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모래성 19화

모래성 (5)

by 김흑곰

나를 가장 깊은 어둠으로 끌고 들어갔던, 그리고 여전히 불쑥 찾아와 나를 흔드는 가장 지독한 병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 '불안장애'일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걱정이 많은 성격 따위로 치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 병이 무서운 점은 예고 없이 찾아와 내 머릿속을 완전히 장악해 버린다는 것이다.


한번 불안의 스위치가 켜지는 순간, 이성은 마비되고 머릿속은 오직 그 특정 생각 하나로만 가득 차오른다.


마치 검은 잉크 한 방울이 맑은 물 전체를 순식간에 검게 물들이듯,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집어삼킨다.


그때부터 내 안의 평화는 깨지고, 심장은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한다.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은 이 불안을 나 혼자 감당하지 못하고, 반드시 누군가에게 털어놓거나 해소해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점이었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다. 이 이야기를 꺼내봤자 상대방에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는 것을, 반복되는 나의 징징거림이 상대를 지치게 할 뿐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 않으면 터져버릴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리다 결국 굴복하고 만다.


침묵하면 심장이 터질 듯 빨라지고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살기 위해서라도 입을 열어야 했다.


하지만 말을 뱉고 나면 찾아오는 건 후련함이 아니라 더 큰 자괴감이었다.


상대방의 미묘한 표정 변화, 지친 기색을 살피며 '아, 또 쓸데없는 말을 했구나', '그냥 참을 걸' 하며 뼈저리게 후회했다. 그럼에도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타인에게 끊임없이 확인받고 싶었다.


"괜찮아, 네가 원하는 대로 다 잘 될 거야."


내가 간절히 원했던 건 그 한마디였다.


정답을 몰라서 묻는 게 아니었다.


그저 내가 나를 믿지 못했기에, 타인의 확신을 빌려서라도 내 존재를 지탱하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의 나는 너무나 초라하고 한심하게 느껴져서, 스스로에게 "잘 될 거야"라고 말해줄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내 내면은 폐허나 다름없었기에,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억지로 만남을 청해 그 말을 구걸하듯 매달렸다.


가끔은 이성이 마비된 채 "제발... 제발 그렇게 말해줘"라고 애원했던 기억도 난다.

그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는 누구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의젓하게 살고 싶었다. 폐 끼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던 내가, 이 병 앞에서는 남들의 도움 없이는 단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되어야만 했다.


그 모순이 나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두려웠고,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에게 미안함이 사무쳤던 나날들. 나의 하루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투쟁이었고, 타인의 입을 통해 나를 확인받으려는 망설임의 연속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잊은 채 타인의 위로를 연료 삼아 간신히 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8화모래성(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