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를 겪는다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솔직히 말해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냥 좀 참고 이겨내면 안 되나?’라는 오만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의 엄살 정도로 치부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그 이야기가 나의 현실이 되고 보니, 그들이 왜 그토록 절망하고 고통스러워했는지, 숨이 턱 막히는 고통과 함께 뼛속 깊이 절감할 수 있었다.
공황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마치 갑작스러운 정전처럼, 세상의 모든 소음이 훅 빨려 들어가면서 오직 나만의 심장 박동 소리만이 귀청을 때리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은 숨 막힘이다.
폐 속의 모든 공기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듯, 아무리 들이마셔도 목구멍 아래로 산소가 내려가지 않는다.
숨을 쉬려는 필사적인 노력은 오히려 가슴을 조이는 통증만 가중시킬 뿐이다. 말은커녕 억 소리조차 내기 힘들어진다.
그리고 이어서 덮쳐오는 것은 사고의 정지다. 순간적으로 뇌가 멈춘 것처럼, 어떠한 논리적인 생각도, 문제 해결을 위한 지침도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든 것이 까맣게 지워진다. 오직 하나의 원초적인 명령만이 머릿속을 맴돈다.
"얼른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해."
벗어나고 싶다는 그 간절한 바람은 곧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맞닿는다. 숨을 쉴 수 없다는 그 물리적 고통의 정점에서, 문득 '차라리 지금 죽는 게 더 편할까?'라는 섬뜩한 생각이 간혹 스치고 지나간다.
이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는 것보다 영원한 멈춤이 더 달콤하게 느껴질 만큼, 공황 발작의 순간은 극한의 지옥과 같다. 아니 사실 이 고통이 영원히 지속될듯한 공포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겨우 약을 찾아 복용하면 어느 정도 숨통이 트였다. 이성은 돌아오고, 떨림은 잦아들었다. 하지만 약이 떨어지는 순간, 그 안도감은 곧바로 불안이라는 괴물에게 자리를 내준다.
언제 다시 공황이 덮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삶의 모든 영역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발작이 시작되면 길게는 30분, 짧게는 10분가량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없어서 방 안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혹은 좁은 공간을 서성이는 무의미한 배회를 반복했다.
그 모든 행동은 몸 안에 가득 찬 불안을 터뜨려 내보내기 위한 본능적인 몸부림이었다.
그리고 그 불안은 가장 만만한 곳으로 향했다.
바로 손톱이었다.
손톱 끝을 뜯고, 뜯어내고, 또 뜯어냈다. 피가 맺히거나 살갗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멈출 수 없는 강박적인 행동이었다.
한참을 난리치고 나서야, 겨우 고통의 파도가 잦아들고 나면, 피가 묻은 손가락과 너덜 해진 손톱을 본다. 그제야 이성이 돌아온 나는, 방금 전까지 이성을 놓아버렸던 내 모습이 한없이 한심하고 초라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다음 발작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나는 오늘도 그저 피나는 손가락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 한심한 자기 비난과 지독한 불안이 공존하는 것이, 바로 내가 겪는 공황의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