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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un 18. 2024

하루짜리 여행 - 부안 마실길 8코스

바람이 통랑했다.


여기에 닿을 줄 알면서도 몰랐다. 지금도 여전히 지도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 친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서 가만 들여다보고 있다가 훌쩍 나이 든 내 모습을 발견하면 깜짝 놀라게 된다.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콩밭이라는 말이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떠난다는 말을 내 몸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점처럼 새기고 태어난 것인지, 그 말에 설렌다. 늘 그랬다. 버스 터미널에서도 기차역에서도 공항에서도 보내는 사람이기보다 떠나는 사람이고 싶었다. 떠나는 일, 나는 그것을 동경한다.

지도를 보고 있으면 시간에 공간이 생겨난다. 모서리에 각이 잡히고 서서히 모양이 되어간다. 그 공간이 신기하고 매력이 있다. 내 머릿속이지만 내가 만들지 않는 공간이라 소유하지 않는다. 구경꾼처럼 바라볼 때 더 빠져드는 것이 매력적일 수밖에. 그러다가 공간이 시간처럼 흐물거린다. 분명히 책상 위였는데 벌써 해가 기울고 낯선 땅에 모래바람이 불고 있다. 맨해튼에 가본 적도 없으면서 노란 택시 기사들이 시끄럽게 경적을 울리며 지나는 도로에서 잠시 망설이고 있다. 어느 쪽이더라?

11월이 깊어졌다. 시간이 밟히던 길, 그 길을 다 걷고 내가 마주친 것은 침묵이었다.

「죄란, 인간이 또 한 인간의 인생을 통과하면서 자신이 거기에 남긴 흔적을 망각하는 데 있었다. 'Nakis' 하고 그가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중얼거리자 비로소 기도가 가슴속에 스며들었다.」 엔도 슈사쿠, 침묵 136p.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하지 못하지만 길을 걸으면서 숨을 쉬는 것만큼 쉬웠던 것이 기도였다. 병원에도 치유가 있지만 길에도 치유가 있다는 말은 아무래도 그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기도하면서 화내는 사람은 없고 원망하는 사람도 슬퍼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웅연조대 앞 갯벌에 부는 바람이 통랑했다. 속이 비치어 훤하다는 말, 통랑하다. 속이 비치어 환하다는 말, 통랑하다. 환하고 훤한 것들을 보고 싶었던지도 모르겠다고 가만히 끄덕이며 거기 서 있었다. 여기로 올 줄 알았어, 여기에서 우리가 걸었던 마실길을 마무리하는구나····

이쪽으로 들어오던 언덕배기에는 파 냄새가 물씬했다. 파 수확철인 듯싶다. 파뿐만 아니라, 바다를 돌아가는 샛길 옆으로 밭이 길게 펼쳐지고 거기에는 배추가 또 하나의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곧 세상에 나가 소금에 절여질 배추들 위로 갯벌에서 날아오는 짠 내가 골고루 스며들고 있었다. 곰소는 소금도 키우고 배추도 키우고 소나무도 키우는 땅이며 바다, 그것으로 자식들을 키우는 엄마였다.

곰소항에서 시작하는 마실길 8코스는 줄포만 갯벌 생태 공원에서 끝이 난다. 8구간 마지막이며 동시에 마실길 끝이다. 우리가 가장 예뻤을 때 여기를 걸었다. 여기를 걸을 때 우리는 가장 보기 좋았다. 그랬다, 황홀한 순간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목걸이처럼 우리에게 남았다. 그 목걸이를 매달처럼 간직하기로 하자.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자랑스럽게 목에 걸고 다니기로 하자. 길을 걸었던 사람들끼리, 빛나는 건배!

어떤 길에서든 예쁘라고 축원하며 잠시 혼자 떨어져서 멀리 바라봤다. 그때도 해가 지고 있었다. 그때는 하늘이며 해가 한창 붉어서 눈을 다 뜨고 바라보지 못했었는데, 그리고 아이같이 표정이 동그래지는 그가 있었는데.

웅연조대 앞에 서서 봄에 떠나간 사람을, 그 사람이 했던 이야기와 표정들을 천천히 살폈다. 그날 그는 꼭 초등학교 6학년쯤 되어 보였다. 내 고향 '줄포' 그러면서 웃던 얼굴이 속이 다 비치어 환했었다. 그 얼굴을 보며 통랑했었다. 내 속이 훤하게 다 비치었다. 투명해질 것 같았던 1년 전 늦가을을 떠올렸다.

사장님은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러면서 물음표를 찍지 않는 인사를 건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그해부터였을 것이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인사는 묻지 않고 묻는다. 잘 지내시지요, 그러면서 시작한다.

그렇게 나를 떠난 사람들, 내가 떠나보낸 사람들과 길을 걷는 것이다. 성스럽게도 걷고 농담을 건네면서도 걷는다. 행복했던 적 없는 사람에게 행복을 전하는 마음같이 조심스럽게 방해되지 않게 걷는다. 흰나비가 앉았을 배추밭과 파밭을 지나 마트 사장님이 서 있던 자리까지 나도 세상을 떠난 것처럼 걸었다. 구름 사이로 빛이 차분한 11월이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순간 밝아졌다. 여태 걸어온 모든 길이 다 등장하는 듯했다. 커튼콜이라도 들리는 것일까. 바다가 한참 뒤로 물러난 뻘밭에는 다른 시간, 다른 공간이 무대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삶도 죽음도 하루살이였을 것이다. 이 광활함 안에 머무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어디가 밖이고 어디가 안이었을까. 그것은 하나 아니었을까.

거대한 거북의 등껍질 위에 울퉁불퉁하게 갈라진 길들, 거기 붙어서 살아가는 따개비들을 본 적이 있다. 오래 사는 것들이 바람에 물들고 바람에 마르고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살아서도 화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바다에 오면, 바다에 오면, 바다에만 오면····.

거대한 갯벌에 타고 수천수만의 새들이 내려앉는 활강 같은 것들이 11월을 짓고 있었다. 모두가 부르는 합창이었다. 사라진 것들과 어두워지는 것들 사이로 비가 내릴 차례다. 늦가을 비가 저 바다를 적실 것이다. 웅연조대에서 그를 위해 두 손을 모으고 평안하기를 빌었다.

겨우 8개 코스를 걷고 이런 식으로 침묵할 줄 몰랐다. 2020년 봄에 새만금 방조제가 시작되는 마실길에 첫발을 떼고 우리는 굽이굽이 돌아 여기에 닿았다. 비행이었을까, 항해였을까, 걸음이었을까. 여행이었을까, 순례였을까, 소풍이었을까. 고맙다, 순간들이여, 내 작은 물방울 같은 입자들이여.

지난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그때 우리는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었을까? 우리와 함께 머물던 그 생각들은 오늘 우리가 만난 생각들과 얼마만큼 닮아있는 것일까.'

생각도 자랐고 우리도 자랐다. 유전자처럼 내가 알지 못해도 나로 남아서 나를 증명해 줄 그런 친구들을 만났다. 그리운 것은 언제나 우리의 옛날들이다. 지나간 바람들이다.

강이는 계단에서 다친 다리가 아직 불편해서 집에 남기로 했다. 다음 주에는 김장을 해야 하고 그다음은 12월로 넘어가면 나도 그렇고 너희도 감기들 수 있어서 오늘이 적격이었다.

'오늘'

새삼 좋은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살아있어서 바람결을 느끼는 것처럼 오늘이란 말에는 날갯짓이 한창이다. 푸드득 푸드득 날아오르는 것들이 가득하다.

오늘 우리는 셋이서, 그리고 넷이서 걷는다. 혼자 집에서 처음으로 지내는 강이는 우리를 따라 바다를 보고 하늘을 보며 그만큼 또 자랄 것이다. 상상할 것이다. 그게 우리가 가진 힘이니까. 어디에서든 숨결은 느낄 수 있는 거니까. 떨어져 있어도 함께하는 공부를 오늘은 해보겠구나. 누가 바람 없이 항해할 수 있나.* 다음에는 그 노래를 들으면서 걷자.

8코스는 이정표 없이 동남쪽으로 걷는다. 곰소항은 시골 정취가 묻어나는 어시장이 있고 무엇이든 하나쯤 낚시로 건져 올릴 것 같은 바닷가다. 돌아오는 길에는 한창 맛이 오른 아귀를 몇 마리 사서 어머니에게도 드리고 장모님에게도 가져다 드렸다. 산이는 간장게장, 간장게장 노래를 불렀다. 전라도에는 맛있는 집이 곳곳에 많다. 김동률의 목소리처럼 감미로운 간장게장이었다. 다음에 거기를 다시 들러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선물을 보내야겠다.

12km 8코스였지만 무조건 갯벌을 따라 걸었던 탓에 더 걸어야 했다. 때로는 소음도 열어놓고 맞아들인다. 때로는 적당하게 더 걷기로 한다. 적당하면 미운 것도 예쁘고 촌스러워도 귀엽다. 점점 적당한 것이 늘어나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그것이 넉넉해지는 수업일 것이다. 넉넉한 산이와 아내가 지저귀는 듯했다. 등대가 있고 파도 소리가 있는 여행을 일상으로 이어 붙이기 한다.

내 동행자들은 내가 길을 잘 찾는다고 그러지만 내가 아는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오른쪽에 갯벌을 두고 계속 걸을 것.

묶어두었지만 덩치가 큰 개를 만났을 때 두 사람은 다른 길로 가자고 재촉했다.

아, 그전에 우리는 수만 마리 철새들의 군무를 구경했구나. 아빠는 논두렁에서 멀리 히치콕의 영화에서 본 것 같은 나무 한 그루와 회색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무엇이 배경이며 무엇이 주제인지 모를 모두가 배경이며 모두가 주제인 사진이 됐다. 우연이란 얼마나 사람을 설레게 하는지. 새떼가 나무를 향해 경주하는 장면 같았다.

그거 하나로 오늘 내 일용할 양식이 충족된 기분이었다. 하늘도 곱게 갈아놓은 땅도 만지고 싶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덩치 큰 개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오고 물이 다 빠진 염전도 봤다. 양식장에서 활어를 쏟아 담는 사람들도 마주쳤다.

마실길 전체를 걸으면서 우리는 몇 번이나 길을 잃었던가. 길을 알려주는 팻말이 부실한 편이다. 우리는 이번에도 길을 두 번 되돌아 나왔다. 별거 아니지만 산이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다.

'길이 아니라 사람이다.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어딘가 잘못 들어섰다면 그 길을 돌아 나오는 것도 용기다. 용기는 쫓기는 사람에게 깃들지 않는다. 어느 순간에도 급할수록 돌아갈 줄 아는 것은 용기다. 용기를 낼 줄 아는 사람은 삶이 풍요로운 법이다.

반가운 얼굴이 우리를 기다렸다. 저녁을 먹으면서 우리는 또 이야기를 많이도 남겼구나. 아빠는 다 기억하지 못한다.

지금은 길을 걷고 온 것만으로도 벅차서 시간이 지나야 우리가 웃고 떠들면서 나눴던 말들이 생각날 것이다. 다 같이 마실길을 무사히 걸어온 날들을 축하했다. 건배가 건배 같아서 좋았다.

강이는 7코스 혼자 김밥을 먹던 장소가 특히 좋았다고 그랬다. 거기가 어딘지 안다. 그때 강이가 무엇 때문인가 토라졌는지도 안다. 풍경이란 이렇듯 설익은 것들은 날려 보내고 알짜배기만 남겨서 우리를 키운다.

너희는 잘 걷고 있다. 우리는 그것이 서로 고맙다. 기도가 되는 날들이다.

* Vem kan segla forutan vind, 누가 바람 없이 항해할 수 있는가. 스웨덴 민요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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