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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프 Jan 23. 2023

첫사랑에 대한 기억

건축학개론을 보고는

우리는 누구나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혼자만의 짝사랑이었든, 아니면 영화 ‘건축학개론’의 승민처럼 오해로 인해 어긋난 안타까운 사랑이었든, 우리는 젊은 날의 그 펄펄 끓던 시간을 통해 분명 성장하고, 성숙했을 것이며, 그 시간은 지금의 나를 만든 자양분이 되었을 것입니다.


지나간 것이 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다시는 그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없음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다시 그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그 시간에 더 충실하고, 무엇이든 더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안타까움으로 인해 지나간 시간들은 대부분 더 아름답게 미화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나간 시간 역시 지금 살고 있는 현재의 시간이 만들어 놓은 기적입니다. 그러니 지나간 시간에 대해 후회를 남기지 않은 가장 좋은 방법은 아마도 지금 살고 있는 현재에 충실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10년 전 재취업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나를 몰라봐주던 사회에 대해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이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지만 않았다면, 얼마나 잘 나갔을 사람인데, 기회가 없었을 뿐이야’, ‘회사가, 사회가 나를 몰라봐 주는구나’, ‘뭐든 시켜만 주면 다 잘할 수 있는데, 왜 기회조차 얻기가 힘든 것일까?’ 기타 등등.  


개인사정으로 회사를 그만뒀던 그 상황에 대한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습니다. 그 시간을 되돌리고만 싶었지요. 저만치 앞서가던 동기들의 모습과 비교해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저의 모습은 재취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제게 필요했던 것은 냉철한 자기 인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엄연한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누구를 탓하고, 지나간 과거에 연연해 그 시간을 되돌리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냉철한 자기 인식을 바탕으로 현실을 인정하고 나니, 신발끈을 고쳐 맬 여유가 생겼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지요. 예전의 아름다운 기억 속의 내가 아니라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나의 맨 얼굴을 직시하고, 그냥 다시 시작하면 됐던 것이지요. 구구한 변명이나 설명 없이, 그냥 시작하는 것 말입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나니, 재취업에 대한 기쁨이나 간절함은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리고 아직 30대 초반이었을 그 시절에는 또 얼마나 많은 기대와 자신에 대한 계획이 있었을까요? 이루고 싶은 많은 것들에 대한 시작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은 그냥 하루하루가 다시 일상입니다. 재취업에 대한 감사나 감격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가끔 요즘처럼 하루하루 일상이 힘에 부치는 시간들이 찾아오면, 그 재취업에 대한 감격이 그리고 그 당시의 절박했음이 다시금 제게 힘이 되어줍니다. 가슴 한 켠에 쌓아둔 ‘건축학개론’ 한 권이 일상에 지쳐가는 우리들에게 가끔 그런 펄펄 끓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며, 지금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일상에 다시 힘을 주듯 말입니다.  


지나간 것은 다 아름답지만,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일상이 더욱 소중한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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