 큰 제목(?)이 될 거란 기대를 받으셨단다.
때문에 아버지는 자존심(아집 수준)이 강하시고 타인에게 무시받는 걸 굉장히 싫어하신다.
내가 느닷없이 아버지 이야기를 꺼낸 것은 유독 손주사랑이 강하시기 때문이다.
큰 아들은 생후 3개월부터 아버지의 손을 많이 빌렸다.
격일제 근무를 하시는 터에 하루씩은 꼭 시간이 비시는데, 이럴 때는 우리에게 찬스였다.
바쁘다는 핑계로 큰 아들의 육아를 부탁드렸고 아버지는 불평 없이 수락해주셨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큰 아들은 할아버지를 참 좋아하고 잘 따른다.
갑자기도 아버지의 손을 종종 빌려 부탁을 드렸는데, 큰 아들 때와 다른 행동을 하자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아이의 상태에 대해 물어보시곤 했었다.
"애가 왜 말을 안 하냐? 병원은 가봤니?"
큰 아들도 말이 느렸기 때문에 일상적인 대화가 불편해도 소통이라는 것이 가능했지만 갑자기만큼 느리지는 않았기 때문에 할아버지 입장에서 굉장히 신경이 쓰였나 보다.
어느 날인가 어머니가 아버지와 함께 공주시에 있는 어떤 곳에 있다며 나에게 전화를 주셨었다.
"갑자기 생년월일이랑 태어난 시간이 언제였지?"
"왜요?"
"그냥."
수화기 너머로 말끝을 흐리는 어머니의 의도를 나는 눈치챘다.
"혹시 사주 같은 거 보시려고 하는 거예요?"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그래."
"어머니, 그런 거 안 봐도 괜찮아요."
"알았으니까, 빨리 말해봐."
다급하게 묻는 어머니의 질문을 피할 수 없어 정보를 알려드리고 통화를 마쳤었다.
그날 오후, 어머니에게 또다시 전화가 왔었다.
"갑자기 이름을 지어왔어."
"네? 이름이 있는데 무슨 이름을 또 지어요?"
"애가 이름이 안 좋아서 그렇데. 이름만 바꾸면..."
"헐..."
"미신입니다. 미신..."
갑자기의 새로운 이름을 위해 작명 비용을 참 많이도 주고 오셨단다.
며칠 내로 갑자기의 이름을 새로 지어온 이름으로 바꾸라고 하시며 이름과 한자, 의미가 적힌 쪽지를 찍어 문자로 보내주셨다.
그리고 문자로 둘째의 이름을 왜 바꿔야 하는지 이유까지 설명하시며 꼭 바꾸라고 신신당부를 하시는데...
자식이 잘 된다면 부모로서 당연히 해줘야 한다.
핑계지만 일에 치어 사느라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갑자기의 새로운 이름을 받아온지도 약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린 때였다.
가족 식사 때 만난 어머니가 날 노려보시며 무서운 말투로 물어보신다.
"왜 이름 안 바꿔?!"
"시간이 없었어요."
"그게 말이니? 자식 잘 되라고 이름 바꾸라는데 무슨 시간 핑계야?"
"알았어요. 최대한 빨리 바꾸도록..."
"뭐가 우선인지도 몰라! 이름만 바꾸면 되는데 왜 그러는 거야?!"
"이름 바꾼다고 애가 갑자기 좋아지는 경우는 못 봤어요."
종교적 차이로 서로 이해하는 것이 달랐지만 어머니의 둘째에 대한 사랑을 이해하기에 과학적이고 의료적이지 않은 말에 더 대꾸할 수 없었다.
그런 내게 어머니는 비수를 꽂는 말씀을 하신다.
"네가 갑자기를 위해 한 게 뭔데? 이름 하나도 못 바꾸면서!"
순간 뭐에 한 대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 했다.
내가 갑자기를 위해 한 게 없다는 말씀이신가?
정말 욱하는 마음에 나의 목청이 높아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한 게 없다고요? 매일 아침 가기 싫다고 꼬장 부리는 놈, 어린이집 등원시켜야 하죠, 집 하나 꼴랑 있는데 재산이 있다는 이유로 바우처도 안 돼서 사비로 언어치료랑 감통치료 받죠, 집에 있는 것보다 밖에서 뛰어놀면 더 좋다는 말에 주말이면 애들 데리고 밖에 나가죠,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아세요?!"
나의 항변 같은 소리에 어머니가 많이 당황하신 듯하다.
"그리고 내가 한 달에 얼마나 번다고 그 돈 써가면서 최대한 과학적이고 의료적인 방법을 다 동원하면서 애 치료에 전념하고 있는데, 이름 하나 안 바꿨다고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