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첫 상담이 끝이 나고 두 번째 상담을 받으려 가야 할 날이 되었을 때였다.
분명 의사 선생님은 정해진 날짜에 오라고 하셨지만, 이상하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 일이 마치 엄청난 미션처럼 느껴졌다.
그냥 약만 받아오면 되는 건데. 약을 먹으면 괜찮아지고, 그랬던 짧은 호전의 시기를 내가 '많이 나아졌다'라고 착각을 해서인지, 아니면 그냥 밖으로 나가서 마스크를 벗고(그 당시 코로나 시국이었다) 사람들을 마주해야 하는 그 상황 자체가 벅차고 싫어서인지, 나는 최대한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나가지 않아도 될 이유를 스스로 끊임없이 찾았다. 내가 나가기에는 밖의 세상은 너무 선명하고 시끄러웠다.
하루 종일 내 방, 그 좁은 세계에 누워 잠을 자거나 천장만 바라보며 멍 때리고 있기도 했다.
혹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쓸데없는 생각들, 이미 지나가 버린 일들과 절대 오지 않을 불안한 미래에 대한 상념에 사로잡혀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현재는 완전히 증발해 버린 듯했다.
그러다 밤이면, 침대 위에서 그렇게 허망하게 보낸 하루가 너무나도 아까워서 극심한 후회가 밀려왔다.
'내일은 달라져야지. 내일은 꼭 나가서 뭘 해야지' 수십 번 다짐하지만, 해가 뜨면 그 다짐은 다시 허물어지고 말았다. 무너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띄엄띄엄 약을 타러 가니 의사 선생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이렇게 띄엄띄엄 먹으면 효과가 전혀 없어요. 꾸준하게 상담을 받고 약도 먹어야 비로소 호전이 되는 겁니다."
솔직히 나도 그 말의 무게를 알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내 상태를 그저 '흔한 마음의 감기' 같은 것이라 여기면서 우습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이 정도는 의지로 버틸 수 있다'라고 주문을 걸었다. 어쩌면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영역 안에 깊숙이 들어섰다는 사실을.
불안이 심해지면 먹으라던 약은 이제 매일 찾아 먹는 '일상약'이 되어버렸다.
그 약이 모자랄까 봐 불안해지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나는 숨 막히는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늘 옥상에 올라가거나 아니면 잘 되지도 않는 심호흡을 하며 '괜찮아, 괜찮아'라는 말을 수십 번 속삭였다.
그렇게 참다가 도저히 안 되는 날이면, 어쩔 수 없이 다시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물론 사람이 별로 없는 새벽 시간대에만 조용히 나갔다 들어왔다.
그 시간에 마주치는 것은 편의점의 불빛이나 청소차 정도뿐이었고, 그 외의 모든 것은 어둠 속에 잠겨 있어 나를 덜 경계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주 잠깐, 그 고요한 길 위를 걷는 동안만 숨통이 트였다.
그 정도가 심해지는 날이면 더 이상 집이란 곳은 내가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고 그냥 잠시 거쳐가는 공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숨 막히는 전쟁터에서 잠깐 정비하는 베이스캠프처럼, 혹은 언제든 다시 떠나야 하는 임시 거처처럼 느껴지면서 진정한 '쉼'의 느낌이 들지 않았던 때이기도 했다.
그때도 그나마 행복했을 때를 생각하자면, 역설적이게도 잠을 잘 때였을 것이다.
적어도 잠을 자는 동안에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무런 생각도, 그렇다고 나를 괴롭히는 악몽도 없는 그런 꿈도 없는 깊은 잠을 잘 수 있으니 말이다.
현실의 모든 불안과 걱정, 그리고 자기혐오가 일시 정지되는 유일한 시간.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다시 눈을 뜨면, 나는 다시 그 모든 것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잠만이 나를 잠시나마 이 세상에서 데려가 주는 듯했다. 이제는 잠드는 것만이 하루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도피처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