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장 깊은 어둠으로 끌고 들어갔던, 그리고 여전히 불쑥 찾아와 나를 흔드는 가장 지독한 병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 '불안장애'일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걱정이 많은 성격 따위로 치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 병이 무서운 점은 예고 없이 찾아와 내 머릿속을 완전히 장악해 버린다는 것이다.
한번 불안의 스위치가 켜지는 순간, 이성은 마비되고 머릿속은 오직 그 특정 생각 하나로만 가득 차오른다.
마치 검은 잉크 한 방울이 맑은 물 전체를 순식간에 검게 물들이듯,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집어삼킨다.
그때부터 내 안의 평화는 깨지고, 심장은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한다.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은 이 불안을 나 혼자 감당하지 못하고, 반드시 누군가에게 털어놓거나 해소해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점이었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다. 이 이야기를 꺼내봤자 상대방에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는 것을, 반복되는 나의 징징거림이 상대를 지치게 할 뿐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 않으면 터져버릴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리다 결국 굴복하고 만다.
침묵하면 심장이 터질 듯 빨라지고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살기 위해서라도 입을 열어야 했다.
하지만 말을 뱉고 나면 찾아오는 건 후련함이 아니라 더 큰 자괴감이었다.
상대방의 미묘한 표정 변화, 지친 기색을 살피며 '아, 또 쓸데없는 말을 했구나', '그냥 참을 걸' 하며 뼈저리게 후회했다. 그럼에도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타인에게 끊임없이 확인받고 싶었다.
"괜찮아, 네가 원하는 대로 다 잘 될 거야."
내가 간절히 원했던 건 그 한마디였다.
정답을 몰라서 묻는 게 아니었다.
그저 내가 나를 믿지 못했기에, 타인의 확신을 빌려서라도 내 존재를 지탱하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의 나는 너무나 초라하고 한심하게 느껴져서, 스스로에게 "잘 될 거야"라고 말해줄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내 내면은 폐허나 다름없었기에,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억지로 만남을 청해 그 말을 구걸하듯 매달렸다.
가끔은 이성이 마비된 채 "제발... 제발 그렇게 말해줘"라고 애원했던 기억도 난다.
그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는 누구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의젓하게 살고 싶었다. 폐 끼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던 내가, 이 병 앞에서는 남들의 도움 없이는 단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되어야만 했다.
그 모순이 나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두려웠고,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에게 미안함이 사무쳤던 나날들. 나의 하루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투쟁이었고, 타인의 입을 통해 나를 확인받으려는 망설임의 연속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잊은 채 타인의 위로를 연료 삼아 간신히 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