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결혼식에서
順理, 도리나 이치에 순종함의 의미를 깨닫다
조카의 결혼식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꼬맹이 코찔찔이였던 아이가 어느덧 장성하여 장가를 간다고 합니다.
유치원을 다니던 그 아이가 어느덧 초등학생이 되고, 중학교를 가고, 대학생이 되더니, 오늘 장가를 갔습니다. 내 기억 속의 그 아이는 늘 말없이 씩 웃고만 있었던 초등학생인 줄만 알았는데, 그리 시간이 흘렀나 봅니다.
결혼식에 가 앉아 있으니, 주변에 사촌 동생들 결혼식이 하나 둘 떠올랐습니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모두가 어여쁜 신부의 얼굴을 하고 있었던 이들이 이젠 부모가 되어 제 주변에 앉아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인생이 흘러가 누군가는 새신부에서 한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챙기는 엄마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삶의 무게를 감당하며 열심히 살아갑니다.
함께 결혼식에 간 아버지의 모습도 이제는 완연한 노인의 모습을 하고 계셨습니다. 저 역시 더 이상 초등학생을 데리고 결혼식에 다니던 사촌언니, 사촌누나가 아니라 어느덧 중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삶이 세대를 거쳐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새 출발을 앞두고,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고 있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모든 것이 장밋빛으로 가득한 인생은 없다는 것과 어떠한 고난이나 시험 앞에서도 결코 물러설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때도 있지요. 아마도 어느덧 제가 그런 순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젊음의 기회와 희망,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제는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 자리를 양보하고, 우리 아이들을 든든히 지켜줘야 하는 자리로 물러서야 하는 것 말입니다. 여전히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많고, 여전히 나는 그대로인데 하는, 아쉬움도 있고, 섭섭함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세대에서 세대를 거듭하며, 그렇게 도도하게 흘러갑니다.
順理, 순한 이치나 도리. 또는 도리나 이치에 순종함을 의미하는 순리를 깨달아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더 많은 것을 움켜쥐려는 노력보다는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가 필요한 인생의 구간에 들어섰음을 깨닫습니다. 그동안 너무 열심히 살아오느라 나의 시대가 저물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저물어 간 나의 시대를 위해 건배! 열심히 잘 살아왔던 나의 시간들에 경의를 표하며, 이젠 인생 후반전을 차분히 준비해 보려고 합니다. 두렵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영화나 드라마처럼 빨리 감기를 하거나 되감기를 할 수도 없습니다. 도도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인생입니다.
이런 인생의 순간이 내 앞에 있음을 조금 더 빨리 깨닫았다면 어땠을까요? 주변을 돌아보며, 계절이 가는 것도 느끼고, 꽃이 피면 꽃이 피는 대로 감탄하고, 기뻐하는 삶의 여유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뒤돌아 보면, 다 아쉽고, 아쉽지만 또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 막 저만치 다가와 있는 인생 후반전에서는 덜 아쉽고, 조금 더 넉넉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